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속 주력 사업과 시너지 극대화 도모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마케팅 넘어 넘치는 야구 애정 나타내
지난해 KBO 리그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10월 8일, 각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재계 총수들이 대거 경기장에 등장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부산 사직구장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서울 잠실구장에서 각각 경기를 관람하며 야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재계 총수들의 야구에 대한 ‘진심’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팬 유치한 정용진
지난 4월 1일 KBO 리그 42번째 시즌의 막이 올랐다. 포스트 시즌 진출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한 각 팀의 경쟁이 여느 시즌처럼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구단주의 존재감도 도드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기업들이 구단을 운영하는 건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이자 이미지 제고를 꾀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유독 프로야구에서 총수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큰 것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 프로야구단 운영에 있어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주력 사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총수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다. 계열사 이마트가 지난 2021년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SSG 랜더스를 창단한 뒤, 정 부회장의 높은 관심과 파격적인 투자 속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정 부회장은 올해 역시 ‘2년 연속 통합 우승’과 ‘홈 관중 1위 수성’ 등의 목표를 직접 제시하며 구단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에 팬들 역시 홈 관중 1위 달성으로 화답했다.
신세계그룹은 구단 인수와 동시에 돔구장 건설 발표를 비롯해 야구장 내 신세계 유통시설 대거 입점, 야구 관련 상품과 서비스 개발 등의 비전을 제시했다. 정 부회장도 경기장을 자주 찾아 팀을 응원하고 경기장에서 마주친 관중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허물없이 소통했다.
정 부회장은 2월 구단의 미국 스프링캠프 훈련장을 찾아 “야구장에 오는 팬들과 우리 기업의 고객이 동일하다. 야구장을 찾아주는 팬들이 아침에 스타벅스에 가고, 오후에 이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또 신세계푸드에서 식품을 먹는다”며 “그만큼 야구는 유통업과 직접적인 시너지가 난다. 시간을 점유하는 점, 소비자 접점이 크다는 점에서 유통업과 시너지 나는 스포츠가 야구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야구단에 통 큰 투자 진행 중인 롯데
‘유통업계 맞수’인 롯데는 신동빈 그룹 회장이 롯데 자이언츠에 최근 들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본업인 유통과 더불어 화학 및 바이오, 모빌리티, 메디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만큼 프로야구단을 통한 활발한 홍보에 나서야 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신 회장은 올해 정기 임원 인사에서 이강훈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 홍보팀장을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야구단을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강훈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2023 시즌 그룹과 구단의 ‘원팀(One Team)’ 시너지를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소비자 접점이 있는 계열사와의 공동 마케팅을 여러 각도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롯데지주 이사회가 지난해 10월 자회사인 롯데 자이언츠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90억 원의 유상증자를 의결하며 선수 계약과 영입, 인프라 투자에 통 큰 행보도 보였다. 팀의 간판 선발 투수인 박세웅 선수와 5년 총액 90억 원 규모의 다년 계약을 체결했고, 취약 포지션 포수 자리에 FA 계약으로 LG 트윈스에서 유강남을 영입했다.
또한 롯데 구단은 선수단이 착용한 유니폼을 롯데케미칼의 자원 선순환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하고, 이외 그룹 계열사들과 홍보·마케팅 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또한 ‘2030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그룹 차원의 지원 노력에 대해서도 선수단 홈·원정 유니폼에 엑스포 유치 기원 패치를 부착하고 사직구장 내에 홍보물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힘을 보탰다.
시즌 초반이지만 구단 역시 좋은 성적으로 이에 화답하고 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등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 신 회장은 그간 다른 구단주와 비교 선상에 놓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올 시즌 향방이 대외 이미지나 리더십과도 직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개 행보 대폭 늘리는 두산 박정원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개막전에 유일하게 참석한 총수다. 지난 2009년부터 두산 베어스 구단주를 맡아온 그는 ‘구단의 얼굴 역할’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존재감은 누구 못지않게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이승엽을 새 사령탑으로 영입한 데 이어 FA 최대어이자 국내 최고 포수로 불리는 양의지를 영입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박 회장은 지난해 11월 21일 밤 인스타그램 친구공개 계정에 올린 사진에 이승엽 감독과 양의지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게재하며 그 아래에 ‘웰컴백! 양 사장’이라고 적어 양의지의 이적을 암시한 바 있다.
당시 양의지의 거취에 대한 소식으로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 속에서 구단주가 직접 올린 게시물은 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양의지는 NC 다이노스를 떠나 두산 베어스와 6년 최대 152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는 박 회장이 양의지의 두산 이적에 자신의 역할이 컸음을 나타낸 대목이기도 하다. 양의지 역시 입단식에서 “두산 구단과 처음으로 협상하는 자리에 구단주가 오셔서 나도 당황했다”며 “내가 (2018년 두산에서) NC로 떠날 때 밥 한번 사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러 왔다며 함께하고 싶다고 (친정팀) 복귀를 권유하셨다”고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이와 함께 양의지는 NC 다이노스 구단주인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이사에게도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는 김택진 대표가 지난 4년간 자신과 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점이 막판까지 두산 복귀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2011년 구단을 창단해 구단주를 맡아온 김 대표는 정용진 부회장이 야구팬들 사이에서 ‘용진이 형’으로 불리기 전까지 ‘택진이 형’으로 통할 만큼 극진한 야구 사랑으로 유명하다. 그의 든든한 지원 속에 NC는 창단 초기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더니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신흥 명문 구단으로 도약했다.
한편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01년까지 구단주를 맡은 것을 끝으로 오너가 구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꾸준히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등 애정을 과시했으나 2016년 삼성그룹 산하에서 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면서 기류가 완전히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이후 팀 성적도 추락했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한 뒤, 2016년 9위 추락 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전통의 명가로 불린 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자존심과 그룹 임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으며 구단 운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