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안전과 국가재난관리체계Ⅰ] 2014년 4월 16일, 참사의 그 날
[국민안전과 국가재난관리체계Ⅰ] 2014년 4월 16일, 참사의 그 날
  • 천우인 기자
  • 승인 2017.03.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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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천우인 기자]


 

부실한 국가재난관리체계가 만든 비극

신뢰를 잃은 컨트롤타워, 국가재난관리체계의 대대적인 변화 필요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416 기억교실 ⓒ박경보 기자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인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0여 명이 사망, 실종된 대형 참사인 세월호 사건은 전 국민에게 아픔을 가져다준 사건이다. 이에 2017년 참사 3주기를 맞아 사고의 원인과 더불어 이를 토대로 한국의 재난 대책 시스템의 문제를 뒤돌아본다.



흐려진 책임의식, 안타까운 희생으로


지난 2014년 4월 16일 단원 고등학교 학생을 태운 세월호가 전라도 진도 섬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전복되었다. 탑승객 476명 중 생존자 172명, 실종 9명, 사망자는 무려 295명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남영호 침몰사고 이후 44년 만에 터진 한국 최악의 해난사고로 평가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아픔을 안겨주었던 세월호 사고는 불분명한 진상 규명과 유가족을 배려하지 못하는 미숙한 일처리로 더욱 화제가 됐다.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급격한 변침(선박 진행 방향을 변경) 등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좌현부터 침몰이 시작됐다. 하지만 엉뚱한 교신으로 구조 골든타임이 지연됐고,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등의 총체적인 문제로 최악의 인재사고로 이어졌다.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300여 명을 내버려 두고 배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하고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미흡한 초동 대처의 원인으로 인한 사고임을 확인시켰다.

 
세월호가 침몰된 이유에는 여러 사안이 거론되고 있다. 세월호 출항 예정시각이었던 4월 15일 저녁 6시 30분 인천항에는 안개가 자욱해 많은 선박들이 출항을 포기했으나, 세월호만 2시간 30분 늦게 출항했다. 또 세월호는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 화물 657톤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실제로 실린 화물은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으로 무리한 화물을 적재했다. 이소연 해양사고전문가는 이와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조 골든타임을 놓친 부분 역시 큰 문제였다. 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인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을 허비했다. 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했다. 최초 신고자가 선장이 아닌 단원고 학생이었다는 것과 배가 신고 한 시간 전인 8시부터 침몰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더욱 충격에 휩싸였다.

 
해양사고 규칙에 따르면, 해양사고 발생 직후의 대응은 인명, 환경, 선박, 화물 순으로 구조해야 하고, 선장은 모든 비상상황 발생 시 가능한 한 응급처치 후 보고 한다. 또한, 선장은 육, 해상 비상연락망을 통해 대외에 보고해야 하고 사건의 경위를 살펴야 한다. 배의 주인 역할을 하는 선장은 선원과 고객들의 안전한 항해를 위한 책임감이 필요하다. 이에 세월호의 선장이었던 이준석 선장의 행동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남아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서는 인명구조 등 비상상황이 발생 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고, 승무원은 각자 역할을 맡아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됐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맹골수도였지만, 이 지역의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 인 3등 항해사였고, 더욱이 이곳을 통과할 때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밝혀졌다. 거짓말같이 들리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국민들과 유가족들의 분노는 커져갔고, 책임감이 부재된 이들의 행동에 더욱 공분을 샀다.

