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 장인의 정신을 한국에 알려 나갈 것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특별하게 경험하는 시간의 가치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시계는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가운데 글로벌 명품 시계 시장은 200년 이상 금자탑을 공고히 쌓아왔다. 하지만 디지털 시계가 등장하고, 최근 스마트워치가 보급됨에 따라 기계식 시계 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실용성보다는 패션 혹은 사치품으로의 인식이 높아졌고, 특별한 ‘선물’로서 각인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계만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과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물건’에 대한 그리움으로 기계식 시계 시장은 두터운 방어진을 꾸리고 있다. 캐비노티에(cabinotier) 정신을 이어가며 트렌드에 맞는 기계식 명품 시계 시장의 약진은 계속되고 있다.
시계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베테랑 중 베테랑
불과 30여 년 전까지 대한민국은 스위스와 일본에 이은 세계 3대 시계 생산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울 종로구 예지동 일대는 국내 최대의 예물 상가이자 시계 명장들의 사관학교였고, 굴지의 대기업들도 시계 시장에 큰 비중을 두고 신사업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스위스 명품 시계의 등장과 맞물리며 생산보다는 수리와 유통, 수입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며 과거의 영광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새로운 대한민국 명품 시계의 브랜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나, 이 시기를 거치며 세계에 내로라하는 수리 장인들이 탄생하게 됐고, 보다 가치 있는 시계를 찾는 신시장도 열리게 됐다. 배명철 아티산코리아 대표는 현장에서 이 시기를 몸소 겪으며 대한민국 시계 수리의 장인 밑에서 수리부터 시작해 판매 및 수출, 신규 브랜드 론칭 등 전방위적 활동을 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동대문에서 시작해 홍콩 전역과 중국 본토에서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 스위스 인디 브랜드를 아우르는 기업을 설립해 자신들만의 확고한 위치를 쌓아 올린 아티산코리아(ARTISAN KOREA)의 배명철 대표를 만나 그들의 스토리를 심도 있게 다뤄보았다.
시장에 각인시킨 자신의 이름 석 자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선교사를 꿈꿔왔던 젊은 청년이 있었다. 총기정비병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보직으로 군(軍) 전역을 앞두고 부모님의 뜻에 함께하고자 아프리카 선교 파송을 신청했던 청년은 한 시계점 주인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자신과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던 그 청년은 군 보직에서의 경험과도 일맥 한다고 생각해 제안을 수락했고, 동대문의 한 빈티지 시계점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명품 시계’라는 분야의 매력에 강한 끌림을 느꼈고, 열정이 가득했던 20대 청년이었기에 도전에 주저하지 않고 더욱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더 큰 호기심을 채우고자 국내 명장 수리점으로 자리를 옮겨 전문성을 쌓아나갔고, 이러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를 알아본 이들은 그가 더 큰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진해서 다리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혈혈단신 홍콩으로 날아가 중국 전역에 거래처를 보유한 명품 시계 브랜드숍에 입사해 매장개점과 재고관리 등을 총괄할 정도로 역량을 높였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회사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명품 시계 브랜드의 국내 론칭은 물론 부티크 론칭 등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시계와 인연을 맺은 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길만을 걸으며 업계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강하게 인식시킨 배명철 대표의 이야기다.
배명철 대표는 “시계 수리를 베이스로 한 인디 브랜드 및 스위스 인디 워치 브랜드 수입사의 대표자는 매우 드뭅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저는 누구보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이 부분이 강점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라며 “수리점과 해외 근무에서의 경험은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로렉스부터 파텍 필립 및 국내에 아직 론칭하지 않았던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견문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취급하는 많은 브랜드의 모델들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며 시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각 브랜드의 특징과 장단점도 파악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것
인터뷰 중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 본인은 배명철 대표의 첫 시계가 궁금했다. 무거운 공기를 환기하고자 던진 ‘첫 시계’에 대한 물음에 그는 ‘롤렉스’라고 답하며 “수리점에서 수리를 배울 당시 처음으로 시계 하나의 전체 분해를 했었습니다. 누구의 지시도 아니었고, 순수한 저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행동이었죠.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기에 용감하게 분해를 한 것이었습니다.(웃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크게 꾸중을 들었지만, 당시의 실장님에게 해당 시계의 조립 과정을 배웠고, 책임감에 제가 구매를 하게 된 것입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듯 그는 시계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시계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글로벌 대기업들이 명품 시계를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매우 큰 안타까움을 느꼈고, 이러한 흐름과 필연적 선택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펼쳐보고자 하는 의지를 키워나가게 됐다. 그렇게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팽창한 명품 시계 시장에서 스위스 장인의 손길로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인디 브랜드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키워나가는 일들을 해보기로 결심하게 됐다. 인디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가 거의 전무한 상황인 대한민국에 개성을 잃고 똑같은 모델과 브랜드만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2023년 아티산코리아를 마침내 설립하게 된 것이다.
