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장벽에 신음하는 韓國
무역 장벽에 신음하는 韓國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11.1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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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불황 한파 속 각국 덤핑 판정·특허 소송 기승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Trade Focus] 고개드는 보호무역

 

‘삼성의 특허소송 패소’ ‘프랑스의 한국산 자동차 동향관찰 요청’ ‘브라질의 수입승용차 관세 30% 인상’ ‘호주·대만·말레이시아의 한국산 철강제품 반덤핑조사’ 등 세계 각국이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핵심 수출품목인 철(鐵)·전(電)·차(車)에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국가들이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신용공급 등 모든 분야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경기를 부양할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하면서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존 보호무역주의 정책들과 다른 특징을 가진다. 전통적인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외에도 자국기업 구제금융 지원, 인위적 환율 조정, 고용보호법 입법 등과 같은 국내 경제정책의 모습을 띤 보호주의 조치들이 급증하면서 국가의 개입 범위가 날로 확대되는 실정이다.

 

 

수입규제 7월까지 벌써 17건, 年 최고건수 이미 넘어서

“시간이 갈수록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는 걸 느낍니다. 보이는 장벽인 관세 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보호주의 분위기가 저희에게는 더 큰 위협이죠.” 국내 대기업의 해외담당 임원은 최근 글로벌 시장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바로 글로벌 불황한파 속에 ‘신보호주의’의 역습이 갈수록 거세지는 추세다. 지난 8월 27일 지식경제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EU, 호주, 이집트 등 주요 교역 상대 20개국을 대상으로 한국기업에 대한 수입규제 건수를 조사한 결과 역대 누적건수 122건 가운데 올해에만 17건이 발생됐다. 현재까지 가장 많았던 해는 지난해 16건이었으나 올해 상반기 지난 시점에 벌써 지난해 연간 건수를 넘어섰다. 현재 해외에서 수입 규제를 위해 조사를 받고 있는 한국 상품은 세탁기(미국), 철강류(EU, 브라질,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변압기(캐나다) 종이(대만) 섬유(브라질) 타이어(브라질) 2차전지(미국) 등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정비일 무역협회 국제협력실 과장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여 각국의 보호무역조치는 늘어날 것”이라며 “올해는 한국 기업들에게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31일 미국 상무부는 현지 가전업체 월풀사의 주장을 받아 들여 지난달 LG전자·삼성전자·대우일렉트로닉 등 한국산 드럼 및 전자동 세탁기 제품에 대해 최대 82.41%의 반덤핑관세 예비판정을 내렸다. 업계는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월풀사가 고품질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운 한국 업체들에게 드럼 세탁기 시장에서 밀리자 위기감을 느껴 반덤핑 혐의를 빌미로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가 지난달 한국산 자동차의 모니터링을 EU에 요청한 데 이어 현대·기아차의 자국 시장 내 덤핑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푸조시트로엥 등 프랑스 자동차 업체들은 대량 감원과 감산에 들어간 반면 현대·기아차는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시장에서 5.9%의 점유율을 보이며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유럽에서 판매한 차 중에서 국내 수출 물량은 10%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체코·터키 등 현지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며 “판매 증가가 FTA로 인한 관세 인하나 덤핑 때문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수입규제 조치는 선진국 뿐 아니라 신흥 시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반덤핑 조사를 직접 하는 것은 물론이고 환율절하, 기술이전, 안전규제 등 비관세 장벽까지 적극 활용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신흥국의 보호무역정책은 러시아가 총 57건으로 지난해 50건보다 늘었고, 아르헨티나와 인도도 각 30건, 18건으로 지난해 각 23건, 6건보다 껑충 뛰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대놓고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 기업들의 나일론, 냉연강판, 후판, 타이어 등에 대해 수입 규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 수입관세를 기존 3%에서 5%로 인상했다. 중국 LCD TV 패널 시장은 LG디스플레이가 26.6%의 점유율을 보이는 데 비해 BOE, IVO, 차이나스타 등 자국 업체의 점유율이 1% 미만에 그친 것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브라질도 최근 현지 업체의 제소에 따라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 등 한국산 타이어 제품에 대한 덤핑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수입 규제는 실시되는 순간 해당 기업이 즉각적인 타격을 받는다”라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 수입 규제 판정이 뒤집히는 경우가 90%에 달하지만 현재로선 오남용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 직격탄, 특허소송에 발 묶여

