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한국을 빛낸 인물-복지부문]
성제경 선진통일당 경남도당위원장·민주평화통일 창원시협의회장·예은치과 원장
한번 쯤 “내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심각하게 혹은 가볍게 생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돌아온 답이 어떻든지 간에 누구나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는 있을 터. 하지만 존재하는 목적이 곧 사회의 소수자들을 대변하기 위함이라는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에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책임감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가 있어 이슈메이커 연말특집호에서는 2012 한국을 빛낸 인물로 예은치과 성제경 원장을 선정했다. 성 원장과 기자의 만남은 처음이 아닌 두 번째다. ‘1’과 ‘2’란 숫자의 의미차이에서 느껴지듯 좀 더 편했지만 한층 깊어진 대화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누구에게나 ‘장애’는 찾아올 수 있다
불의의 사고로 서른여덟 번이나 되는 대수술을 거친 성제경 원장. 상체만 보면 여느 사람과 다름없을 정도로 바삐 움직이는 성 원장은 혼자의 힘으로 10cm 높이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그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사고이후 2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지만 ‘책임’과 ‘의무’라는 단어가 그를 더욱 견고히 다졌다. 투병생활 가운데서도 언젠가는 환자를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전공서적에서 손을 뗀 적이 없는 그는 ‘우리나라 최초 휠체어 탄 치과의사’다. 성 원장은 전동 휠체어에 탄 채 하루를 보내는 동안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단지 몸이 불편해서만은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니 말이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성제경 원장이 거듭 강조한 말이 있다. 바로 ‘장애’라는 것이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이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비장애인의 경우, ‘장애’에 대한 대비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애에는 선천성 장애와 후천성 장애가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선천적 장애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고, 대신 후천성 장애가 뚜렷이 증가하고 있어요. 우리는 흔히 장애라고 하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떠올리는데 안경을 쓰는 것도 장애의 일종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누구나 장애에 노출된 셈이죠. 더욱이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노후에 장애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안일한 발상이에요. 우리는 당장 내일 나에게 닥칠 일일지도 모르는 일인데 손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때,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고가 난 당시에도 난을 캐러 산 능선을 오르내리며 땀 흘렸던 걸요.”
장애인이 된 후 ‘약자이니 도움 받고 살아야 겠다’란 생각은 없으셨나요?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라는 제 신념은 장애인이 되기 전이나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전 문턱하나 넘지 못하는 1급 장애를 갖고 살아가지만 단 한번도 ‘장애인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어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저보다 더 중증 장애를 가진 이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받는다’는 생각은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장애인도 국민이잖아요? 그럼 국방의 의무는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교육, 근로, 납세의 의무는 지켜야죠. 교육을 받아 일을 하고, 세금을 낼 때 자신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일반인도 생각하기 힘든 ‘복지’에 대해 이렇게 열성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질문하나 할게요. 사자와 호랑이가 있습니다. 이들이 대결한다면 어떤 쪽이 이길까요? 정답은 배고픈 자가 이깁니다. 정답이 생각하던 것이 아니라 황당하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럼 우리나라 새마을 운동이 성공해 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성실한 국민성 혹은 애국심?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답은 아니에요. 바로 배고픈 시기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절심함’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절실하면 망하는 나라도 살리고, 자신보다 몇 배 강한 짐승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현재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무엇이 절실하겠어요. 바로 ‘복지’입니다. 남이 아닌 내가,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답이 나오죠? 제가 왜 이 일에 이토록 열심인 이유를요.”
