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존폐 위기 기업의 운명을 바꾼 반도체 여제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존폐 위기 기업의 운명을 바꾼 반도체 여제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4.03.11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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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여성 첫 실리콘밸리 리더
AI 분야에서도 ‘마법’ 통할지 주목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존폐 위기 기업의 운명을 바꾼 반도체 여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4년, 대만계 미국인 여성 기업인 리사 수가 반도체 기업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침몰 직전의 난파선과 같은 상황에 몰려 있던 기업 경영을 맡은 그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절망 속 희망을 꽃피워내며 AMD의 광폭 성장을 만들어냈다.

 

ⓒAMD
ⓒAMD

 

침몰 직전의 기업을 짊어졌던 공학자
리사 수는 1969년 대만에서 태어났다. 통계학자 아버지와 회계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두 살 무렵 미국으로 건너왔다. 여느 아시아계 부모와 마찬가지로 수의 부모도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공해 준 걸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피아노에 관심을 보여 음악가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기도 했으나 이내 공학에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진짜 꿈을 찾게 된다. 부모는 중학교 시절 첫 컴퓨터로 ‘애플 II’를 선물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6년 메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한 수는 전기공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이때부터 반도체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동 대학에서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최첨단 반도체 소자 기술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게 전자공학인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MIT 박사 과정 학위 논문을 통해 ‘실리콘 온 인슐레이터(Silicon on Insulator)’를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이 아이디어는 훗날 IBM과 AMD에 의해 받아들여져 AMD의 애슬론 프로세서가 인텔 펜티엄 프로세서를 성능에서 능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수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거쳐 1995년 IBM의 반도체 연구·개발 부서에 이사로 합류했다. 2007년까지 12년 동안 IBM에 재직했던 그는 반도체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는 한편, 잊을 수 없는 멘토인 니콜라스 도노프리오를 만나게 된다. 도노프리오는 IBM 호환 PC와 메인프레임의 기초 설계를 맡은 전설적인 엔지니어 출신으로 수를 IBM 최고경영자의 기술 자문으로 추천하는 등 엔지니어 경력만 쌓고 있던 그녀에게 경영자로서의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이를 통해 공학자이자 경영자로의 기반을 다진 그녀는 2007년 프리스케일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직 후 반도체 개발을 지휘하며 성공 가도에 한 축을 담당했다. 2012년에는 위기에 빠진 AMD로 합류해 글로벌 비즈니스 부사장 겸 총괄 책임자 역할을 맡게 된다.

 

잇따른 신제품 실패와 구조조정 후유증, 부채로 휘청이던 AMD는 리사 수의 CEO 부임 이후 극적인 반등에 성공한다. ⓒAMD
잇따른 신제품 실패와 구조조정 후유증, 부채로 휘청이던 AMD는 리사 수의 CEO 부임 이후 극적인 반등에 성공한다. ⓒAMD

 

완벽히 달라진 모습으로 부활
인텔과 함께 한때 세계 CPU(중앙처리장치) 반도체 시장을 양분하던 AMD였지만, 수가 부사장이 된 2012년의 AMD는 잇따른 신제품 실패와 구조조정 후유증, 3조 원에 육박하는 부채로 휘청이면서 파산설에 휩싸인 상태였다. 회사의 부족한 부분과 안타까운 지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수는 취임과 동시에 적자에 허덕이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업다각화 전략을 실시했다. 회사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라데온 RX200 GPU’의 가격을 낮췄으며, 게임기 산업에도 진출했다. 이후 게임 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수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2013년 3분기 기업 실적 발표에서 7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AMD의 구원자’로 불리게 된 그녀는 회사를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10월 8일 AMD의 CEO로 임명되었고 이후 기업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수는 직원들이 훌륭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R&D 라인업을 최대한 간소화했다. 모든 컴퓨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공통 CPU 아키텍처를 만드는데 R&D 비용을 투입하고 다른 계획은 정리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계획과 제품의 품질로 시장에서의 승부를 예고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라이젠’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새로운 프로세서를 발표하며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된다. 라이젠 출시 이전 18.1%에 불과했던 AMD의 PC 시장 점유율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판매된 2017년 2분기에 31%로 치솟았다. 라이젠의 성공으로 투자자들도 AMD를 다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해 1주당 2달러에 머물던 주가는 6배 이상 상승했다. 2024년 현재는 무려 85배나 상승한 상태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은 이를 높이 평가해 수를 2017년 세계 최고의 리더 5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했다.

 

라이젠 출시 이전 18.1%에 불과했던 AMD의 PC 시장 점유율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판매된 2017년 2분기에 31%로 치솟았다. ⓒAMD
라이젠 출시 이전 18.1%에 불과했던 AMD의 PC 시장 점유율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판매된 2017년 2분기에 31%로 치솟았다. ⓒAMD

 

엔비디아 장악한 AI 칩 시장에 도전
인텔 독점을 무너뜨린 AMD는 이제 AI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인 ‘엔비디아’라는 또 다른 거인과 맞서고 있다. 특히 같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5촌 당숙·종질 관계로 알려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수 CEO는 인공지능(AI) 가속기 성능에 대해 양보 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AI 가속기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할 때 필수적인 반도체 패키지로 생성형 AI 시대 필수재로 불린다. 엔비디아와 AMD 모두 주력 제품으로 집중적으로 육성 중이다.

  최근 추격자 위치인 AMD가 포문을 열었다. 수 CEO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최신 AI 가속기 ‘MI300X’ 공개행사에서 자사 제품이 엔비디아의 주력 AI 가속기 ‘H100’ 성능을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MI300X는 H100 대비 트랜지스터가 1,500억 개 이상 더 많이 적용됐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용량도 2.4배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특정 대규모언어모델(LLM)에 적용했을 때 H100보다 추론 능력이 1.4배 정도 더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수 CEO는 “MI300X는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가속기”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AMD의 도발에 엔비디아는 공식 자료를 통해 즉각 반박했다. AMD가 의도적으로 엔비디아의 H100에 불리한 테스트 환경에서 성능을 측정했다는 것이다. “전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H100 성능은 AMD 테스트 때보다 두 배가량 향상된다”는 것이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인텔 독점을 무너뜨린 AMD는 이제 AI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인 ‘엔비디아’라는 또 다른 거인과 맞서고 있다. ⓒ엔비디아
인텔 독점을 무너뜨린 AMD는 이제 AI 반도체 시장 1위 기업인 ‘엔비디아’라는 또 다른 거인과 맞서고 있다. ⓒ엔비디아

  하지만 AMD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식 홈페이지에 재반박 자료를 올려 세 가지 다른 환경에서의 AI 가속기 성능 테스트 결과를 게시했다. 두 번의 테스트에서 자사 MI300X가 H100보다 1.3~2.1배 성능이 좋았고, 엔비디아에 유리한 환경에서도 성능 차이는 미미했다는 게 AMD의 주장이다.

  AI에 대한 AMD의 집중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최근 그들이 공개한 AI 전망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글로벌 IT 리더 2,500명 중 68%는 AI가 업무 모델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67%는 직원 효율성 전반을 높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인공지능 활용을 우선시하는 IT 리더 90%는 업무 효율성 향상을 이미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하듯 경영난에 빠진 AMD가 반도체 선도 주자 인텔을 시가총액을 뛰어넘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여기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AI라는 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AMD가 수의 ‘매직’으로 엔비디아라는 거대 기업의 자존심도 상하게 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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