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심장 안에 숨어있는 대한민국 역사
중국 심장 안에 숨어있는 대한민국 역사
  • 장윤재 기자
  • 승인 2017.09.04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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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장윤재 기자]

중국 심장 안에 숨어있는 대한민국 역사

중국 경제 성장 엔진에 깃들어 있는 ‘윤봉길’ 의사의 애국심

 


중국의 멋과 미(美)가 한데 어우른 경제 중심도시인 ‘상해’에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로 잘 알려진 ‘루쉰공원(魯迅公園)’이 있다. 중국 현대문학의 창시자인 루쉰(魯迅)의 묘와 기념관이 자리한 이 공원에는 1926년부터 독립을 위해 산화한 영원한 청년 의사인 윤봉길 의사가 의거했던 임시정부 청사가 있다. 지금 이곳은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으로 남아있다. 우리의 영웅이 깃들어있는 상해를 직접 방문해보았다.


놀라운 성장 중인 중국의 심장 ‘상해’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정치의 중심이자 가장 역사적이고 남성적인 북방의 도시라고 한다면, 상해는 항구도시이자 경제 중심지로서 여성스러운 남방의 도시이다. 중국 경제의 중심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솟고 있는 상해는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나 ‘개혁개방의 선봉대’라고 불리기도 하며, 마력의 도시(魔都),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여인(千面女)의 이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중국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도시나 가장 우아한 도시로도 표현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별칭은 상해가 겪었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상해는 역사적인 중국 대도시가 갖고 있었던 것과는 판이한 역사를 겪어 왔다.
 

  상해는 창장(長江) 하구에 있으며, 그 면적은 6,340㎢로 서울의 10배이다. 인구는 1,858만 명으로 서울의 1.8배에 달한다. 상해는 지난 16년 연속 중국 전체 GDP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007년 1인당 GDP는 8,500달러를 넘어 중국 전체 평균의 3.5배에 달한다. ‘천지개벽’으로 비유되는 푸동(浦東) 개발, 양산항 건설, 2010년 세계 엑스포 개최 등 상해는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실제로 천년의 도읍지인 베이징과 비교해보면, 상해는 경제적인 위상을 빼놓고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불과 80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상해는 태평양 앞바다를 건너온 각종 문화를 받아들이고 혼합하는 거대한 용광로로 변했다. 베이징이 21세기 세계를 향해 웅비하는 중국의 수도라면, 반세기 전만해도 ‘동방의 파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상해는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로 비유되기도 한다.


 

 

상해 대표 관광 명소이자 금융 경제 중심 ‘와이탄(外灘)’

20세기 초, 상해가 중국의 금융 중심이 됐을 무렵, 와이탄에는 대형 은행들이 모이면서 고층 빌딩이 들어서 허허벌판이던 곳이 높은 빌딩 숲을 이루게 됐다. 유럽풍에 건축물로 이루어진 거리는 사람들에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상해는 많은 관광명소를 보유하고 있어 사람들에 이목을 끌고 있다. 이곳을 방문할 때에는 택시와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추천한다. 유독 많은 사람이 집중되는 곳인지라 그만큼 교통도 혼잡하기 때문이다. 상해는 지하철이 매우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와이탄에 유명한 쇼핑 거리인 난징동루역 2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거리를 구경하며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다.
 

  와이탄의 황포강(黃浦江) 강변 맞은편에는 동방명주 탑(Oriental Pearl TV Tower)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상해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다. 동방명주 탑을 주위로 펼쳐진 다채로운 중국 상해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광경은 말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선사한다. 미디어 그룹인 동방명주의 방송 수신 탑으로 1994년 준공된 높이 468m인 이 탑은 높다란 기둥을 중심축으로 구슬 세 개를 꿰놓은 듯 독특한 외형이 인상적이다. 이 밖에 세계 높은 고층빌딩으로 2위를 고수하고 있는 ‘상하이 타워(上海中心大厦)’는 상하이 푸동 신구에 있다. 2008년 11월 29일 착공하여 2015년에 완공된 이 건물의 높이는 632m, 128층으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다음으로 높다. 특히, 외벽에 모습은 9개의 원통형 공간을 겹겹이 쌓아둔 형태를 띠고 있다. 1층 로비에서부터 꼭대기 121층까지 약 360도 가까이 비틀어서 올라가는 건물 형태는 비상하는 ‘용(龍)’을 형상화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그곳

상해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백범 김구를 비롯해 한국에 독립투사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활동했으며, 윤봉길 의사가 독립을 외치며 거사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거점이 중국으로 옮겨지면서 항일운동이 중국, 만주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지원과 안내를 받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윤봉길 의사다. 중국 상해 훙커우취(上海虹口區)에 있는 공원에는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 1881~1936)의 묘와 기념관 그리고 윤봉길기념관 등이 들어서 있다. 윤봉길 기념관은 2003년 12월 4일 개관하였으며, 윤봉길 의사의 출생부터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 전후의 사적을 보여주는 유품과 사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윤봉길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 8호선을 타고 홍커우 축구장 역(虹口足球場) 1번 출구로 나가면 루쉰공원으로 갈 수 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 1시 방향 안쪽으로 들어서면 윤봉길기념관으로 가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공원 내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길에는 사람들끼리 한 데 모여 장기를 두는 모습과 중국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다양한 광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윤봉길기념관의 입장권은 15위안으로 사진이 있는 학생증으로는 7.5위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6시나 6시 30분까지 개장을 하지만 발길에 적어 일찍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10에서 2시 사이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기념관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뭔지 모를 무거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한층 경건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전시된 물품과 당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글과 상영되는 스크린을 감상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목은 “1930년 그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무엇인가 큰일을 해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윤봉길 의사는 야채상으로 가장하여 미리 기념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기념식장에서 투척할 수류탄도 제조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저격용 물통 모양의 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를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였다. 그리고 식이 진행 중일 때 식장으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다. 이 폭발로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는 즉사하였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 공사 시케미쓰(重光癸) 등이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蔣介石)는 “4억 중국인이 해내지 못하는 위대한 일을 한국인 한 사람이 해냈다”고 격찬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오늘날 상해는 중국 시장에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새롭게 부상하며 활동하고 있는 요충지이기 전에 한국을 지키고 순국한 윤봉길 의사를 떠올리길 바란다. 이렇게 상해는 한국과 밀접하게 연관됐으며, 지금도 그 삶의 울림이 전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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