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 광고 천재라 불린 사나이
[단독 인터뷰]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 광고 천재라 불린 사나이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7.01.03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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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Power Interview]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


 

광고 천재라 불린 사나이

세상이 요구하는 스펙보다 자신만의 브랜드가 중요


 


고물상에 고물은 없다


세상은 편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을 깨기란 쉽지 않다. 일례로 고물상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수많은 고물은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그저 쓸모없는 고물일 뿐이다. 혹자가 이를 두고 고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상은 그의 다른 이야기초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물상의 고물도 어떤 이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뉴욕 원쇼 페스티벌 최우수상, 광고계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진클리오 어워드 동상, 미국광고협회가 수여하는 애디 어워드 금상 등 연이어 세계 유명 국제 광고제를 휩쓸며 공모전의 신화를 이룬 광고 디자이너가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JWT NEW YORK, BBDO 등 세계 최고의 광고 대행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이의 이미지를 그려본다면, 국내 혹은 해외 유명 대학 출신으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형 광고회사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엘리트가 떠오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인물은 동일인으로 한국이 낳고, 한국이 버린 세계적 광고천재 이제석이다. 광고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의 스펙과 커리어가 한없이 부러울테지만 광고천재라 불리는 그 역시도 한때는 동네 간판 가게 사장에게도 굴욕을 겪었던 이 시대의 루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세상의 편견을 깨고자 자신만의 생각과 방법으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진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이끄는 이제석 대표의 인생 스토리는 광고계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광고 세계와 직업 정신을 담은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은 개정판까지 발행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며, 그의 삶을 모티브로 한 ‘광고천재 이태백’이라는 드라마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모두가 생각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다. 

 
대구에서 태어난 이 대표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학업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역 대학교의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해 신입생 때부터 국내 유명 대학생 광고제에 꾸준히 도전했지만 작은 상하나 타지 못했다. 4년 평점 4,47로 수석 졸업 후 수많은 기업에 지원서를 넣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를 찾지 않았다. 동네 간판 가게에서 조차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의 살길은 유학이라며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이 대표는 2006년 9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에 편입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한다. 이때부터 광고 공모전 사냥꾼답게 유수의 국제 광고제에서 1년간 29개의 메달을 따게 된다. 현지 기업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은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서 가장 큰 광고회사인 JWT를 비롯해 메이저급 회사인 BBDO, FCB 등 6군데 회사를 다니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회사를 스스로 박차고 자신이 하고 싶은 광고를 하겠다며 2009년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세우며 홀연히 한국으로 귀국했다.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인생이기보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설계하며, 자본가만을 위한 광고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광고, 상품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광고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는 이제석 대표를 이슈메이커가 만나보았다. 

 

 

▲이제석 대표의 광고 세계와 직업 정신을 담은 도서 ‘광고천재 이제석’은 개정판까지 발행될 정도로 많은 이에게 읽혔다. ⓒ이제석광고연구소

 

 

Q. 모두가 대표님을 광고천재 이제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표님의 닉네임인 광고천재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 않으신지요?


- 예전에는 사람들이 저에게 광고천재라고 하면 저는 오히려 광고바보라고 반박했습니다. 일부 상을 받은 광고가 몇 개 있다면 그보다 몇 배나 많은 바보 같은 광고들이 세상에 빛을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변명하기도 귀찮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그냥 인정하고 있습니다. 광고천재라는 타이틀에 대한 부담이나 압박은 없고 사람들이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니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광고와 인연을 맺은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 특별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일도 많이 사람이 광고라고 부르니 광고라고 아는 것이지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형물일수도 있고 디자인일수도 있으며 예술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일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강력한 임팩트를 받았을 때의 희열 때문입니다. 아이디어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이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최고의 희열을 느낍니다. 

 

