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민족의 소리로 전 세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단독]한민족의 소리로 전 세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2.08.26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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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담은 소리로 40여 년간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주다
[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Special Interview] 소민 김영임 국악인

한민족의 소리로 전 세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다

 

혼을 담은 소리로 40여 년간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주다

 

국악계의 거성이자 효심을 노래하여 어르신들의 심금을 울리고 소리하나로 민중의 애환을 보듬는 국민명창 김영임 선생. 그는 국악인 최초로 영국 로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하고 국악인 최초 밀리언셀러 앨범 <회심곡>을 보유하고 있다. 또 경기소리 국악인 최초로 뉴욕 카네기홀 대극장 단독 공연과 경기 12잡가 3시간 완창 앨범을 출시하였다. 잘나가던 무용을 그만두고 국악인으로 전향한 김영임 선생은 1973년 MBC국악드라마 <내 강산 우리노래>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며 본격적으로 국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영임 선생은 1995년 KBS 국악대상 대상, 1997년과 2004년 한국방송대상 국악인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 국민화관훈장과 대통령상 수상하였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혼을 담은 한민족의 소리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김영임 선생은 매년 6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누적관객 100만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민요 전수를 위해 아직도 소리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소리인생 40년을 맞이하셨습니다. 감회가 어떠신가요?

“19살 즈음에 우리소리에 입문 해서 벌써 40여 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처음부터 소리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까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10여 전 과로로 쓰러져 6개월 쉰 것을 제외하면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이러한 삶 가운데 우리소리는 저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소리를 통해 우리나라 국악계와 세상밖에 ’김영임‘이란 이름 석 자를 알렸고, 우리국악에 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소리와 함께하시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언제인가요?

“우리소리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서 과분한 사랑을 너무나 많이 주셨습니다. 소리에 감정이 있어서 너무 아름답고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감사하고 행복하면서도 우리소리에 대한 더 큰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죠. 간혹 연세가 많으신 분들 중에 마지막으로 저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하시거나 제 음반을 가슴에 품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얘기를 듣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제 가슴에 한켠에 떨림과 감동이 일어납니다.”

 

 

우리소리가 받는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나요?

“저는 우리소리를 전하는 사람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온 분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갈 때 ‘나는 다시 와야지’, ‘다른 사람도 꼭 데리고 와야지’라는 마음을 갖고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무대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제가 새로운 길을 창조하고 후배들에게 남겨 놓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공연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연출, 조명, 음향, 의상 등 모든 것을 따로 구성하고 하나의 팀이 되어 무대위의 김영임을 만들어내는데, 저의 길을 따라 걷는 후배들이 세상이 좋아지고 발전되는 만큼 좀 더 퀄리티가 높은 좋은 무대를 개발하고 그 무대를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소리를 전하도록 제가 모범이 되고 진정한 선생이 되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소리의 개발과 제2의 김영임을 위한 인재양성이 지속돼야 할 텐데요?

“40여 년 전 제가 처음 소리를 접할 땐 녹음기도 없고 악보도 없어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입만 바라보고 그대로 기억해서 집에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이 그때와 같을 수는 없겠죠. 예전 방식대로 소리를 전한다면 견딜 수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요즘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맞춰 갈 수 있는 부분은 맞춰 가면서 그들이 소리를 좋아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분명한건 방법에는 변화가 있을지 몰라도 소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저 김영임이 처음 배운 우리소리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제자들에게 소리를 전수해야 됩니다.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경기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시대의 김영임이 민요를 새로 작곡을 해서 노래를 발표하면 이 시대의 우리소리가 되듯이, 우리소리에 대한 인재양성이 이뤄지면 그 시대마다 또 다른 이들에 의해 우리소리의 개발이 지속되고 사랑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소리의 위상과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개인적으로 영국 로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하고 카네기홀에서 3000석 매진도 기록하며 작게나마 우리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국위선양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누구보다도 앞장설 각오가 되어있지만, 우리소리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정부차원에서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을 세우고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과 젊은이들의 변화된 인식이 필요합니다. K-POP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가 됐듯이 젊은 세대들이 국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전통 소리를 사랑하며 세계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소리를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들으면 좋을까요? 

“제가 부르는 경기소리는 민중의 노래입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회심곡, 아리랑, 한오백년, 청춘가 등 타령 종류가 다양하게 많은데 각 노래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이는 시대마다 그 시대에 걸 맞는 노래들이 쏟아져 나왔음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는 창자들이 얼마만큼 표현을 잘해서 상대방에게 공감이 가는 소리를 들려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감동이나 울림에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마음이 열려있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락에 ‘저런 것이 있었구나’ 하고 들으면서 소름도 돋고 감동도 받는 거예요. 들려주는 국악인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자 하는 청중의 자세도 무척 중요합니다. 이건 그냥 단순한 가요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우리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들려 주신다면요?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소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잘 들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런던 로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같은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 그들이 하는 연주소리에 우리 소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게 잘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소리가 그들의 소리에 따라가면 안돼요. 그곳의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은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소리를 하는 사람은 저 하나잖아요. 저 한사람이 이 사람들 모두를 리드하는 겁니다. 그런 카리스마도 없이 해외가 가서 그들의 소리에 기대는 공연은 국악이 아닙니다. 우리 국악을 하는 사람은 외국 오케스트라가 천 명이 있어도 리드해 갈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소리의 초심’을 잃지 않고 같이 하는 외국 협연자들이 ‘저게 바로 국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소리의 위대함을 심어주고 국악에 대한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그리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 이 모습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왜 소리를 했을까’ 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고전무용을 하며 우리소리를 접하는 순간 처음 듣는 소리에 몸이 매료되어 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소리를 하며 ‘소리 아니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소리에 매진해 목에 피가 올라올 정도로 노력한 그때, 아마 지금의 ‘국악인 김영임’을 꿈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해 선생님과의 금술은 우리나라 대표 부부로서 항상 거론되는 부분인데요.

“이상해 선생님은 남편이자 연예계 선배로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 줍니다. 겉보기에 자상하진 않지만 속정이 많은 분이예요. 표현은 안 해도 내 와이프가 이렇게 우리의 국악을 발전시키니까 나름대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자부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연할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같은 무대에 직접 올라 팬들에게 보답을 해주시는 분이예요. 이런 남편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끝으로 김영임 선생님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세요.

“제가 수십 년 동안 우리소리를 하면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버님, 어머님 급기야 젊은 친구들까지 김영임의 예술 세계에 관심을 갖고 많은 박수와 사랑으로 응원하시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간혹 실수를 했는데도 ‘김영임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응대해주신 분들도 우리소리를 사랑하는 대중들이시거든요. 그분들의 사랑에 수천 번 큰절을 해도 다 보답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손이 없어서 오고 갈데없는 노인 분들을 찾아가서 제 소리도 들려드리고 손도 좀 잡아드리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에 항상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0년간 원 없이 소리를 냈지만 아직도 늘 참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매번 더 준비하고 노력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한 한국의 소리, 그 진정함에서 우러나오는 우리 소리의 담백한 맛과 소박한 멋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소민 김영임 선생. 소리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아픔을 잊고 소리만 생각하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는 국민명창.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리를 사랑하는 그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소리를 세계에 전하는 우리 국민명창을 오래도록 사랑해주길 바라며 우리의 소리로 세계와 소통할 그 날에 소민 김영임 선생이 그 중심을 지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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