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했다’
‘나도 당했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2.0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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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나도 당했다’

침묵 깬 여성들의 경고

 

 

 

2017년 하반기 세계 곳곳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른바 ‘미투 운동(Me Too)’으로 불린 이 캠페인은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졌다.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미투 운동에 참여한 불특정 여성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Silence Breakers)’이라 칭하며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할리우드발 ‘미투 운동’

‘미투 캠페인’은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가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보도하며 촉발됐다.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를 통해 “성폭행 피해를 경험했다면 ‘미투(#metoo)’라는 해시태그를 달자”고 제안했고, 불과 하루 만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1,300만 건의 글이 쏟아졌다.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이 피해 사실을 폭로했고,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더스틴 호프만 등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던 유명인사들도 성희롱·추행 사실이 들통나며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영화계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정가(政街)로 향했다. 미국 하원에서 열린 의회 내 성폭력 실태 청문회에서 재키 스피어 민주당 의원은 과거 동료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정계 거물들의 성추행 사실이 연달아 공개됐고, 민주당 앨 프랭큰 상원의원과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의원 등 현역 의원 3명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현재 캠페인의 파고는 백악관까지 향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이전 제기됐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성추행 의혹이 다시 거론되며 의회의 조사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에서 퍼져나간 미투 운동은 전 세계적 현상이 됐다. 영국에선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의 15년 전 성희롱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녹색당 공동 창립자인 페터 필츠가 성추행 혐의로 이달 초 의원직을 사퇴했다. 국내에서도 피해를 당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위치의 직장 여성들이 SNS를 통로 삼아 용기있는 고백을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SNS가 여성들에게 힘 실어줘

이전에도 유력 인사들의 성범죄를 공론화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가해자들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대응을 포기했다. 뉴욕타임스는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이 30년이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 업계 내의 독점적 영향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폭로하려는 언론사를 압박하거나 일부 배우들은 성추행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적도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투 운동이 폭발적인 힘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성범죄의 경우 피해를 입고도 수치심과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이를 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론화해야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 인식 변화에 SNS의 파급력과 익명성을 활용한 연대가 보태지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SNS나 인터넷 게시판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서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피해 사실을 한번에 알릴 수 있어 성폭력 피해자의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했다. 

 

‘폭로’에서 ‘해법’으로 이동하는 캠페인

하지만 일각에선 현재의 미투 운동이 중산층 이상이나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만 불고 있는 바람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유명 통계업체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지난 수개월간 미투 운동은 사무직 근로자 중심으로 이뤄져 왔고, 특히 대중에 익숙한 업종에 국한돼 왔다”며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도 사회적 신분 때문에 법정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을 때가 많으며,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유색인종이다”고 지적했다. 실제 10여 년 전 유색 인종 여성들을 위해 미투 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의 노력은 그동안 크게 조명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미투 운동은 보다 많은 여성들을 권리 신장을 위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성폭력을 폭로하거나 분노를 표하는 해시태그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한때의 유행으로 끝난 적이 많았다”며 미투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때라고 전했다. 
 

  더불어 많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이제는 남성들이 움직여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남성 대부분이 성폭력을 휘두르진 않지만 주변의 성폭력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송재룡 교수는 “지속적인 공론화를 통해 남성이 무심하게 하는 행동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불균등한 힘을 사용해 여성들을 공격하고 침묵케 하는 구조와 문화의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폭로’의 시간을 지나 ‘해법’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의 여성 권리 향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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