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글로벌 명품 브랜드 변화를 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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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01.1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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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종 최초 샤넬 수장에 올라

명품·패션 업계 여성 리더 등용 이어질까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글로벌 명품 브랜드 변화를 택하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글로벌 최고경영자로 리나 나이르를 선임했다. 그간 샤넬은 2016년 미국 출신의 여성 CEO 모린 치켓이 퇴임한 뒤 CEO 자리를 한동안 공석으로 두고 샤넬의 소유자인 알랭 베르트하이머가 역할을 대행해왔다. 나이르는 샤넬 브랜드 역사상 두 번째 여성 CEO이자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의 기록을 쓰게 됐다.
 
 
ⓒShinykatie/Wikimedia Commons
ⓒShinykatie/Wikimedia Commons

 

끊임없이 ‘유리천장’ 허물며 리더십 인정받아
1969년 인도에서 태어난 나이르는 다닐 학교를 마땅히 찾기 못할 정도로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그는 유년 시절을 “소녀들에게는 늘 규범과 금기가 적용됐고 넘기 어려운 장벽이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나이르는 인도 왈찬드 대학에 진학해 전자공학과 통신공학을 전공했고, 이어 인도 XLRI 경영대학원에서 인사를 전공해 학업을 마쳤다.
 
1992년 나이르는 다국적 소비재기업 유니레버의 인도 자회사인 힌두스탄 유니레버에 매니지먼트 연수생으로 입사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썼다. 당시 기업의 여성 직원 비율이 2%에 불과하던 때라 공장에서는 여성 화장실이 대부분 없었다. 공장에서 근무하던 시절 야근을 하는 최초의 여직원으로 꼽혔던 나이르는 “내가 현장에 투입되면 가장 먼저 여성 화장실부터 생겨야 했다”며 “여성 화장실은 곧 리나의 화장실이라는 농담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능력을 인정받은 나이르는 1993년부터 립톤 공장 인사관리자 등을 거쳐 2013년 글로벌 인사관리(HR) 수석 부사장 겸 다양성 책임자에 올랐고, 2016년에는 CHRO와 유니레버 이사회의 임원이 됐다. 세계 190여 개국에서 일하는 유니레버 임직원 15만 명의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최초의 아시아계 출신이자 최연소 기록이었다.
 
 
리나 나이르는 유니레버 재직 당시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유리천장을 깨 온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린다. ⓒYoliveros/Wikimedia Commons
리나 나이르는 유니레버 재직 당시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유리천장을 깨 온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린다. ⓒYoliveros/Wikimedia Commons

 

당시 그는 전공인 인사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한 것은 물론 경영 감각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CHRO로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여러 인사 프로그램을 주도하며 성차별을 비롯한 다양한 차별 금지에 나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로는 유연근무제 등 환경 변화에 맞춰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한 나이르는 직원들의 건강 ‘웰빙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며, 팬데믹 기간 전 직원에게 하루의 휴가를 제공하는 ‘글로벌 감사의 날’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나이르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유리천장을 깨 온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샤넬 합류 역시 비(非)백인으로는 처음으로 샤넬의 사령탑을 맡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글로벌 기업 사령탑에 오른 인도계 여성으로는 인드라 누이 전 펩시코 CEO에 이어 두 번째다. 구글과 모회사 알파벳의 순다르 피차이 CEO,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CEO, 트위터의 신임 최고경영자가 된 파라그 아그라왈 등 인도계 경영자들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장악한 데 이어 명품업계에도 인도계가 가세하게 됐다.
 
샤넬은 성명을 통해 나이르를 “진보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리더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장기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리더”라고 설명했다. 나이르는 샤넬의 성명 발표 직후 트위터에 “샤넬은 창조의 자유, 인간의 잠재력을 키우는 기업”이라며 “상징적이고 존경받는 기업의 글로벌 CEO로 임명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로 불리는 샤넬은 리나 나이르 영입을 기점으로 ESG 경영에도 한층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Pixabay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로 불리는 샤넬은 리나 나이르 영입을 기점으로 ESG 경영에도 한층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Pixabay

 

