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운 산업기밀유출 피해
등잔 밑이 어두운 산업기밀유출 피해
  • 이희수 기자
  • 승인 2012.08.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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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울리는 기술 반출에 산업 보안 적신호
[이슈메이커=이희수 기자]

[Technology War]

 

IT강국으로서 굳건히 지켜온 대한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 간의 기술유출 문제 때문이다. 산업기술유출 문제는 협소하게는 국내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간의 유출 공방에서 넓게는 해외로의 기술유출 등 넓은 범위에 걸쳐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평택 현곡산업단지에 입주한 이스라엘의 오보텍사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아몰레드(AM-OLED), LG디스플레이의 화이트 올레드(White OLED) 회로도 등 핵심기술을 빼내 국외로 반출한 것으로 드러나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업기밀유출은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목되어 그 양상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기업들의 숨 막히는 기술유출전쟁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핵심기술에서 디자인 시안까지 기술유출 피해 다양
최근, IT업계 대기업 간의 산업기술유출을 둔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유출 공방이 세간의 화제이다. 양측은 경찰 조사 단계부터 검찰의 기소까지 서로의 주장에 반박을 이어가며 날 선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삼성 측은 일부 연구원들이 LG디스플레이로 이직하면서 LG가 기술을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LG 측은 기술 유출이나 부당한 인력 유인 행위가 아니라며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심재무 삼성디스플레이 상무는 7월 13일 회견에서 LG디스플레이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며 이번 기술유출로 수십 조 원의 시장 잠식 우려를 표명하는 한편 민사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방수 LG디스플레이 전무도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기소 결과가 당초 경찰 수사보다 대폭 축소되었다며 이는 삼성의 주장이 과장된 것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1, 2위를 다투는 두 ‘공룡’은 이제 법정에서의 날 선 공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난 7월 16일 이와 관련, LG디스플레이 등의 13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일단은 삼성의 손을 들어준 상태이지만 법정 공방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산업기술유출은 비단 대기업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보안망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전하진 새누리당 디지털정당위원장은 국내 기업 8곳 중 1곳이 최근 3년간 기술유출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5일 밝혔다. 기업 유형별로는 벤처기업 13.9%, 대기업 13.0%, 중소기업 11.9% 순이었고 기술유출 사고 1건당 평균 피해금액은 16여억

