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식화된 편견이 야기한 인종차별
도식화된 편견이 야기한 인종차별
  • 박지훈 기자
  • 승인 2017.05.02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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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지훈 기자]



 

도식화된 편견이 야기한 인종차별

사회변화보다 느린 사람들의 인식전환



 

▲일부 서양인들이 켈리 교수의 부인을 ‘유모’라고 오인한 영상의 일부분이다.ⓒBBC

 

 



서구사회에서 유모라는 직업은 대개 동양인 여성이 하는 일로 여겨졌다. 서양인 중 일부는 동양인 여성이 수동적이고 시키는 일에 충실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 시리즈의 주연 김윤진 씨가 연기한 한국 여성도 지고지순하고 수동적인 캐릭터였다. 편견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식이 전환되는 것을 지연시켜 옛날의 사고를 재생산하는 데 문제가 있다.




동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모로 여겨진 사건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결정으로 면직되었다. 외신도 이 소식을 급히 다뤘다. 영국 BBC는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Robert Kelly) 교수와 화상 전화를 연결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식을 전했다. 켈리 교수가 화상인터뷰에 응하는 중에 그의 어린 두 자녀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고, 이를 알아챈 동양인 여성이 당황한 표정을 하고 황급히 들어와 몸을 구부린 채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심각한 국제뉴스를 전하는 자리에서 두 아이가 벌인 귀여운 해프닝은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의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해프닝이 담긴 영상의 조회 수가 점차 올라가자, 영상 속에 등장한 동양인 여성의 정체가 뜻하지 않게 논쟁의 대상이 됐다. 영상을 본 해외 누리꾼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그 동양인 여성을 ‘유모(nanny)’라고 생각했다. 다시 정정 보도를 냈으나, 당시 주요 외국 언론매체들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그 여성을 ‘유모’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영상 속 아이가 그 여성을 ‘엄마’라고 불렀다며 일부 매체의 오보를 지적했다. 이어 작가 마리아 청은 일부 사람들이 그 여성을 유모로 착각한 데에는 아시아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상 속 동양인 여성을 유모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그 여성의 피부색이 아니라 다급한 행동 때문에 그런 판단을 했다고 자신들의 추측을 정당화했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이미 동양인 여성이 켈리 교수의 부인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일부 사람들이 다양한 근거를 대며 자신들의 틀린 추측을 정당화하려 하자 “그것은 인종차별주의”라고 반박했다. BBC는 켈리 교수와 다시 인터뷰를 하고 영상 속 여성 김정아 씨는 아이들의 ‘엄마’라고 확인하면서 논쟁은 일단락됐다. 이번 사건은 한국인 여성이 ‘아시아 여성은 수동적이고 유모 일을 많이 한다’는 일부 서양인의 편견으로 인해 유모로 오인된 해프닝이지만, 상대적으로 다문화사회가 자리를 잡은 서구에서도 사람들의 인식전환은 더디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국인도 외국인들의 인종과 국적에 따른 편견을 상당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 한국인 여성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는 혼혈인 자녀들과 대중교통을 탈 때 따가운 시선을 느낀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에게 “어쩌다 그렇게 됐냐”는 말을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최근 유튜브에 결혼생활을 담은 영상을 올리며 주목받고 있는 한국인 여성과 케냐인 남성이 있다. 남편인 J 씨는 영상에서 아내와 손을 잡고 있을 때 어르신들에게 가장 안 좋은 눈빛을 받는다고 말했다. K-pop의 매력에 빠져 한국으로 온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은 한국인 남성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 남성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알고 결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아프리카계 외국인이 혼자 있을 때 호의를 베풀어 주지만, 한국인과 이성적으로 얽혀있을 때 반감을 품은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복수의 경험자는 증언했다.

김정아 씨가 동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유모라고 오인을 받았듯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인도 한국인의 편견에 따라 응당 노동자일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가 있다. 인도인 나브라즈 싱(Navraj Singh) 씨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학교 근처에 사는 그는 이웃 주민들에게 종종 “여기 앞에 있는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학교가 원어민 강사를 구하는데 흑인 강사가 지원하자 백인 강사만 구하고 있다고 거부 의사를 밝힌 일이 발생해 여론을 들끓게 한 적도 있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일하는 핀란드 여성은 원장에게 높은 대접을 받지만, 동남아시아 출신 강사들은 영어강의 외에 힘쓰는 일까지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원장에게 차별적인 대우라고 항의한 핀란드 출신 강사는 원장으로부터 “(동남아시아 출신 강사들은) 백인이 아니라 그렇습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변모해가는 속도에 비해 인식의 개선이 아직 더딘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언어, 성별, 출신 국가, 인종, 종교 등의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년간 총 3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보수적인 종교계 일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제 서울은 연간 외국인 방문객이 전 세계 10위권에 드는 도시가 됐다. 한국에 일하러 오는 다양한 종교, 국적의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떤 국적, 종교, 피부색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을 막을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은 한국이 가진 국제적 위상에 부합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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