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정의 구현’이냐 ‘망신 주기’일까
[이슈메이커] ‘정의 구현’이냐 ‘망신 주기’일까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4.01.04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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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거침없는 ‘손절’
싱가포르 정부 ‘캔슬 컬처 금지법’ 준비하기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정의 구현’이냐 ‘망신 주기’일까

‘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정치인이나 연예인과 같이 유명인이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 혹은 기업이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이나 행위를 했을 때, 지지를 철회하는 집단행동을 의미한다. 인종·성차별, 소수자를 혐오하는 언행을 했을 때 SNS에 ‘당신은 삭제됐다(You’re canceled)’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에서 시작됐는데, 그 대상이 되면 당사자나 기업은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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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성이 대표적 ‘캔슬’ 이유
캔슬 컬처는 2019년 호주 국립사전연구센터가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지정했을 만큼 뚜렷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문화가 확산한 배경에는 사회·환경 의식 수준이 높고 자기주장이 강한 MZ세대가 소비 주체로 부상했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거침없는 ‘손절’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

  국내 분유·발효유 1위를 달리던 남양유업은 2013년 본사 영업사원이 지역 대리점에 주문하지 않은 상품을 강제로 할당하고 판매한 ‘대리점 밀어내기’ 사건으로 시민단체와 소비자를 중심으로 거센 불매운동이 일어나 큰 타격을 입었던 바 있다. 실제 2012년 1조 3,650억 원에 달했던 매출은 이듬해 1조 2,298억 원으로 한풀 꺾이더니 감소세를 탔다. 2012년 영업이익 637억 원을 기록했으나, 2013년에는 영업손실 175억 원을 나타내며 적자로 돌아섰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영업손실이 261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더해 2021년에는 대표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감염을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자체 연구소 결과를 공식 발표했는데, 해당 발표가 임상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며 남양유업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결국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대국민 사과에 나서야 했다. 연이은 악재 속에 1964년 설립 이후 우량 기업으로 성장을 이어오던 남양유업은 쉽사리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관심이 높아진 상태에서 기업 부도덕성은 대표적인 ‘캔슬’ 이유로 꼽힌다. ‘역사의식’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등도 소비자가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기준이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사건으로 시민단체와 소비자를 중심으로 거센 불매운동이 일어나 큰 타격을 입었던 바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사건으로 시민단체와 소비자를 중심으로 거센 불매운동이 일어나 큰 타격을 입었던 바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하지만 기업이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이콧’이 일어나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20년이 넘도록 미국 시장 판매량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온 맥주 브랜드 ‘버드라이트’는 지난해 5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와의 협업이 화근이 되어 매출이 급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역 배우 출신 멀바니는 2022년 여성으로의 성전환을 밝혔는데, 버드라이트는 멀바니의 팟캐스트 1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의 얼굴을 넣어 특별 제작한 제품을 협찬했다. 멀바니는 이 맥주를 홍보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으로 공개했다.

 
  나이 든 미국인에 집중된 소비자를 젊은 세대까지 확장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미국 내 소비자들의 반발이 격렬히 일어났다. 가수 키드 록은 버드라이트를 쌓아두고 라이플총을 난사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고, 멀바니의 성 인식을 문제 삼았던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합세했다. 여기에 멀바니를 지켜야 한다는 ‘LGBTQ+’ 단체의 목소리까지 커지면서 시장은 분열과 비난으로 들끓었다. 매출 감소가 커지며 버드라이트는 직원 가운데 2%를 대상으로 구조 조정에 착수하고 담당 임원 2명을 휴직 처분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게임 산업계에 논란이 불거졌다. 넥슨에서 공개한 PC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홍보 영상에 남성 혐오 표현으로 알려진 ‘집게손가락’이 발견되면서다. 해당 손 모양은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에서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된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 비하 표현의 의도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원청사인 넥슨이 하청 업체인 스튜디오 뿌리 측에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여성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 과잉 대응을 한 넥슨의 행보에 대한 분노를 전달하기 위해 불매운동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기업이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이콧’이 일어나기도 한다. ⓒPixabay
기업이 잘못했다고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보이콧’이 일어나기도 한다. ⓒPixabay

 

기업들 관련 문제에 촉각 곤두세워
정치적 편향성도 ‘캔슬 컬처’ 대상이 된다. 미국의 대표적 히스패닉계 식품 회사인 고야푸드의 CEO 로버트 우나누에는 과거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지도자를 갖게 돼 진정 축복받았다”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대한 논란이 일자 자신의 발언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이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고야푸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브랜드 컨설팅 기업 랜드앤피치가 캔슬 컬처를 ‘마케터가 주목해야 할 트렌드’로 꼽았듯 기업들은 관련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소비자 눈 밖에 났을 때는 순식간에 ‘캔슬’될 수 있다는 경각심에서다. 하지만 캔슬 컬처에 대한 시각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심한 경우 온라인상에서 좌표를 찍어 상대방을 ‘조리돌림’하는 일도 벌어져 특정인에 대한 과도한 마녀사냥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캔슬 컬처가 실제 기업을 위태롭게 하느냐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캔슬 컬처로 회사가 문을 닫을 만큼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사례도 있으나 잠깐의 소동에 그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야푸드는 CEO의 발언으로 기업이 비난받았음에도 소비자의 외면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 리서치의 설문조사 결과 미국 온라인 성인 40%가 “CEO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발언에 브랜드를 보이콧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32%는 “브랜드를 외면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전 NFL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나이키의 광고 캠페인에 출연한 사례가 있다. 그는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을 저항한 메시지를 남겼으나 성조기에 무례하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이처럼 정치적 성향을 보인 스포츠인을 광고 모델로 쓰며 나이키도 구설에 올라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념해 출시할 예정이었던 운동화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캠페인 이후 나이키 매출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Pixabay
전문가들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Pixabay

  캔슬 컬처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지자 싱가포르 정부는 아예 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싱가포르의 K 샨무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견해 때문에 공격받을까 봐 두려워 합리적인 공개 담론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러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당 법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법안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도 예상된다. ‘취소’의 범위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고 금지법이 되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도구로 악용될 수 있어서다. 2015년 리셴룽 총리의 연금 정책을 비판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경험이 있는 시민 활동가 로이 응게란은 “정부가 SNS에서 (비판) 담론이 얼마나 빨리 확산되는지 캔슬 컬처의 영향력을 보고 이 같은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브스는 “캔슬 컬처에 대응하는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잘못을 했으면 빠르게 사과하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부정적인 평판을 밀어낼 수 있는 소셜미디어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도한 캔슬 컬처는 ‘나와 다른 것’에 공감하지 못한채 상대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 문제도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주의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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