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Focus] 일본 자위대 논란
모든 국가의 깃발은 하늘아래 평등하게 휘날린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개의 깃발은 국제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바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이다. 특히, 현대의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의 게양이나 노출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화헌법에 따라 교전권이 금지돼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가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군기로 사용하면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둘러싼 우려가 거세지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토분쟁과 자위대 확대 통해 우익화 되어가는 일본정치
한국과 일본은 현해탄을 사이에 둔 이웃나라이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역사와 함께 양측 사이에 패인 감정의 골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특히,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큰 파문을 낳으며 이에 맞선 일본 노다 내각의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등 양국 관계는 급격히 경색되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보수 우익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본의 우익인사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지난해 11월 압도적인 표 차로 시장에 당선된 이후 이번엔 대표적인 우익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지난 3월 신당창당과 함께 ‘보수국가’의 기치를 내걸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일본사회 내부의 네오내셔널리즘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1년 3월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
고는 일본 국민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일본 민주당 정권은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으로 교체됐다. 자민·공명당과 3당 합의에 의한 소비세 증세법안 타결과 오이(大飯) 원전 재가동 결정 움직임 등 노다 정권은 국민 여론을 하나로 모으고자 ‘결단하는 정치’를 내걸며 독주를 꾀하고 있다. 도쿄대의 강상중 교수와 요시미 슌야 교수는 일본의 우익세력이 일본중심의 국사(National history) 바로 세우기와 강한 국가 만들기를 주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상중 교수에 의하면 노다 정권은 민주당 대표선거의 재선을 통해 임기 만료까지 정권을 유지할 계획으로 자민당에 환영받을 만한 발언을 연일 내놓고 있다. 중국·대만과 갈등 중인 센카쿠(尖閣)열도의 국유화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허용 발언 등이 그것이다. 강 교수는 덧붙여 국민과 정부에 보다 확고한 시각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북 익산에 거주하는 김용우(28) 씨는 “일본의 우익화는 구제국주의의 유산이며 경제적, 사회적 침체기에 들어선 일본이 한국의 문화적, 산업적 발전을 못마땅해 하는 질투심의 표출”이라며 일본 정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려대학교 일어문학과의 김채수 교수는 일본 우익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지와 오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우려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일본 우익은 근본적으로 민족주의적이고 반외세이다”라며 일본 우익이 자국에 필요한 모습이라면 얼마든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 왔다고 주장했다.
집단 자위권 확대 야욕에 제국주의 망령 부활하나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일본에 대해 연합국은 일본의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국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제 9조, 이른바 평화헌법을 채택했다. 1946년 11월에 공포한 이 법은 한 번도 개정한 적이 없었다. 그 내용은 전쟁 및 무력행사에 대한 영구 포기와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은 1950년에 미 점령군의 명령에 의해 일본국내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찰예비대를 창설하고 이후 1954년에 자위대가 발족된다. 자위대는 사실상의 군대이지만 평화헌법 때문에 자위대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근 일본 노다 정권의 총리 직속 위원회는 7월 5일 NHK 등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안전 보장 측면에서 ‘능동적이고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헌법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국에 대한 제3국의 침략을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해석하고 이에 맞설 수 있는 권리로, 다른 나라의 침략에 맞서 자국을 지키는 ‘자위권’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특히,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총리 지시로 일본의 중장기 비전을 검토해온 국가전략회의 산하 ‘프런티어 분과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 등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와의 안전보장 협력을 심화하기 위해 협력 상대로서 일본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 등을 기존 제도와 관행의 수정을 통해 안전보장 협력수단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다 총리는 지난 7월 26일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를 포함해 우리나라 영토나 영해에서 주변국에 의한 불법 행위가 발생하면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며 “이러한 대응에는 필요에 따라 자위대를 이용하는 방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9월 민주당 대표 경선을 대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국내 학자들은 집단적 자위권 문제뿐만 아니라 일본의 잠정적인 핵무장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원자력학회회장 장순흥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일본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이미 충분하며 핵재처리 시설도 보유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수준은 높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이 핵무장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좀 더 명확하게 핵개발 의지가 없다는 걸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몇 백 개의 핵탄두를 몇 개월 안에 제조할 수 있다며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못지않게 위협적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 교수는 일본의 원자력기본법이 개정되며 ‘일본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에는 정치적 함의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한국의 시각이 기우라는 입장도 있다.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다른 국가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법을 개정했다고 해서 일본이 핵무장을 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일본 국민이 핵무기 보유를 납득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또, 전 일본 방위연구소 총괄연구관직을 역임한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연세대 교수는 집단적 자위권 해석을 바꾸자는 것일 뿐 곧바로 헌법을 바꾸고 재무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히데시 교수는 원자력기본법에 ‘안전보장에 이바지한다'는 문구를 포함한 것도 핵무장보다는 원자로 테러 대처 등 안전보장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평화헌법 정신 어긋난 ‘자위권’은 정당성 없어
노다 정권이 보이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행보는 주변 국가에는 국가안보에 대한 ‘적신호’로 비춰지고 있다.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월 7일 밤늦게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의 신성한 영토를 사고 팔 권리는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하며 중국은 댜오위다오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8월 13일 홍콩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保釣行動委員會) 소속 활동가들을 태운 치펑(啓豊) 2호가 센카쿠섬에 도착했다. 일본 정부는 상륙한 7명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시민단체 회원들을 입국난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노다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관심에 대해 국내 여론은 뜨겁다 못해 폭발적이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한국진보연대 등 30여 시민단체는 “일본은 한반도 재침략을 노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기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시민단체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보이는 관심에 대해 “이는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일본 헌법 9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일본 의회가 원자력 기본법 날치기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데 이어 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정식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점은 동북아 안보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8월 13일 이슈메이커에서 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위대 확대 및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한 일본의 우익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다수의 시민들이 국제 평화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향후 우리 정부의 확고한 외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이날 조사에 참여한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강한결(27) 씨는 한국인에게 일제 강점기라는 아픈 역사가 있는 한 오늘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이 지나도 똑같을 것이라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현재 일본은 올해 혹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일본은 독도의 한국 지배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점을 두려워해 반발을 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져 가겠다는 주장도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지 교수는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은 분쟁해결 방법으로 국제사법재판소를 제외했다”며 “그렇기에 40여 년 간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한 번도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공식적으로 제의한 적 없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국내용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겠다고 몇 차례 말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국내용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일본도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영토 문제와 관련해 정치인들이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언동이 이어지면서 양국 관계에 새로운 파장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올해 방위백서에서 독도의 관할부대까지 명기했다. 평화헌법에 근거해 국가 간의 교전권 포기와 어떠한 전력도 가지지 않는다는 근거를 교묘히 없애고 독도에서 한일 간 민간인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하켄크로이츠와 욱일승천기로 돌아와 보자. 독일과 일부 동유럽 국가는 나치 독일을 상징하는 갈고리 십자모양의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한 상징물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욱일승천기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일본 내부 인사들도 알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일본 정부는 일본 관광객에게 욱일승천기를 가지고 베이징에 오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번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욱일승천기를 연상케 하는 운동복 차림의 일본선수단과 이를 모르쇠로 넘어가는 일본 정부의 행동은 일본의 자위대 논란과 맞물려 상당 부분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일본의 집단 자위권 주장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역사 문제에 대해 보다 확고한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책을 기대해본다.
기획/ 안수정 기자 글/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