ESG 경영 강화 의지 내비치는 샤넬
인도 컨설팅그룹 럭셔리커넥트의 압하이 굽타 CEO는 “인도인이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패션계 아웃사이더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수장으로 임명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나이르는 패션업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실제 그동안 명품기업들이 CEO를 선택해온 관행을 감안할 때 샤넬의 이번 선택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상당수가 창업자 일가나 내부 인사를 CEO로 택하는 폐쇄적인 인사 관행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산업계 전체로 넓혀 봐도 나이르 같은 인사전문가가 재무·마케팅 전문가를 제치고 CEO를 맡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전문가들은 샤넬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첫 행보를 보인 것으로 분석한다. 영국 웨스트민스터대의 앤드루 그로브스 교수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샤넬은 유럽 중심주의를 고수하며 화석화된 유물이 돼가고 있었다”며 “하지만 샤넬은 더 포용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원하고 있으며 이는 패션업계에 중대한 변화”라고 했다. 로이터 역시 로이터는 샤넬이 “보다 포용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나이르를 수장으로 뽑았다고 전했다. 샤넬은 최근 30년 이상 샤넬 쇼를 연출해 온 미셸 고베르 프랑스 DJ의 인종차별 문제로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프랑스 민트그룹의 장 필립 프뤼노 CEO도 “(이번 인사는) 샤넬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다양성, 모든 수준의 채용, 관리, 창의성 및 커뮤니케이션의 기준을 유지하는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나이르가 유니레버에서 쌓은 글로벌 제품 관리 경험은 샤넬이 제품 수명과 주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전 세계적·지역적 소매를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도출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샤넬의 설립자인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그러했듯 명품·패션 업계에 ‘우먼파워’가 한층 강해지고 있다. ⓒ샤넬
샤넬의 설립자인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그러했듯 명품·패션 업계에 ‘우먼파워’가 한층 강해지고 있다. ⓒ샤넬

 

또한 일각에서는 나이르의 합류를 기점으로 ESG 경영에 한층 힘을 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샤넬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여성과 청소년기 소녀들의 경제적, 사회적 여건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한 바 있다. 하지만 경쟁 업체들에 비해 공개적으로 자선 활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뉴욕 유통컨설팅 기업 로버트버크의 로버트 버크 CEO는 미국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샤넬이 상품 가치를 넘어 핵심 가치와 인간적 가치로 더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면, 이를 확고한 입장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나이르는 그 분야에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브랜드를 사람, 문화, 메시지에 중점을 둔 새로운 시대로 이끌겠다는 샤넬의 더 큰 비전을 의미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패션 장학금 펀드의 피터 아놀드 이사는 “글로벌 브랜드, 특히 샤넬과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우리의 산업을 바꿀 책임이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의 구성에 변화가 필요하다. 나이르의 임명은 확실히 고무적인 발전”이라고 했다.
 
실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친환경 생산을 강조하던 소비재 기업 출신의 인물을 잇달아 내정하며 이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LVMH의 안토니오 벨로니 대표와 미국 화장품 기업인 에스티로더의 프리다 대표는 모두 미국 대형 생활용품 제조기업 P&G 출신이다. 투자업체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샤넬이 소비재 기업 CEO를 영입하는 최근 업계 추세를 따르게 됐다”고 짚었다.
 
 
CEO 선임 이후 리나 나이르는 “상징적이고 존경받는 기업의 글로벌 CEO로 임명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World Economic Forum/Flickr
CEO 선임 이후 리나 나이르는 “상징적이고 존경받는 기업의 글로벌 CEO로 임명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World Economic Forum/Flickr

 

명품 시장 성장 속 혁신 경영 주목
이와 함께 나이르에게는 제품을 통한 고객만족도 유지에 대한 과제도 주어졌다. 샤넬은 나이르를 글로벌 CEO로 발탁한 이유를 “장기적인 브랜드 성공을 위해서”라고 발표했는데, 코로나19 명품업계에서 샤넬의 영향력 확대를 어떻게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되는 점이다. 샤넬은 루이 비통, 에르메스와 함께 세계 3대 명품 패션 브랜드로 불린다. 샤넬은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매출이 전년보다 17.6% 줄어든 101억 달러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지난해 6월 발표에 따르면 상반기 매출이 두 자릿수로 성장했고, 7월 일부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던 만큼 2021년의 실적은 증가세로 돌아섰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보복 소비가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명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명품업계 매출이 지난해 3,200억 달러에서 2025년까지 4,180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샤넬의 나이르 영입으로 패션업계 ‘우먼파워’도 한층 강력해지는 분위기다. H&M의 CEO 헬레나 헬메르손과 갭의 소니아 싱갈, 오는 4월 ‘자라’로 유명한 인디텍스의 회장 자리에 오르는 마르타 오르테가에 나이르 역시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샤넬의 설립자인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 역시 자신의 디자인 활동을 통해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는 평을 들으며 20세기 여성 패션 혁신의 선도자이자 샤넬 브랜드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 인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에서 CEO를 역임했던 티나 보즈와니는 샤넬이 다시 한 번 여성 CEO를 발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즈와니는 “샤넬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브랜드다. 때문에 소비자 기반을 대표하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기존 브랜드가 리더십에 대해 다른게 생각하는 것을 보는 건 흥미진진하다. 이번 인사가 여성 리더십과 출신에 대한 업계의 접근 방식을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져오는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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