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7.03.0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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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다

 

경기 침체 속 휴가 트렌드 변화 바람

 

▲ⓒTUMA 홈페이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하던 휴가 문화가 변하고 있다. 최근 국외나 국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 더해, 집이나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로 인해 ‘스테이케이션’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스테이케이션은 ‘머물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먼 곳으로 휴가를 떠나는 대신 집이나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집 근처에서 휴가를 보낼 경우 여행을 떠날 때보다 각종 경비와 준비 시간을 줄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홀로 휴식을 갖는 데서 오는 만족감 커

스테이케이션이 늘어난 요인으로는 경기 침체와 고유가 시대가 꼽힌다. 소비 심리가 위축돼 고액의 휴가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또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인파가 몰리는 복잡한 장소에서 오는 피로감과 장거리 이동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은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유럽과 동남아 지ㅅ의 ‘소프트타깃’ 테러와 각종 사고가 발생하면서 스테이케이션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성인 9,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는 응답은 57.7%로 전년대비 3.6% 늘었다. ‘휴가를 가겠다’는 답변은 21.2%에 그쳤다. 데일리호텔 라이프스타일 리서치랩이 여행 목적에 따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홀로 휴식이 91.4%로 만족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연평균 2회 이상 즐긴다는 응답자가 74.9%로 나타나, 한번 스테이케이션을 경험하면 다시 즐기는 경향을 보였다. 스테이케이션을 하는 이유로는 ‘이동시간이 짧아서 편리함’이라는 응답이 43%로 가장 많았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없음(23.3%)’, ‘심적인 휴식을 위함(17.2%)’, ‘장거리 여행보다 경제적 부담이 덜함(16.5%)’ 순으로 조사됐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전미영 교수는 휴가의 정형화 된 개념이 변하는 점에 대해 “평소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게 오히려 ‘휴식’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여행이 일상과의 단절을 위한 도구였다면, 최근에는 스마트폰만 꺼두더라도 얼마든지 일상과 단절할 수 있는 점도 이유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스테이케이션의 진화, 휘겔리케이션

최근에는 스테이케이션에서 진화된 ‘휘겔리케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로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을 뜻하는 ‘휘게(hygge)’에서 유래했다. 스테이케이션과 맥을 같이하는 휘겔리케이션은 휘게의 형용사인 휘겔리(hyggeligt)와 휴가를 합성한 단어다.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안락한 환경에 머물며 여유로움을 즐기는 휴가의 형태를 의미한다. 홀로 휴식을 즐기는 단순 휴양을 넘어 이를 통해 일상의 행복을 확대하고, 내면의 만족도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 여행을 다녀온 A씨는 “운전도 하고, 아이도 돌봐야해서 여행 기간 내내 쉴 틈이 없었다”며 “가족들의 성화에 집을 나섰지만 집에서 한가하게 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한 직장인 B씨는 “집에서 읽을 책과 먹을거리를 사놓고 연말을 여유롭게 즐겼다”고 말하며 “인파가 붐비는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최고의 휴가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한 계획없이 휴가를 보내는 ‘스테이케이션족’, ‘휘겔리케이션족’이 늘어난 배경에는 최근 나타난 ‘홀로족’ 현성과도 무관치 않다. 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이 부담없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놀기: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의 저자 강미영 작가는 “터부시되던 ‘혼자 놀기’는 지친 현대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는 한 방식이다”며 “관계에 무던해지고 지친 사람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재충전하는 것이다”고 이러한 현상을 설명했다. 

  

각박한 사회 현실 속 변화 방향 촉각

이와 같은 여가 트렌드의 변화를 유통 및, 외식, 숙박업계도 주목하며 이들을 겨냥한 상품을 적극 내놓고 있다. 집에서 영화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빔 프로젝터 판매량이 늘고, 도심 호텔에서 쉴 수 있는 이른바 ‘호캉스(호텔+바캉스)’ 상품도 인기다. 건설사들은 물놀이장, 산책로 등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 활용도를 높이며 그에 맞춘 인테리어 제품도 출시하고 있으며, 외식업계 역시 스테이케이션족과 휘겔리케이션족 잡기에 분주한 모양새다.
 

  하지만 스테이케이션 현상에서 현대인의 그늘진 모습이 투영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각박한 현실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취업난과 경제 위기로 인한 불안감과 주머니 사정은 휴식을 위한 인식전환을 불러왔다고 분석한다. 이화여대 심리학과 양윤 교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모습은 부정적일 수 있다”면서도 “최근의 트렌드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을 배경에 두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복합적인 관점에서 이와 같은 변화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자유’가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일상에서 벗어나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쉬게 하는 건 오랜 과거부터 활용된 수양법이기도 하다. 이는 지친 심신을 쉬게 해주고, 일상으로 복귀할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휴가를 어떤 것을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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