배 대표는 “아티산코리아는 스위스 인디 브랜드들(비앙쉐, 샤를지아니, 라벨노이어, 린드베들린, 유보트 등)의 공식 수입사이자 독립적인 명품 시계 사업을 펼치는 기업으로써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고, 스위스 시계장인 정신을 한국에 알리는 데 이바지하고 있습니다”라며 “지난해 갤러리아 백화점 팝업의 성공적인 개최에 이어 꾸준히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브랜드 전시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본사 쇼룸에서는 시계부터 잡화, 의류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시계 수리센터와 연구소를 운영하고 스위스 매뉴팩처 본사의 교육을 받은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라고 아티산코리아를 소개했다.
스위스 현지에서도 인정받은 아티산코리아
명품 시계 시장은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은 시장이다. 단순히 자본이 많다고 접근할 수 있는 사업 영역이 아니며, 관심이 많다고 시작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자본과 지식, 그리고 관심과 안목, 사업성까지 모두가 충족되어야만 사업의 영역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배명철 대표에게 창업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2018년 첫 창업 당시 여러 문제에 직면하며 한 걸음 물러서게 됐고, 지난해 다시 한번 도전의 결심을 굳히며 어렵고도 막막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위스 현지에서 국내에 론칭되지 않은 브랜드의 창업자들을 만나 자신의 비전을 나누고 파트너로 영입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았다고 회상하는 그다.
배 대표는 “스위스 브랜드와의 협업은 브랜드의 성장 과정, 스토리텔링, 본사의 인력 및 재무 상태, 시계 제작 방식, 그리고 사후 A/S에 이르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검토해야만 가능했습니다. 향후 5개년의 명확한 사업 계획은 기본 바탕일 정도였죠. 뿐만 아니라 규모의 경제이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마케팅의 투입이 이뤄져야 하기에 자금 조달과 훌륭한 인력의 확보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라며 “다행히도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시계 회사 선배님들의 도움과 법인 전환 시점에 만난 좋은 파트너들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찾으며 더욱 성숙한 명품 시계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꿈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의 아티산코리아가 있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들 덕분에 감사한 마음과 채워나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전했다.
판매는 서비스의 시작
아티산코리아는 시계의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시계 수리 서비스의 품질과 전문성을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를 위해 수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스위스 본사와의 협력을 강화해 고객들의 만족도와 브랜드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최신 제품을 신속하게 선보이고 고객의 맞춤에 의한 커스텀과 고객이 직접 제품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열리는 스위스 워치 페어와 아시아 지역의 워치 페어에 모두 참석해 최신 트렌드와 기술 파악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 아티산코리아다.
배명철 대표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공유함으로써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라며 “고객과의 신뢰와 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로 삼으며 대한민국 시계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피력했다.
취향과 스토리 담은 시계 찾아주는 전문가로 기억되고파
올해를 기점으로 아티산코리아는 비약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이달 중에는 비앙쉐 브랜드의 단독 팝업이 예정되어 있으며, 10월 초에는 올해의 신제품을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와의 협업 모델 공개는 큰 기대를 얻고 있다. 기술 연구소 설립 역시 막바지에 이르렀고, 시계 수리 관련 특허를 올해 중 신청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스타트업으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법인을 설립, 백화점에 공식 론칭 등이 올해 중 예정되어 있어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성장이 예고된 상태다. 무엇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고자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환경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리라 전하는 배명철 대표다.
끝으로 배 대표는 “아티산코리아는 국내 시계 산업의 발전을 선도하고 고객들에게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고객의 취향과 스토리가 담긴 시계를 찾아주는 회사로서 고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습니다”라며 “대한민국에 아티산코리아와 같이 인디 브랜드를 다루는 메종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경쟁보다는 화합으로, 그리고 함께 성장해가는 동료로서 말이죠. 모두 함께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