보호주의 장벽은 무역뿐 아니라 특허 소송 등 기술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한국 시간으로 8월 25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지방법원에서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미국 소송 배심원단이 애플의 ‘완승’이라고 할 만한 평결을 내려 화제가 됐다. 이들은 삼성이 주장한 특허에 대해 애플이 아무 것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뿐 아니라 애플이 제기한 사용자인터페이스(UI) 기술 모두와 디자인 특허 대부분을 삼성이 침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특히 애플의 디자인 특허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이며 두께가 얇고 앞면이 평평하다’ 정도의 개념만을 담고 있어 이대로라면 다른 어떤 기업도 터치화면을 구성요소로 하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다. 이번 평결이 최근 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한국의 판결 결과와는 상반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배심원들이 자국 기업의 유익을 따졌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비교적 애플에 우호적이던 월스트리트저널도 “애플의 승리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업계 전체에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박성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보호무역의 환경이 바뀐 듯하다. 국내 기업은 물론 한국정부도 기존 무역거래 관행의 보호 장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한편 포스코도 “우리 영업 기밀을 이용해 전기강판을 제조했다”고 주장하는 신일본제철로부터 1조 4,000여억 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했다. 코오롱은 자회사 코오롱인더스트리도 방탄복 등에 쓰이는 아라미드 섬유 개발과 관련, 듀폰에게 1조 417억 원 규모의 배상금 지급 명령을 받은 상태다. 한 특허 전문 변호사는 “최근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하는 특허 소송이 급증세다. 현재 미국 뿐 아니라 한국 기업에 밀려 경쟁력이 떨어진 일본 전자업체들이 특허 소송을 대거 제기하고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지난 2009년 150여건에서 불과했던 국제 특허분쟁은 2011년 280건에 달했다. 국내의 경우 삼성전자 외에도 LG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코오롱글로벌등 주요기업들이 특허소송에 휘말렸거나 진행되고 있다. 미국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월 기준 미국기업이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특허소송은 100여건으로 나타났다. 그중 삼성전자가 43건, LG전자 31건, 팬택 11건, SK하이닉스 7건, 현대차 6건을 차지한다. 즉 삼성전자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특허소송의 타깃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7월 터치스크린업체 플랫월드 인터랙티브스는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LG전자를 상대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사용된 터치기술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오스람도 미국과 독일 법원에 LG계열사들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팬택은 삼성전자나 LG전자 보다 상대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특허소송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경제 총체적 영향 우려, “정부의 선제적 대응 절실”

전문가들은 특허소송이 무역 분쟁의 불씨가 되는 이유를 FTA체결 뒤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특허기술을 주요한 견제수단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효 중인 FTA는 300개가 넘고, 한국은 지난 2004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7개국과 10건의 FTA를 체결했다. FTA 체결을 통한 자유무역 확산으로 세계 교역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세계 무역규모가 지난 1996년 10조 9,000억 달러에서 2010년 30조 5,000억 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절반가량이 FTA 체결국가 간에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유무역협정(FTA)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FTA가 늘어나면 자유무역이 완성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FTA와 보호무역은 별개이며 FTA가 체결되어도 얼마든지 보호무역경향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훈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신흥국들은 중장기 산업육성정책을 도입하고 있어서 세계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보호무역 조치를 계속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 봤다. 한편 한국이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의 지배력이 강화된 것도 한 몫 했다는 의견이다. 여기에 ‘특허괴물’(특허전문기업·NPEs)의 활동이 과거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도 특허분쟁 소송이 증가한 배경이다. 안병화 지식경제부 수출입과장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선진국이나 신흥국 할 것 없이 자국시장과 기업 보호를 위한 방어 조치들을 일단 가동하고 보는 분위기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보호무역주의 확산은 최근 수출이 부진한 한국 경제에 부담을 더하고 모양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수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6.2% 감소한 429억 7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LCD 등 일부 품목만 전년보다 소폭 늘었고 자동차부품·반도체 등의 수출은 감소해 올해 1월 이후 가장 적은 수출액을 기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각종 수입규제 조치로 무역이 원활해지지 않으면 수출은 1.0~1.5% 감소한다. 즉 지난해 수출액인 5천 565억 1천 300만 달러로 계산했을 때 6조 3천억 원 가량의 피해가 추정된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인 6조 7천 4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혁신으로 무역장벽을 돌파하는 ‘정공법’을 제안했다. 즉 국내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개발과 내수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입규제를 뛰어넘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지금보다 더 많은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 배심원단이 삼성의 ‘완패’ 판결을 내린 배경에는 애플이 ‘미국 1등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며 문화적 요인까지 고려한 사업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출 걸림돌을 해소하기 위해 민관 공동으로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무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우리 정부의 선제적 대응을 강조했다. 그는 “WTO, G-20 가입 등으로 쌓은 역량을 통해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라며 “최근 신용등급 상향 조정과 세계수출 빅10 등 우리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프랑스나 영국 정도의 입김은 있을 것”이라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방안 모색을 촉구했다.

불황이 장기화 되면서 자국기업을 보호하겠다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한국은 그들의 주요 타깃이 될 것임을 명심하고,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고통은 전초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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