성제경 원장은 남녀노소, 장애와 비장애인, 남한과 북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약자가 작은집이 되고, 나눠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이가 큰집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스스로 고기 잡는 법’ 터득하는 사회
몸이 성한 성인들도 하루 4시간 이하 잠을 자면 몸에 이상이 올 법하지만 성 원장은 자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자신의 역할 이상의 것을 해내는 인물이다. 그는 치과의사로 활동하면서 전문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복지개선을 위한 활동에 힘 쏟고 있다. 그렇다면 성 원장에게 있어 진정한 ‘복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성 원장은 최근 많은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나보다 불편한 이들을 대하는 우리 시각은 그들을 딱하게 보거나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보편적인 실정. 올바른 복지사회 구현을 위한 일환으로 성 원장은 국가적인 ‘새 마음 운동’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약자에게 무조건 나눠주는 것이 복지가 아니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나눔’과 ‘섬김’의 의미를 재확립 시켜야 한다는 소리다. 성 원장은 주는 사람은 소외된 이웃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마련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수혜자도 당연히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받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바로 알고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성 원장은 말한다.
원장님이 생각하는 ‘복지’의 개념에 비춰봤을 때, 현재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평가하신다면.
“처음 ‘복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때,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면서 유기적 협조, 예산분배 등의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사고가 나면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돌아가며 수술하죠. 수술이 다 끝난 뒤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맞춰 장애가 판정되고 운동적 개념의 재활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보통 장애등급 판정은 의사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등급을 판정해 버리면 한 사람의 의지까지 등급에 맞춰지게 되니까요. 각 분야의 전문의, 복지사, 물리치료사, 의사, 간호사 등이 전문적으로 장애등급을 판정하고 재활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작은 의원에서부터 종합병원, 국가기관이 서로 협력해야 하죠. 치료-재활-교육-유지노력 이 시스템이 사회 전반에 확립되어야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복지’ 어떤 시각으로 접근해야 합니까?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 경우를 들어 설명할게요. 제가 만약 치과의사 라이센스가 없는 일반 사업자나 육체적 노동자였다면 지금처럼 사회에 복귀할 수 없었을 테죠. 그렇다면 치과의사 라이센스를 어떻게 받았냐? 바로 ‘교육’입니다. 제 경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만약 손 기술로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이 손을 쓰지 못쓰게 됐을 경우는 어떻게 하죠?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게 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이 사람이 사회로 복귀해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 아닙니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장애인 판정을 받은 뒤 교육적 측면의 재활이 이뤄진다면 이미 늦었다고 볼 수 있어요. 재활은 장애가 발생하는 순간 원스톱으로 시스템이 이뤄져야 합니다. 사고가 나자마자 적시 수술을 받고, 모두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치료, 재활, 직업교육을 진행해야 해요. 더불어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선택적 복지가 이뤄져야 합니다. 장애인 뿐 아니라 노인, 여성, 아동 등의 복지는 배분과 지원이 적재적소에 투입되어야 진정한 복지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복지’는 말 그대로 퍼주기 식, 보여주기 식 개념이 아닌 그 사람의 인생, 사회적 파급력까지 생각해서 큰 의미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국가 차원에서 ‘새 마음 운동’이 진행되어야 해요.”
‘새 마음 운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주시죠.
“말 그대로 도덕적으로 새 마음을 갖자는 운동이에요. ‘내가 조금만 아끼면 나보다 못한 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이 전 국민에게 확산되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나눠주는 사람은 소외된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마음과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스스로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죠? 나눠주는 사람 뿐 아니라 수혜자도 자신이 받은 지원금이 누군가가 낸 세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감사하면서 재활의 의지를 갖고 생활해야 하죠. 이들 모두 ‘자격’과 ‘도덕성’이란 측면을 고려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2 한국을 빛낸 인물에 선정되셨습니다. 사회적 책임이 큰 만큼 독자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시오.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이렇게 제 생각과 활동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이 일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정치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위대하게 태어나서 그 어떤 누구의 위대함을 이어받고, 그 누구는 그냥 그렇게 태어나서 위대함을 쟁취 해내죠. 여기에서 제가 위대해질 수 있는 최선은 늘 제 자신을 믿고, 다독여 뛰게 하는 것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도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기 바랍니다.”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 보따리를 풀어놓은 성제경 원장. 그는 남은 일생 가운데 ‘복지’에 관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 확립은 꼭 이루고 가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