Q. 한국이 낳고 한국인 버린 광고인으로도 유명합니다. 대학 졸업 당시로 돌아가서 대표님께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았더라도 국내에서 어떤 일이든 잘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일이 광고일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잘해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외보다는 다른 세계라고 합시다. 한 사람이 어떤 세계 A에 태어났는데 죽을 때까지 A에서만 사는 것은 굉장히 불행하고 어리석인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세계는 정신적, 물리적 세계 모두 해당이 됩니다. 물론 물리적인 세계가 반드시 새로운 정신적 세계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작은 땅 안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에서도 이곳과는 다른 가치관과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미국 유학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광고인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두고 다시금 한국으로 귀국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 사실 저는 제 행동에 대해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자연스레 끌림이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 미국으로 떠날 당시에는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바를 이루고 정점을 찍으니 저를 돌아보게 되고 숙연해졌습니다. 그래서 내 회사를 차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유력 후보지로 몇 개국을 골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가 creative의 불모지이며 저도 한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었기에 오기가 생긴 부분도 있고 고국에 대한 향수도 있었기에 귀국하게 됐습니다. 이 사회의 판을 바꾸고자 돌아왔지만 높아진 대중의 수준에 비해 광고 시장은 여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바심은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Q. 대표님께서는 항상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자신의 인생은 본인이 개척하고자 했지만 대학시절 높은 학점 취득이나 해외유학을 통한 고스펙 등은 사회적 통념에 맞추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20대 까지 저 역시도 세속적인 어젠다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강박관념, 성공과 출세에 대한 강박관념이 저를 구속했습니다. 그렇게 상류상회도 경험하고 업계에서 인정도 받았습니다. 인생의 만족을 100으로 표현하면 작업에 대한 즐거움과 성취감, 기쁨이 70이고 나머지 30은 성공을 하고나니 저를 부러워하는 사회적 편견 즉 남의 시선이었습니다. 이처럼 제 20대 인생은 목표 지향적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를 돌아보면 제 인생의 목표는 점으로 밖에 표현이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점이 없으면 주저앉게 되고 방향을 잃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의 먹이만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인생을 하나의 선을 표현합니다. 인생을 어떤 기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방향의 선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어느 방향이든 지속적으로 가다보면 뜻하지 않는 점을 만나더라도 작은 점은 무시하고 자산의 길을 묵묵히 간다면 좋은 일은 뒤따르게 됩니다. 이제는 점이 아닌 선을 통해 제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Q. 국내로 돌아온 이후 상업 광고보다 공익 광고에 치중하는 모습입니다. 


- 저도 사람인지라 돈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돈을 좇는다고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돈을 쫒지는 않지만 계약서에 표기된 금액이 나의 몸값이고 연구소의 프라이드니깐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주와 부를 나눈다면 주는 돈이 아니고 작업이 주가 됩니다. 돈 버는 것으로 세계 1등은 어렵겠지만 제 작품으로는 충분히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 이순신 장군상 공사 가림막 디자인 ‘탈의중’ ⓒ이제석광고연구소

 

 

Q. 흔히 광고인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이 필요하며 이는 자신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 다르다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알코올의 경우에도 어떤 사람들은 술로 마시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소독과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다양한 용도에 의해 쓰이지만 본질은 하나이며 절대적인 목적은 없습니다. 하나의 현상을 절대적인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점점 다른 세계와 벽을 쌓게 되며 그걸 두려워하는 순간 늙게 됩니다. 저역시도 처음에는 남들이 다 이렇게 하는데 나만 다르게 하는 과정에서 외톨이가 된듯하며 낙오된 것 같아 두려운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더더욱 남들이 관심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세상을 이끌어난다고 믿고 있으며 좋은 사례들도 많이 봐왔기에 확신도 생기고 당당합니다. 향후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Q. 지금 이 시간에도 광고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해주실 이야기가 있을까요?


- 사람의 기질이나 삶의 태도, 그리고 습관 등이 그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는 부단히 노력하거나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의 관에 물, 전기, 가스가 흐르는데 관의 기질에 따라 이 세상에 뿜어내는 것이 달라집니다. 기질마다 각자의 색이 다르고 성숙도가 다른 것이지 기질이 있고 없음의 문제는 아닙니다. 광고나 사람이나 누구나 살아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더욱 생기 있고 빛나려면 꽃처럼 활짝 펴야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엔돌핀이 돌고 심장이 뛰게 해야 하며 자신이 생각했을 때 옳은 일, 즐거운 일,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몸에서 좋은 호르몬이 나오며 반대로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된다던지 눈치를 보게 된다면 그 꽃은 활짝 필 수 없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사진 촬영을 요청했지만 흔하디흔한 장소와 포즈로 촬영하는 인물 사진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와는 상반된다며 굳이 어두운 야외에서 찍기를 원했던 이제석광고연구소 이제석 대표. 평소 그가 자주 찾는 고물상에서 ‘고물상에 고물은 없다’며 모두의 편견을 깨고자하는 자신의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다. 마지막으로 이제석 대표의 최고 가치는 묻는 질문에 그는 “인생은 살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이며 사는 것이 좋은 거고 죽는 것이 나쁜 겁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이며 광고쟁이가 광고로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공익광고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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