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대한민국 스포츠의 적폐
‘성적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대한민국 스포츠의 적폐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7.06.0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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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성적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대한민국 스포츠의 적폐

이제는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거듭나야할 때


 

▲소치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선수단 ⓒwikimedia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약 8개월 가량 앞둔 현재, 대한민국은 어느덧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반열에 올라서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빛나는 결과의 뒤에 가려있던 한국 스포츠는 민낯을 드러냈다. 2003년 발생한 천안 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사고는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이에 따라 오직 성적만을 중시하는 스포츠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스포츠개혁이 이루어진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빛나는 영광 뒤에 가려졌던 부끄러운 ‘스포츠 강국’


19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린 대한민국 스포츠는 2002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빠르게 급성장했다. 이후에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대한민국은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만연해 있던 ‘성적지상주의’ 시스템은 선수들의 인권과 맞물리면서 수시로 문제를 야기 시켰다. 운동기계만 양산하는 학교체육 시스템, 그 속에서 희생당하는 학생 선수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부가 스포츠 4대 악으로 지적하기도 했던 승부조작과 파벌, (성)폭력, 체육계 학교 입시비리, 체육단체 조직 사유화 등 그간 성적지상주의에 가려 알면서도 외면해 왔던 많은 적폐가 수면 위로 드러났고, 국민들은 스포츠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대학스포츠의 경우 체육특기자 전형으로 인한 기형적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체육특기자 제도를 축으로 만들어진 학교체육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존재한다. 6만 여명의 체육특기자 학생 선수들 중 70% 이상은 올림픽 금메달이나 프로 무대 진출보다 대학 진학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체육특기자는 고등교육법 34조 2항에 따라 학업성적과 관계없이 운동 실적에따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체육특기자 제도가 40년 이상 지속되면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대학진학과 무관한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비인간적 훈련과 폭력 그리고 승부조작을 통해서라도 이겨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승리를 위해 모든 가치를 포기해 버리는 ‘승리지상주의’가 한국 스포츠를 지배하게 된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형적인 제도와 시스템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선수와 지도자들 간의 ‘폭력’ 문제도 큰 사회적 이슈로 지적되어 왔다. 얼마전 베이징 올림픽 역도 영웅인 사재혁이 후배를 폭행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한 번 폭행했던 후배를 술집으로 불러내 다시 때렸다고 밝혀지면서 스포츠계의 만연한 폭력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후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은 용납될 수 없다며 한동안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사재혁 사례에서 보듯 ‘성적지상주의’로 인해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지금까지 승리를 위해 폭력도 용인해야 했다. 지도자는 선수를, 선배는 후배를 때려서라도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자리를 잡아 온 것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병역 면제를 위해서,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과 평생 연금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생존할 수 있다는 '승리 지상주의'라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조화된 폭력은 단순 폭력을 넘어 스포츠 선수의 인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 특히 지난 2008년 스포츠계의 성폭력 파문이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아직도 근본적 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후배 폭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KBS1

 

 

 

대한민국 스포츠개혁,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스포츠계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 속에 지난 2007년 체육계는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초등학교 합숙소 화재를 계기로 학생 선수 인권 보장과 학습권 보장이라는 도전이 시작됐고, 연세대 농구부가 첫 주인공이었다. 체육특기자의 학습권 보장 프로젝트를 통해 엘리트 선수들이 책상에 앉았다. '공부하는 전문 선수' 육성과 함께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학교 스포츠 클럽 활성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작년 3월 오랜 진통 끝에 드디어 통합 대한체육회가 출범했다. 엘리트 체육을 주도하던 구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이끌던 구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 대한체육회로 새롭게 탄생했다. 말 그대로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을 하나로 통합했다.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의 의미는 지난 40여 년 이상 사실상 엘리트 스포츠만 집중적으로 육성해 왔던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데 있다. 스포츠강국을 넘어 스포츠 선진국의 전제 조건은 전 국민이 참여하는 폭넓은 ‘생활체육’의 저변에서 ‘엘리트체육’ 선수 자원을 양성하는 균형 정책이다. 그 핵심이 ‘학교체육’이다.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에서는 학교체육이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 양쪽 모두의 뿌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난 2011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학교체육진흥법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양성하기 위해 ‘최저학력제도’를 명문화했고, ‘운동하는 일반학생’을 기르기 위해 ‘학교스포츠클럽’ 육성을 의무화했다. 

 
지난 2016 리우올림픽에서 일본은 역대 최다 메달로 최고 성적을 냈다. 종합 순위에서 12년 만에 대한민국을 추월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는 주목받지 못했던 남자 육상 400m 계주에서 미국을 이기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믿기 어려운 성과를 냈다. 재도약하는 일본 스포츠의 힘, 그 원천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일본 학교 체육시스템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 선수와 일반 학생의 구분없는 운영되는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이 결국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결과론적으로 볼 때 국가가 선수를 승리만을 위한 도구로 쓰고자 할 때 선수가 아닌 인간적인 비극이 생기게 된다. 승리 지상주의와 승자독식 현상을 줄이기 위해 패자에 대한 관심과 보상을 늘리고 선수들의 전인적 교육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 것이 스포츠 개혁의 큰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포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새로운 정부를 맞아 새롭게 태어난 대한민국 스포츠가 진정한 개혁을 맞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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