 


컨트롤타워의 미숙함으로 더욱 깊어진 아픔


정부의 미흡한 대처 역시 한국의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 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겼다. 하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 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를 발표하며 공분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유가족과 국민들은 다시 한번 큰 상처를 받았으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어갔다. 더불어 해수부, 교육부, 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는데, 총리실은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는 행동을 했다. 이에 결국 해수부 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은 멈추지 않았고, 구조 작업은 더욱 느리게 진행됐다. 이러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는 한시라도 빨리 구조 작업을 진행해야 했던 현장에서 차질을 빚게 만들었고, 모두가 염원하고 있는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게 됐다.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사실상 완전히 침몰도니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 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4월 16일 오후 5시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인 4월 16일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 수백 명의 구조 요원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 바와 달리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16명이 투입되는 데 그쳤다. 또한, 세월호는 사고 초기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졌지만, 3분의 2 이상이 해상에 떠 있는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하고 있어 이 시기에 구조장비의 빠른 투입이 필요했다. 하지만 선체 부양을 위한 리프트 백 투입은 4월 18일에야 이뤄졌고, 야간구조작업을 위한 오징어잡이 어선은 침몰 나흘째,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바지선은 침몰 5일째인 4월 20일에야 뒤늦게 투입됐다. 이러한 정부의 무능함이 대내외로 알려지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재난대응시스템에 관한 비난이 쏟아졌다.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눙과 혼선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노출되면서 정부 책임론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총제적 부실대응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를 밝혔지만,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앞서 국민 안정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행정안전부의 부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한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개정해 안행부의 재난관리 기능을 대폭 확대했으나 이번 참사에서 안행부가 중심이 된 재난체계는 전혀 구실을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혼선이 더 큰 악재를 불렀다. 프로세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그들이 우리에게 준 것은 아픔뿐 이었다”라며 “제대로 된 구조도 받아보지 못한 채 죽어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크고, 그렇게 떠나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정부에 큰 실망을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는 대대적인 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잊어서도 잊혀 져서도 안 되는 이 사고를 국민은 다큐멘터리 제작, 추모활동 등으로 되새기고 있다. 더불어 유가족들 역시 당시의 기억과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한, 안산 단원고도 희생당한 아이들의 억울함을 기리기 위해 안산 교육 지원청에 단원고 기억교실을 마련하며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에게 재난 사고에 대한 의식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재난사고대응방침 모바일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리서치에 응했던 1,000명 중 940명은 세월호 사건 이후 재난 사고에 대한 위험 의식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컨트롤 타워 부재와 정부의 무능한 대응책으로 쌓인 사회 적폐와 관행 등 사회 총체적 문제가 얽혀 발생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재난대응 대책 시스템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세월호 참사는 국가 실패를 넘어 국가 실종이 초래한 인재다. 이러한 참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단초다”라고 역설했다.

 
국가 재난은 대부분 긴급하게 상황이 전개된다. 따라서 재난 발생 보고와 대응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고 단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재난 현장에서 대통령까지 여러 단계를 거칠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따라 책임자가 대응을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에 문재인 의원은 세월호 참사 대응과 같은 무능과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책임지고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장 대응 기관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보고보다는 인명 구조와 피해 방지를 막기 위한 신속 대응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는 재난 현장 책임자에게 강력한 권한과 자율성을 보장하며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는 재난 대응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듯이 각 분야가 자율적으로 권한과 책임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명령을 받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아 제대로 된 대응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에서 적절한 대응을 해낼 능력이 있는 재해 및 재난 분야 최고 전문가에게 국민안전처의 일차적 책임과 전적인 결정권을 부여하고, 재난 현장의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과 인력 증원, 그 밖의 강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정부는 재해와 재난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재난 유형에 따른 위기관리 매뉴얼을 작성, 운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첨단 재난 안전통신망을 구축, 운영하고 군, 경, 소방기관의 공조 체계와 합동 훈련을 강화해 선진적인 구조와 구난 전문 체계를 구축하여 가장 중요한 ‘인재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또한, 몇몇 개인의 희생정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국가의 시스템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이미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세월호 참사 이후에 더욱 보완이 되고 강화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을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재난 대응 최고 사령탑인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이다. 세월호 당시에도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아 재난의 위험이 더욱 가중된 만큼, 재난 상황에서 소통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참사의 아픔을 겪은 유가족들과 국민과의 소통이다. 국가에 신뢰를 잃고 아픔을 보상받지 못한 그들은 아직까지도 절망의 늪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아픔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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