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정치지형 변화 Ⅱ] 흔들리는 유럽 좌파정치
[유럽의 정치지형 변화 Ⅱ] 흔들리는 유럽 좌파정치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7.06.02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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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우파와 구분되지 못하고 정치적 위기에 처한 유럽 좌파정치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의 불씨를 살릴 구원투수 나타날 수 있을까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대표였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wikimedia

 

현 유럽의 좌파 정당들은 문화적으로 진보를 추구하고 경제적으로 중도적인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좌파언론들은 기존의 진보·좌파 지지자들이 더 이상 좌파정당을 양극화를 해결할 대안 세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좌파 정당이 경제적으로 보수정당과 큰 차별성을 띄지 못해 문화적 진보의 성격만 강해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유럽의 총선, 대선 추세를 보면, 좌파정당은 경제, 문화적으로 공동체를 강조하는 포퓰리즘 정당에게 지지자들을 빼앗기고 있다. 유럽 각국의 좌파정치가 처한 정치적 위기를 최근 흐름과 함께 짚어본다.



설자리 잃어가는 유럽 좌파정치


유럽 좌파진영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비롯된 경제침체와 반(反) 세계화 정서가 유럽을 휩쓸며 포퓰리즘과 극우 정당이 득세하자 기존 정통 좌파정당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유럽의 일부 좌파정당들은 우파의 정책을 수용하는 우클릭 노선을 통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21세기에 맞는 좌파진영 나름의 가치와 맞춤 별 정책을 대중들에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향후 유럽 내 좌파정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유럽 주요국에서 집권한 좌파 지도자들이 효과적인 경제성장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반(反)난민정서가 확산되면서 좌파 정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대신 극단주의 세력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형국이다. 작년 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3대 강국인 영국·프랑스·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좌파 정당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각 국가에서 대표적 좌파정당으로 꼽히는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은 지난 1980년대 이후 지지율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 국민 지지도가 3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신문에 따르면 스페인 사회당은 최근 지지율이 20% 초반대로 급락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중도좌파 민주당 소속인 마테오 렌치 총리가 국민투표 부결로 총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유럽에서 좌파 정당이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점으로 풀이된다. WSJ는 “유럽 좌파 세력들이 경제정책에서 우파와 구분되는 뚜렷한 노선을 만들어내지 못한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채 감축에만 매몰됐다”며 “이는 노동자·중산층 등 좌파 정당 핵심 지지자들에게 실망만 줬다”고 분석했다. 에프클리디스 차칼로토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최근 성명에서 “중도 좌파와 좌파 모두 잘못하고 있다”며 “좌파만의 경제정책을 내놓지 못했고 이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중동에서 오는 이민자들의 이주를 무리하게 수용한 것도 좌파 정당들에 독이 됐다. WSJ는 “좌파 정부는 난민 수용에 대해 자국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며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 적극적인 이민자 수용정책을 펴는 유럽연합(EU) 정책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난민에게 우호적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난민수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며 “이는 유럽 유권자들의 반난민정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좌파 정당의 몰락을 기회로 극단주의 세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층에서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프랑스 노동계급 유권자들은 사회당 등 좌파 정당을 버리고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을 선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문은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보다 유럽 좌파 정당의 몰락이 더 큰 위기라고 분석했다. WSJ는 “미 민주당과 달리 유럽 좌파 정당들은 중도 좌파, 좌파 등 이념에 따른 분파가 다양해 내부 경쟁이 심하다”며 “그만큼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프랑스는 최근 중도 성향의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좌파인 사회당이 정치적 변두리로 쫓겨났다. 전임자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4%까지 곤두박질치자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올랑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할 때만 해도 좌파진영의 분위기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회당은 2010년 5월 정책공약에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우파 자유주의’의 산물로 규정하고 부유세를 무려 75%까지 상향하는 조세개혁을 통한 양극화 해소 정책을 내걸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문제는 좌파 집권 이후로, 실업률은 계속 치솟았고 연이은 테러 등에 따른 반(反) 이민정서까지 거세졌다. 부실한 좌파정권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국민들은 사회당의 반 자본주의 강령과 ‘부자 증세’ 정책 대신 극우정당의 반 이민정책에 더욱 많은 지지를 보내며 등을 돌렸다. 