원으로 대기업 27여억 원, 벤처기업 22여억 원, 중소기업 11여억 원 등이었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연차별 기술유출 비율은 2009년 14.7%, 2010년 13.2%, 2011년 12.5%로 해마다 줄어들었으나 평균 피해금액은 2009년 10억 원, 2010년 15억 원, 2011년 16억 원으로 오히려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하진 의원은 “인력과 경제력이 열악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기술유출 피해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 차원에서 보안시스템 구축 등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기술유출문제는 중소기업에 있어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대전에서 정보보안업체를 운영하는 박한용(가명, 48) 씨는 공직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 증명발급에 대한 문서의 보안화에 대한 연구 끝에 증명서 파일의 원본대조필을 만들어 문서위조 방지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곧 여러 대기업에서 그에게 협력을 제의해왔다. 박 씨는 국내 모 대기업과 협약을 맺기로 했지만 그가 탄생시킨 기술은 어느 틈에 그 대기업에서 제안해낸 것처럼 포장되어 있었고 곧 정부정책에 따라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박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억울해서 소송도 불사했지만 몇 번의 소송 끝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박 씨의 경우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원천 기술이 유출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기술유출 피해의 양상은 모방자가 디자인 시안이나 제품의 외형을 완전히 똑같이 베끼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독일 하노버의 세빗(CeBIT) 등 세계적인 대형 IT관련 전시회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술과 디자인 상당 부분이 외국기업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기술유출자들은 IT관련 전시회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시제품을 촬영해 짧게는 한 달 안에 카피하기도 한다. 아이리버의 경우 중국에서 모방한 제품이 세빗에서 버젓이 전시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신제품이 출시되기도 전에 인터넷 등에 먼저 공개돼 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차량의 경우 아직 CF에도 나오지 않은 미공개 사진이 본사도 모르게 동호회 사이트에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다. 이한응 기아차 마케팅 부장은 “출시에 앞서 모델이나 기술이 공개되면 경쟁사가 모방할 수도 있고 이미 시장에 나온 제품 판매에도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출시되지 않은 차량 등을 무단으로 촬영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스파이샷’은 주요 포털사이트 및 인터넷 자동차 동호회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신형차를 개발하는 업체에 예기치 못한 피해를 안기고 있다. 실제 현대자동차는 2,000억 원을 들여 개발한 신형 싼타페DM의 스파이샷 유출로 한 달 동안 192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 지난해 현대차 제네시스 스파이샷을 유포한 하청업체 직원에 대해 법원은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싼타페 DM 스파이샷을 촬영한 직원 백철수(가명, 29) 씨도 영업비밀 누설 혐의로, 백 씨에게 건네받은 사진을 인터넷에 게재한 현역 군인 장이한(가명, 34) 씨도 곧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정점영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1대 산업기술유출수사2팀장은 “장 씨의 경우 인터넷에 10여 분 글을 올렸다가 바로 삭제됐지만 그 사이 파워블로그 등을 통해 사진이 퍼져나간 탓에 업체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올린 의도 및 노출된 시간 등과 상관없이 유포 행위 자체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덧붙여  “미출시 차량의 외부 디자인이 공개돼 다른 업체에서 모방할 수도 있고 구형 차량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등의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직원이직과 경쟁사간 치밀한 유출조직 운용 원인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기술 유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가운데 산업 기술 유출 피해를 겪은 곳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취약한 보안 인프라와 허술한 인력 관리 탓인데, 국내 중소기업에 비해 피해 사례가 세 배 이상 많았다. 17일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기술보호 역량 및 수준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138곳 중 61곳(44.2%)이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국내 중소기업 중 피해를 입은 곳(12.5%)과 비교하면 3.5배 높은 수치다. 대부분 기술 유출사건이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내부소행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 기밀을 유출한 사람으로 ‘현지 채용 직원’이 82.0%(복수 응답)로 압도적이었고 협력업체 관계자(34.4%), 현지 대리인(24.6%), 컨설팅 업체(23.0%), 현지 경쟁기업(19.7%), 본사 파견 직원(19.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 M사의 경우 지난해 현지 협력업체 관계자가 비밀문서를 빼돌려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봤다. 핵심 문서를 암호화하고 직원에게 영업 비밀 준수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나름의 보안책을 세웠지만, 인력에 의한 기술유출에는 어쩔 수 없었다. 기업들은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평균적으로 1,950만 원을 투입하지만 대기업은 1개 기업 당 평균 1억2880만 원을 투입하는 데 비해 자금운용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1,770만 원, 벤처기업은 1,34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기밀유출 방지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중소기업은 지난해 50억 원 규모의 보안시스템 구축 등 총 110억 원의 ‘중소기업 기술유출 방지’ 예산을 요청했지만 올해 예산안에 반영된 규모는 37억 원에 불과했다. 2010년 17억800만 원, 2011년 26억600만 원에 비해 다소 늘었지만 수만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수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은 제대로 된 보안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기업환경이 다른 외국에 진출하다 보니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응답 기업들의 60.1%는 보안 규정을 갖추고 있지 않았고, 85.5%의 기업은 외부인 출입관리대장을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 진출하는 중소기업 및 벤처업체가 늘고 있지만 자금력이 약해 산업보안에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정책적인 뒷받침과 함께 기업의 대응력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유출문제, 공고한 인사 관리 비롯한 원천 보안시스템 출구
산업기술유출 및 보호와 관련해 법조계, 수사기관 전문가들은 산업기술이 유출됐을 경우 이를 차단하기 위해 민·형사상 절차 이외에도 증거보전 등의 신속한 대책이 논의 및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청 이재훈 외사수사계장은 3일 산업기술보호 활동에 있어 사후 수사 중심의 대응방식에서 탈피해 가해 기업 등에 대한 실질적 제재와 피해 기업에 대한 구제 지원으로 경찰의 활동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의 산업기술유출수사대는 서울 등 전국 8개 지방경찰청에서 활동 중이며 올해부터는 산업기술유출 신고·상담전화(1566-0112)를 운영, 기술유출에 대한 피해 상담·수사의뢰·제보 등을 접수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김지현 변호사는 기술유출과 관련, 영업비밀 분쟁의 특성상 피해 기업의 가처분 신청은 실제 유효한 수단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산업기술 유출 예방으로 보안의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최고경영자(CEO)의 보안정책 의지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기업보안협의회 회장인 최진혁 대전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산업기술 유출의 가장 무서운 위협은 ‘보안’에 대한 ‘무관심’, ‘심적 저항’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최 교수는 보안이 그 기업의 비즈니스를 도와주기 위한 현명한 조치라는 인식보다는 인적 또는 재정적 부담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실효성 있는 보안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안정책은 항상 최우선순위를 가지고 마련돼야 하며 명문화된 보안정책의 실행을 통해 기업은 그 구성원들에게 보안전략 및 자산 보호에 관한 준거 표준을 제시하고 보안 프로그램 수립을 위한 기준점 및 초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19대 정기국회가 개원하자마자 김도읍,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국가 산업 핵심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 5년 이상 징역형과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5년간 정보통신망에 신원을 공개하자’는 요지의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박병석 민주당 의원도 산업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징역 7년 이상이나 벌금 15억 원 이하’로 강화하자는 요지의 법률 개정안을 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 문제는 더 이상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일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기에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해지고 있다. 정부의 발 빠른 산업기밀유출 예방이 국내 기업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기획/ 안수정 기자 글/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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