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감독 돌려막기 지적 속 울산 팬 강력 반발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절차 미스터리에 내부 폭로까지 거센 후폭풍
우여곡절 끝에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사령탑으로 홍명보 감독이 선임됐다. 하지만 적절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내부 비판부터 K리그 감독 돌려막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선임 과정 정당성 두고 작심 비판한 박주호
2024년 한국 축구는 다사다난의 연속이다. 지난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탈락하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었고,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에서 겸업 논란 속 올림픽 대표팀은 40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는 ‘참사’를 맞았다. 대한축구협회 지난 5개월간 외국인 감독 선임에 방점을 두고 물색했으나 결국 선택은 ‘국내파’ 홍명보 감독이었다.
감독 선임 작업을 맡은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브리핑에서 홍 감독의 자택 앞에서 간곡히 설득한 끝에 거절의 뜻이 완강했던 홍 감독이 마음을 돌렸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빌드업 등 전술적 측면과 원팀을 만드는 리더십, 연령별 대표팀과 연속성, 감독으로서 성과, 촉박한 대표팀 일정 및 대표팀 지도 경험, 외국 지도자의 철학을 입힐 시간적 여유의 부족, 외국 지도자의 국내 체류 문제까지 8가지 이유로 홍 감독이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표 후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잡음 때문이다. 울산 팬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던 홍 감독은 돌연 말을 바꿔 대표팀 지휘봉을 맡아 K리그와 울산 팬들은 울분을 쏟아냈다. 울산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성명을 내고 “협회는 처용전사와 한국 축구 팬들의 요구를 무시한 채 해결 방법이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결국 다시 ‘K리그 감독 돌려막기’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처용전사와 한국 축구 팬들의 염원을 무시한 선택”이라며 “우리는 축구 팬들에게 다시 큰 상처를 입힌 이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전했다.
축구협회의 ‘프로세스 논란’도 불거졌다. 박주호 전력강화위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홍명보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고 폭로하며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했던) 지난 5개월이 허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은 영상을 통해 “회의를 하기도 전부터 ‘국내 감독이 낫지 않냐’는 대화가 오갔다”며 “외국 감독을 제안하면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국내 감독에 대해선 무작정 좋다고 했다”며 내부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의견을 내는 자신에게 지도자도 해본 적 없지 않느냐며 무시한 위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축구협회가 밝힌 홍명보 감독의 선임 과정에서 시스템과 절차보다는 이임생 이사의 독단적인 결정이 부각됐던 만큼 박주호 위원의 폭로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게 불었다. 이에 축구협회는 “박주호 위원이 감독 선임 과정을 자의적인 시각으로 왜곡했다”며 유감을 드러냈다. 협회는 “전력강화위는 감독 후보자들을 추천하는 곳”이며 “이임생 이사가 전력강화위가 추천한 최종 후보자들을 검토해 감독 최종 선임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 지도자 협회는 성명을 내 홍명보 대표 감독 선임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축구인 사이에서도 강한 반발 기류가 흘러나오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4강의 주역이었던 이영표, 박지성, 이천수도 당시 동료이자 주장이었던 홍 감독의 선정 과정에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급기야 문화체육관광부는 “그동안 축구협회의 자율성을 존중해 지켜봤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모였다”며 “축구협회의 운영과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부적절한 과정이 있었는지 자료를 제출받고 관련자에게 물어 문제가 있다면 조처하겠다”고 밝혔다.
어수선한 상황 속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첫 과제
논란 속에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울산 지휘봉을 내려놨다. 홍 감독은 7월 11일 오전 회복 훈련을 마치고 선수와 코치진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애초 홍 감독은 13일 FC서울과 홈경기까지 지휘봉을 잡으려 했으나 광주FC전에서 팬들의 반발이 심해 팀을 떠났다. 홈에서 열린 광주와의 경기에서 팬들은 “홍명보 나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축구협회와 홍 감독을 강력히 규탄했다. 울산 서포터스는 경기장에 ‘피노키홍’이라는 걸개로 홍 감독을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리그 3연패에 도전하는 울산은 정식 감독을 뽑기 전까지 이경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홍 감독은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 실패의 책임자로 전 국민적인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회 전 최종 명단에 2012 런던 올림픽 멤버 12명을 넣으면서 ‘의리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홍명보호는 조별리그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무 2패로 쓸쓸하게 발길을 돌렸다. 2014년 7월 사퇴할 때까지 1년간 홍 감독은 5승 4무 10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만 남겼다.
쓰라린 실패 이후 홍명보 감독이 지도자로서 체급을 다시 키운 곳은 프로축구 K리그1의 명문 구단 울산 HD다. 2017년부터 축구협회 전무로 일하던 홍 감독은 2020년 말 울산의 지휘봉을 쥐면서 현장에 복귀했다. 복귀 첫해인 2021시즌에는 전북 현대와 치열한 우승 경쟁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2022시즌에는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독주하더니 17년 만의 우승을 이뤄냈다. ‘우승 감독’이 된 홍 감독은 이 시즌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위상을 되찾았다. 당시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을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며 “(감독으로서) 다른 시간은 대체로 좋은 시간이었지만 브라질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때 시간을 항상 가슴 속에 넣고 지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울산은 또 한 번 우승을 달성하고 홍 감독은 ‘감독상 2연패’를 이루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이제 대표팀 운영에 집중한다. 그의 임기는 2027년 초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시안컵까지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이후까지 임기가 보장됐다. 홍 감독을 위한 대우도 외국인 감독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논란으로 동력이 떨어진 홍 감독은 스스로 산적한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가장 먼저 대표팀 분위기 반등을 이끌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시안컵 탈락 이후 이어진 ‘탁구 게이트’ 등 내홍과 본인 문제로 비롯된 잡음도 수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각오하며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고 설명한 홍 감독에게 필요한 건 승리이자, 원 팀 정신을 확립하는 것이다. 전술적 다양성을 통해 축구팬들과 선수들에게 믿음을 줄 필요성도 있다.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에 대해 홍 감독은 “그저 대표팀을 좋게 만드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주변의 우려가 이해되지만 마지막 도전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고 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더불어 홍명보 감독은 자신이 선임된 뒤 이어진 후배들의 날 선 비판에 대해서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잘 취합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도 의견을 잘 반영해 대표팀에 접목하겠다”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첫 시험대는 9월에 펼쳐진다. 홍명보 감독 체제로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은 북중미 월드컵 3차 최종 예선을 9월부터 치른다.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B조에서 경쟁하게 되는데 오는 9월 5일 팔레스타인과 첫 경기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