산부인과 위기 극복 방안, 누구로부터 찾을 것인가
산부인과 위기 극복 방안, 누구로부터 찾을 것인가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3.01.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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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하는 정부 정책, 산부인과가 처한 현실부터 돌아봐야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Society Focus Ⅲ] 대한민국 산부인과 구하기
                      

서울의 한 대형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벌써부터 내년 전공의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보통 3월경이면 다음 연도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가 미리 찾아와 눈도장을 찍는 등 인사를 했지만 올해는 아직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병원 산부인과 교수에게 이 같은 소식을 전했더니 “배부른 소리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 병원은 뽑아둔 전공의가 그만두고 나간 탓에 1년차 전공의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의 위기가 심상찮다. 온갖 수치가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에는 배출된 전문의 숫자가 사상 최저인 90명을 기록했다. 전문의 전 단계인 전공의들의 기피 현상은 점차 심해지고 있어 산부인과 의사들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저출산 시대환경, 국가 의료 정책은 오히려 ‘문제’
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산부인과 위기의 조짐은 전공의, 전문의, 개원의를 가리지 않고 총체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올해 각 병원에서 필요로 했던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은 169명인데 비해, 실제 합격한 의사는 119명에 불과했다. 점차 줄고 있는 지원자 숫자에 따라 최근 7년 새 가장 적은 수치였다고는 하지만 ‘심각한 수준’이라고 산부인과학회는 전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처럼 산부인과가 총체적 위기를 맞은 이유로 시대 환경과 지원정책의 부재를 꼽았다. 저출산 등으로 애 낳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드는 데 반해 분만비용도 낮고 정부의 정책 역시 산부인과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책은 역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전언이다. 2012년부터 적용된 포괄수가제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며 국가소송에까지 이어졌다. 환자가 병·의원에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진료받은 진찰·검사·수술·주사·투약 등 진료의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부담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저출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부인과에는 치명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6월 공동 성명을 통해 “국민의료비 상승을 억제한다는 목적으로 기존 4개과 7개 질병군에 대해 시행했던 선택적 포괄  수가제를 7개 질병군에 의무 적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포괄수가제 의무 적용은 저출산으로 이미 어려움에 처한 산부인과를 더욱 위기에 몰아넣는 정책이라며 적절한 보완 없이 상급 종합병원을 포함한 전 의료기관에 의무 적용하는 것은 고위험군 환자 진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현 제도 하에서 의원급은 포괄수가제에 60% 가량 참여하고 있지만 상급종합병원은 단 한 곳도 선택하지 않은 점을 들었다. 또한 건강보험법 시행령에서 ‘질병군은 진단명, 시술명, 중증도(重症度), 연령 등을 기준으로 분류한 환자집단’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 포괄수가제에선 중증도에 대한 분류가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환자실 입실이 필요하거나 전치태반, 임신성 고혈압, 산후출혈, 조기진통, 자궁내막증 등으로 고위험 상태인 환자에 대해 중증도가 터무니없이 낮게 반영돼 있다”면서 현 포괄수가제가 상급종합병원까지 당연 적용될 경우, 대다수의 병원이 진료를 기피하게 돼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재욱 회장은 “포괄수가제로 인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최신 의료기술을 도입하거나 신약 사용을 억제하게 될 것이다”라며 장기적으론 의학 및 신의료 기술의 발전을 어렵게 하고 국민들이 그 피해를 감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선 질병군 분류체계의 합리적인 재정비, 중증 및 복합질환에 대한 차등 수가의 현실화, 정기적인 조정 기전 규정화, 비급여 항목의 적절한 급여화와 예외 항목의 인정에 관한 행정적, 법적 조치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히려 전공의 줄이기에 급급
각종 의료정책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정부와 산부인과가 이번엔 전공의 축소문제를 놓고 맞서고 있다. 지난 2012년 의대 입학생과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은 각각 3,053명과 3,982명으로 전공의 선발 인원이 의대 졸업생 수보다 훨씬 많아, 산부인과와 같은 비인기 전공과목은 미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선발정원을 올해 350명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2014년 250명, 2015년 200명이 추가 감축해 의대 졸업생 수준에 맞춘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전공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보건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 관계자들은 급격한 인력 감소에 따른 업무 공백과 기존 전공의 업무 증가 등을 우려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이화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김승철 교수는 “전공의를 싼 값에 쓸 수 있는 노동자로 치부, 그 수를 마구 늘리다가 수급불균형을 이유로 이제와 정원을 줄이려고 한다”며 전공의 감축은 기존 전공의에 대한 과중한 업무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급격한 감축을 전제로 한 정부의 안은 철회돼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우리 산부인과와 같이 위기를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고려는 없이 의료계 전체적인 시각에서만 보고 결정한 정책은 문제가 많다. 