 
그 결과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역임한 에마뉘엘 마크롱은 좌ㆍ우파를 아우르는 정치운동인 ‘앙 마르슈’(en marcheㆍ전진)를 출범시키고 결국 당선에까지 이르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더 이상 좌파로는 프랑스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여기고 우파 정책을 일부 수용하는 행보를 택한 것이다. 실제 마크롱은 사회당의 대표적 노동정책인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46시간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추진하다 노동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기도 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유럽국가들의 좌파진영 


프랑스 좌파진영의 상황은 유럽을 이끄는 주요국인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도 비슷하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ㆍEU 탈퇴)가 결정되면서 유럽을 휩쓰는 반 이민정서의 직격탄을 맞았다. 영국의 EU 잔류를 당론으로 내걸었던 좌파 노동당은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인 25%를 기록했다. 집권 보수당(42%)에 17%포인트나 뒤지는 결과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노동당이 향후 집권을 위해서는 친 기업적 노선 등을 통해 중도로 한걸음 다가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97년 총선에서 당시 노동당을 이끌며 국유화, 소득분배 같은 전통 좌파의 공약을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을 내세우는 이른바 ‘제3의 길’을 통해 18년간 지속됐던 보수당의 집권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하지만 작년 영국 노동당 대표로 당내 소수 강경좌파로 꼽히는 제러미 코빈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노동당은 2020년 총선에서도 패배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빈은 우경화한 블레어 전 총리가 집권하던 시절 노동당의 모든 정책을 반대했고, 지금도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삭감, 대학 수업료 면제 등 전통적 좌파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SP)이 2005년 총선을 기점으로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CDU)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연패한 데 이어 내년 9월 총선에서도 패배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사민당은 2000년대 한때 지지율이 40%대를 기록했으나 최근은 20%대로 반 토막 났다. 이민자 차별정책을 앞세운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세하며 지지율을 잠식한 결과다. 독일 중도우파 유럽인민당의 지그프리드 무레산 대변인은 작년 트위터에 좌파정당 지도자들의 몰락에 대해 ‘유럽 사회주의자들에겐 불운한 1주일, 렌치 총리 사임, 올랑드 대통령 불출마. 스페인, 독일, 폴란드 등 유럽 내 더 약해진 좌파’란 글을 올린 바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중도좌파인 민주당의 마테오 렌치 총리가 추진했던 개헌안이 부결되면서 렌치 총리가 최근 사임했다. 앞으로 펼쳐질 이탈리아 조기총선에서 우파 정당들의 부상이 점쳐지고 있다. 이번 국민투표는 개헌안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중점을 둔 중도 좌파 정책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으로 변질됐고, EU에 회의적인 야당인 오성운동은 렌치 총리의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개헌안 반대 표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전통적인 좌파 정당들은 선거 패배를 극복하고 반전을 모색하려고 해도 미국의 좌파보다 유권자에게 제시할 정책이 제한적이다. EU가 요구하는 부채 목표 때문에 좌파가 전통적으로 지지해 온 정부 지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회원국의 정부의 경우 미국과 달리 돈을 찍어서 경기를 개선할 권한이 없어 제약을 더 받는다.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를 다시 거대한 불길로 만들 수 있을지 관심 


유럽국가들의 좌파진영은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지하는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작년 말에 열린 루마니아 총선에서는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PSD)가 승리를 거뒀다. 유럽에 부는 극우 민족주의의 거센 바람에도 루마니아 국민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보건 투자 확대 등을 내세운 사회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일각에서는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루마니아에서는 이민문제가 부각되지 않아 극우파가 득세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는 극좌정당들이 중도좌파 정당들을 밀어내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난과 긴축정책 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극좌정당인 포데모스가 제3정당으로 부상했다. 그리스의 경우에도 극좌정당인 시리자당이 재작년 열린 총선에서 총 300석중 145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허핑턴포스트는 “기득권 타파와 반 세계화라는 공통분모 속에 유럽 좌파진영에 대한 반감이 국가별로 극좌 또는 우경화로 분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유럽 좌파진영이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좌파정당들의 멸종도 상식 밖의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반(反)이민, 반(反)유럽’을 내건 극우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유럽 각국에서 진보 성향의 젊은 정치인들이 약진하고 있는 모습도 관찰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3월 1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총선에서는 제1당을 유지한 집권여당 마르크 뤼테 총리나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보다 GL(녹색좌파당)의 예시 클라버 대표가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GL은 150석 중 14석을 얻는 데 그쳤지만, 이는 지난 2012년 총선보다 무려 10석이 늘어난 것으로, 의석 증가 폭으로만 보면 원내 진출 정당 중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선거기간 극우 포퓰리즘 광풍을 막는 '방풍막'이 되겠다는 클라버 대표의 약속이 표심을 움직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네덜란드 총선은 극우 빌더르스 대표의 자유당(PVV)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점쳐지면서, 유럽 극우 포퓰리즘의 파괴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올해 30세의 클라버 대표는 정당대표 총선 토론에서 수려한 용모와 조리있는 말솜씨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렇듯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의 좌파 정당과 정치인들은 최근 급격한 위기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쓰러져 가는 유럽의 좌파 진영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구원 투수가 나타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눈이 유럽에 집중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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