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위기의 유럽, 안전지대 아닌 한국
[이슈메이커] 위기의 유럽, 안전지대 아닌 한국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10.0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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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올겨울 에너지난 대비 ‘잰걸음’
미국의 에너지 생산 확대 촉구 목소리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위기의 유럽, 안전지대 아닌 한국

 

전 세계 에너지 안보 위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자국산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 중단 압박 카드를 내놓자 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러시아발 가스 대란이 현실화하면서 세계 에너지 사용 행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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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시장 ‘혼란의 도가니’

지난 9월 2일 유럽 G7 재무장관들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시행하겠다고 공동 성명하자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가스관 수리를 명분으로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공급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외에도 러시아는 최근 수 개월간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에 반발하며 천연가스 공급 중단과 감축을 반복해왔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국산 원유 가격상한제에 동참하는 국가에 대해 “가스도, 원유도 석탄도, 휘발유도 아무것도 없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가스가 막힐 때마다 유럽 내 전력과 가스 가격은 전례 없이 급등해 에너지 위기가 도래했다. 유럽 주요국들이 난방과 경제활동을 위해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혼란이 커지자 유럽은 비상 체제를 가동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전기와 가스를 서로 나누어 쓰면서 협력하기로 했다. 프랑스는 필요한 경우 독일에 가스를 보내고, 독일은 거꾸로 전기를 프랑스로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그간 불편한 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걸프 3개국을 순방하며 에너지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서방은 2018년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해 국제적으로 고립시켜왔는데, 서방 국가의 정상이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다는 점만 봐도 최근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반증한다. 특히 탈원전을 선언했던 독일은 올해까지 남아있는 원전 3기 폐쇄하기로 했으나 다시 계속 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스페인의 경우 겨울철 가정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나는 시간대에 산업계가 에너지 사용을 자제해줄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러시아와 인접한 핀란드에서는 최근 전력회사 ‘카후 보이마 오이’가 급등한 전기가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는 등 에너지 시장이 흔들리자 대규모 정전 사태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 도심에서 에너지 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7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위 주최 측은 체코가 군사적으로 중립에 서고, 러시아 등 가스 공급처와 직접 계약을 맺어 가스를 싸게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그간 불편한 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걸프 3개국을 순방하며 에너지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Kremlin.ru/Wikimedia Commons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그간 불편한 관계였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걸프 3개국을 순방하며 에너지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Kremlin.ru/Wikimedia Commons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사이의 혼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전장 밖에서 지속되는 전쟁이라고 분석한다. 추위로 인해 유럽 여론이 흔들리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을 지낸 필립 브리드러브 역시 “푸틴 대통령이 군대가 전장에서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유럽 응집력을 흔드는 데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며 올겨울 추위 때문에 유럽 여론이 악화할 가능성을 중대 변수로 주목했다. 브리드러브는 “그의 큰 희망은 이제 유럽인과 유럽 정치 지도자를 갈라치는 데 있고, 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가운데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유럽의 에너지 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 생산을 늘릴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맬패스 총재는 WA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에너지를 어디서 새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며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는 세계 경제 1위 국가(미국)”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청정연료나 천연가스 또는 더 효율적인 송전 기술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본을 가장 많이 갖고 있고 그 자본을 이런 분야에 동원할 능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세계 지도자들과 회의할 때마다 어떤 분야에서 생산을 확대할 기회가 있는지 찾아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해결책의 일부는 생산량을 훨씬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유럽이 에너지 부족으로 석탄을 다시 사용하는 게 문제”라며 “유럽이 전 세계의 석탄 물량을 사들이고 있고 또 천연가스로 비료를 만드는 국가들로부터 천연가스 물량을 가져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럽연합은 천연가스만으로는 전체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어 에너지 위기 대책으로 난방 온도를 제한하는 고육지책을 꺼낸 상태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유럽연합은 천연가스만으로는 전체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어 에너지 위기 대책으로 난방 온도를 제한하는 고육지책을 꺼낸 상태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현재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위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중심 공급체계를 갖춰나가면서 이의 간헐성 백업 발전으로서 가스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인해 공급망 위기는 예견된 것이었다. 특히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작년 가을 북해(北海) 지역의 풍력 발전량이 감소하면서 이미 시작됐다. 2020년 유럽 전력 생산에서 풍력 발전 비율은 16.4%에 달했고, 영국의 경우 25%에 육박할 정도로 그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북해 바람이 약해지며 전력 생산이 급감하자 유럽 전역이 에너지 위기 국면으로 빠져들었고, 영국 전체 전력 생산에서 풍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7%로 떨어졌다. 여기에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자 에너지 위기가 커진 것이다.

 

이처럼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까지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기후변화에 대한 압박과 에너지 안보 사이에서 전 세계가 갈 길을 잃고 있다.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사이의 혼돈’이라는 기사에서 “최근의 상황은 에너지와 기후변화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탄소배출의 50%를 차지하는 석유와 가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딜레마”라고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딜레마 혹은 세기의 기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감은 에너지 안보가 유럽에 중대한 도전으로 남아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국내 도시가스 요금 인상 우려도 나오고 있다. ⓒPixabay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국내 도시가스 요금 인상 우려도 나오고 있다. ⓒPixabay

 

혹독한 겨울, 한국에도 찾아올까?

유럽연합은 에너지 위기 대책으로 난방 온도를 제한하는 고육지책을 꺼낸 상태다. 러시아 대신 타국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만으로는 전체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용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독일은 이에 더해 사우나와 공공수영장 온도를 현재보다 5도 이상 낮추는 방안을 병행하기로 했다. 스페인 역시 공공기관과 쇼핑몰, 기차역, 영화관 등에서 난방 온도를 19도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와 핀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샤워는 5분 이하’라는 캠페인을 펴고 있고, 실내에서 점퍼와 양말, 슬리퍼 등을 착용하는 것도 권장하는 중이다. 핀란드에서 전국 단위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펼쳐진 것은 1970년 석유 파동 이후 52년 만의 일이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연료 배급제’를 실시한다. 주택 면적에 따라 전기·가스 사용 한도를 설정하고 기준치를 넘으면 범칙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민간 기업의 가스보일러 판매도 금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 역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국내 도시가스 요금 인상 우려도 나온다. 다만 정부는 필요 물량을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겨울철 에너지 대란은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3월부터 조기에 동절기 대비 비상 체제를 가동하고 물량 조기 확보에 나선 만큼 가스 대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수급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한국의 최대 LNG 수입국으로 떠오른 호주가 가스 수출 제한을 검토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부득이한 상황이 펼쳐질 시 한국 정부가 유럽처럼 공공시설이나 상가 등에서 난방 온도를 제한할 가능성은 크다. 민·관 합동으로 강력한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고, 필요에 따라 민간 LNG 직 수입사에 대한 수출입 규모·시기 등의 조정 명령을 통해 수급 안정화 조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실제로 조정 명령을 내리면 이는 2008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 된다. 여기에 큰 폭의 도시가스 요금 인상도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 시점 기준 원가의 40% 수준인 요금으로는 가스공사가 원료를 수입할 자금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 역시 “도시가스요금을 최소한 원가의 80% 수준 이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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