이는 의료서비스 분야별로 현 상황을 고려해 차등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는 “실제 보건복지부가 방안을 살펴보면 기피과목인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등 수련보조수당 지급 대상 과목들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정원이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가다간 먼 훗날 산부인과 의사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전공의의 인기과 집중 지원 현상의 배경에 깔려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무조건 정원을 줄이는 것은 절대 거시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은 비인기학과인 산부인과를 전공하고 사회에 나와서 산부인과 의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대우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큰 틀에서의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정책이지, 일시적으로 인기학과를 중심으로 전공의를 축소하는 것은 의료계 전체적으로도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전했다. 전공의 정원 문제는 우리나라의 의료전반에 걸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중요한 정책적 결정이 근시안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 정책은 성공한 정책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정책의 실패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임을 보건복지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산부인과 관계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대한산부인과학회가 65년 만에 ‘산부인과’ 명칭을 ‘여성의학과’로 바꾸기로 결의한 데 이어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추계학술대회 주제를 ‘산부인과 문턱 낮추기’로 정하는 등 몰락하고 있는 산부인과 구하기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2012년 10월 제28차 추계학술대회를 연 자리에서 산부인과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산부인과’라는 진료과목에 여성의학과를 적극 표방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산부인과의사회의 이같은 움직임은 같은달 6일 열린 대한산부인과학회 대의원총회에서 ‘산부인과’를 ‘여성의학과’로 바꾸기로 결의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선행 이사장 당시 열린 산부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 정기총회에 처음으로 참석, 학회와 개원의사회가 적극 협력해 산부인과의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자는 뜻을 전했다. 산부인과 관계자들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산부인과의사회는 추계학술대회에 앞서 초경을 맞는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초청한 가운데 ‘제3회 초경의 날’ 기념행사를 열어 산부인과 의사들의 사회적 역할에도 무게를 실었다.
  초경의 날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박근혜 당선인(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이 축전을 보내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 당선인은 장석일 국민건강실천연대 상임대표가 대신 읽은 축전을 통해 “여성이 건강하고 행복한 국가가 진정한 선진국”이라며 ‘초경의 날’이 ‘여성성(性)’을 대표하는 사회적 축제로 발전하고, 여성의 건강과 인권문제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초경의 날 행사와 추계학술대회를 잇따라 개최하며 산부인과 살리기에 나선 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은 “개명 문제는 타과와의 조율과 법안 개정이 걸려있어 단시일 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긴 하지만 앞으로 학회와 의사회가 긴밀한 공조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 ‘무료 장학금’ 혜택으로 극복
일본은 1989년 ‘출산율 1.57명 쇼크’ 이후 한 해 300~400명에 달하던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가 2004년에는 101명으로 뚝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2005년 출산율 1.08명 쇼크, 2011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100명 붕괴를 경험하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2008년 도쿄에서 출산 직전 임신부가 뇌출혈 증세를 보여 응급실을 찾았지만 7개 병원이 “위험한 산모를 진료할 의사가 없다”며 거부해 결국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산부인과 살리기’에 대책이 쏟아졌다. 먼저 일본 정부는 의대생이 산부인과를 꺼린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근무 여건이 좋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가 부족한 사실을 인지, 의대생 정원을 늘려 산부인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일본 후생노동상 고미야마 요코 장관은 “도쿄도는 2006년 의대 본과 3, 4학년들에게 도쿄 안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할 것을 전제로 2년간 700만 엔(약 1억1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도·도·부·현(한국의 시·도)마다 모자통합 치료센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고미야마 장관은 지역 병원이나 조산원이 센터와 긴밀히 연계해 임산부들이 안전하게 진료받을 환경을 마련하고 일본 어디에 살든 출산 전후의 임산부가 안전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하고 진료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의료사고 위험이 높은 산부인과 의사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2009년부터 분만 중 불가피하거나 원인이 분명치 않은 의료사고로 아기가 뇌성마비가 되면 정부가 20년에 걸쳐 3000만 엔(약 4억3200만원)을 아기 가족에게 보상한다. 반면 의사에게는 법적·경제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보상여부를 결정하는 일본의료기관평가위원회(JCQHC)는 “분만사고 소송이 점점 줄고 있다”며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분석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한다고 말했다.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들이, 인간 삶의 ‘첫 순간’을 함께한다는 자부심 대신 온갖 의료사고와 자신들이 처해 있는 환경 등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출산하기 힘든 대한민국이란 오명을, 정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부심과 의사로서의 소명을 먼저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되지는 않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취재/박성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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