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특검 둘러싼 입장차 여전히 커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외나무다리서 다시 만난 여야 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16총선에 이어 양당 수장으로 2라운드에 돌입했다. 두 대표 모두 차기 대권까지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한 민생·실용 경쟁이 시작됐단 평가가 나온다.
‘악연’으로 시작해 정치 최전방서 조우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는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있던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악연’으로 시작됐다. 당시 한 대표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지난해 9월 21일 법무부 장관 자격으로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 올라 이 대표의 구속 필요성을 조목조목 역설하며 이 대표를 ‘대규모 비리의 정점’이라고 직격했다. 이후 한 대표는 이 대표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검찰이 흔들림 없이 수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법무부 장관과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고인으로 마주했던 두 사람은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대표로 정면 승부를 펼쳤다. 여당의 지지율 답보 속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한 대표는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우며 이 대표와 각을 세웠다. 한 대표는 당시 유세 현장에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죄를 짓고 자기를 지켜달라고 한다”고 이 대표를 비난했다. 이 대표 역시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고 언급한 한 대표를 겨냥해 “지금 청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검사 독재”라며 “남의 눈에 티보다는 자기 눈에 들보를 먼저 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검사 출신 한 대표를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총선은 국민의힘의 참패,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난 한 대표는 지난 7월 23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돼 정치 일선으로 복귀했다. 이어 이 대표가 민주당 대표 연임에 성공하면서 두 대표는 다시 여야 지휘봉을 쥐고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됐다. 양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두 대표는 향후 치열한 정국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채상병 특검, 검사 특검 등을 추진하며 정부와 여당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한 대표와 이 대표의 악연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채상병 특검법’은 가장 큰 뇌관이다. ‘제3자 추천 특검’을 주장하는 한 대표와 달리, 이 후보는 ‘야당 추천 특검’ 임명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한 대표는 “왜 꼭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민주당이 정하는 특검이 수사해야 하는 것인가”라며 “민주당과 이 후보가 말한 특검의 이슈가 진실을 규명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정략적 이익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각종 혐의에 대한 판결들이 기다린다는 점도 양측 간 충돌 수위를 더욱 높일 요인이 될 수 있다. 민주당 역시 ‘한동훈 특검법’을 추진하고 있어 상대 당 대표를 향한 여야의 공세 수위는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야당은 한 대표의 ‘고발 사주 사건’ 연루 의혹을 비롯해 법무부 징계 취소소송 고의 패소 의혹, 자녀 논문 대필 의혹 등을 특검으로 수사하자는 특검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한 상태다.
중도층 공략 위한 민생 정책에 속도
다만 두 사람이 나란히 함께 당 대표가 된 데에 대한 기대감도 공존한다. 양 진영을 대표하는 유력 주자들인 만큼 차기 대선까지 남은 2년 반 동안 정책 비전과 리더십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 두 대표는 나란히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민생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이슈다. 한 대표는 최근 미국발 쇼크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자 ‘금투세 폐지는 민생’이라 강조하며 “금투세 시행 시 1,400만 개인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민주당을 향해 금투세 폐지를 압박했다. 이 대표 역시 전당대회 들어 금투세를 손봐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대표는 금투세 과세 기준을 연간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인상해 과세 부담을 줄이자는 완화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금투세 유예 가능성도 언급했다.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추진된 것으로 민주당이 유지해 온 이념·정책적 기조에서 방향을 튼 ‘우클릭’ 행보로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종부세 완화론을 꺼내든 것도 외연확장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거의 효과도 없는 실제 거주하는 1가구 1주택에 대해 자꾸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저항이 높아져서, 실제 다른 정책 집행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권까지 바라보는 이 대표가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한 서울 중도 표심을 잡기 위해 들고 나온 전략이라는 게 정치권 해석이다.
한 대표 역시 지난 총선에서부터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민생·실용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 당대표 당선 이후에도 여름철 저소득층 전기료 지원과 일본도 살인에 따른 총포·도검 관리 강화,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지원 등 민생 이슈에 대해 즉각 대안을 내놓았다. 또한 교육·문화·지역·자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격차 문제를 다룰 ‘격차해소특별위원회’ 신설 방침도 밝혔다. 한 대표의 ‘격차 해소’는 사회 양극화 완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 외연 확장 정책인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 전략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한 대표는 여당이기에 정부와 협력해 국민들이 체감할 정책을 바로 실행할 수 있다는 점도 여러 차례 부각하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전당대회 과정에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며 민생·실용 노선을 부각하는 중이다. 이재명 대표는 연임 소감을 통해 “보편적 기본사회를 준비하겠다”는 일성을 밝혔다. 이 대표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에 기반한 ‘기본사회’를 자신의 정책 비전으로 삼았다. 민주당이 이번 국회에서 발의한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도 이러한 정책 비전에 근거한 법안이다. 이는 이 대표 역시 외연 확장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85.4%)를 얻었지만, 강성 ‘팬덤’에 휘둘리는 성과만 내서는 지난 대선과 같은 ‘0.73%포인트 격차’ 패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다.
하반기 재·보궐선거서 2차전
한편 11년 만의 여야 대표 회담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삼각관계’ 구도도 주목받는다. 당초 8월 25일 예고되었던 두 대표의 만남은 이재명 대표의 코로나19에 확진으로 연기되었다. 양당은 추후 협상을 통해 회담 일정을 다시 잡기로 한 상태다. 한 대표는 이 대표와의 공개 회담을 통해 내심 ‘일대일 경쟁’ 구도를 굳히겠다는 방침이다. 공개 회담에서 이 대표와 정책 논의를 벌이면서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 대표는 SNS를 통해 “이번 여야 대표 회담에서 민주당과 국민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이 대표 측은 한 대표와의 회담보다 윤 대통령과 마주하는 영수회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졌던 이 대표 입장에서는 한 대표와는 체급이 맞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은 회담 추진에 앞서 “한 대표가 용산 대통령실과 상대적으로 독립된 수평적인 당정 관계를 끌고 갈 수 있는지 의구심이 있다”며 미심쩍어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 회담은 아직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두 사람이 지난 총선 국면을 1차전 무대로 삼은 가운데 실질적 2차전 무대는 오는 10월 16일 치러지는 하반기 재·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4·10 총선 이후 6개월 만에 열리는 선거로, 단체장 사망으로 치러지는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결과로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두 곳 모두 민주당계 후보에 단 1차례씩만 당선을 허락한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이다. 한 대표가 두 곳을 지켜낸다면 지난 총선 패배의 아픔을 일부 씻을 수 있겠지만, 한 곳이라도 뺏기면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