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계급사회 Ⅲ] 프리캐리아트 시대를 말하다
[新 계급사회 Ⅲ] 프리캐리아트 시대를 말하다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6.01.31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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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신 계급사회 속 가장 낮은 자리, 프리캐리아트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 보장하는 실질적 지원책 마련돼야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좀 더 세분화 된 계급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불안정한 노동자계급’(precarious proletariat)으로, 줄여서 프리캐리아트(precariat)라고 불리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에서조차도 밀려난 가장 밑바닥 계층을 말한다. 영국의 한 의원은 이를 두고  “영국 사회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권위도 없는 집단. 누군가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지배를 받기 위해 태어난 계급이다”라고 표현했다. 16세기에 존재했던 노동계급은 현 시대의 ‘프리캐리아트’로 완벽하게 돌아왔다.



위험한 계급 프리캐리아트, 사회적 보호 절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지난해 열렸던 ‘2015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가이 스탠딩 런던대 교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프리캐리아트라는 위험한 계급이 떠오르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 사회적 이슈를 만들었다. 그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잔뼈가 굵은 국제노동 문제의 권위자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제안으로 유명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이며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프리캐리아트:새로운 위험한 계급’의 저자이기도 하다.


한편 프리캐리아트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러한 용어를 만든 사람은 바로 프랑스 사회학자들이다. 스탠딩 교수에 따르면 프리캐리아트는 1980년대에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와 양극화가 심화되는 와중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과실을 누리는 데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계급이다. 주로 일용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떠돌이 노동자를 말하는데,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할 수 있다. 퇴직 후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부 등으로 일하는 노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범주 안에 속하긴 해도 안정적인 직장과 소득을 가진 ‘샐러리아트’(salery+proletariat)와는 엄연하게 다르다. 스탠딩 교수는 이들의 개인적, 사회적 특성을  4A로 규정했는데 불안(Anxiety), 소외(Alienation), 사회적 무질서(Anomy), 그리고 분노(Anger)다. 스탠딩 교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고 이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해 이미 사회 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왔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재정건전성 강화을 위해 시행한 긴축 정책의 최대 희생자가 바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탠딩 교수는 이들에게 기본적인 소득과 여가, 교육, 금융지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커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프리캐리아트가 더 위험해지기 전에 그들을 구출해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도 프리캐리아트 계급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숫자는 무려 600만 명이 넘어섰고, 이들이 설 자리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좁아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성장에 가려져 이들은 ‘골칫거리’일 뿐 계급 간 격차는 줄여지지 않고 있다.

 

영국사회 15% 차지, 평균 예금액 136만원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며 1990년 11월까지 이어진 영국의 대처 정권은 노동조합을 ‘사회악’으로 규정했다. 그 핵심이자 영국 산업의 근간이던 석탄산업이 철저히 짓밟힌 이유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폐광이 잇따랐다. 대처 정권 시절은 영국 전역에서 일자리를 잃은 광산 노동자가 유령도시로 변한 탄광촌을 떠나던 때로, 영국의 프리캐리아트 계급이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영국은 대규모 연구결과에 의해 프리캐리아트 계급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증명된 곳이다. 계급 간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영국에서 5년 전 ‘영국 사회계급 조사’(GBCS)를 시작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 온라인 설문으로, 전통적으로 상류층·중산층·노동계급 3단계로 나눴던 영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한 21세기판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하도록 한 이 설문의 첫 번째 질문은 ‘거주지역’에 관해서다. 지방 소도시의 개인 주택부터 도심의 대저택까지, 주거 형태와 거주 지역의 특성을 모두 15가지로 세분화해 선택하도록 했다. 이어 취미와 관심거리, 여가활동과 좋아하는 음악·음식 취향 등에 대한 문항이 촘촘히 이어졌다. 교육 수준과 사회적 활동 등에 대한 질문과 교우관계와 주변인물의 직업 등을 묻는 항목도 등장한다. 주로 대하는 신문·텔레비전·라디오, 인터넷 매체 등 언론에 대한 선호도 역시 개인의 계급을 가르는 주요 항목이다. ‘14살 때 누가, 어떤 일을 해 가족을 먹여살렸는지’를 묻는 질문은, 사회적 배경을 유추하는 데 주로 사용됐다. 이어 지난 1년간 휴가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여행지와 숙박 형태까지 꼼꼼히 따져 기록하도록 했다. 소득수준과 신상정보도 빠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부모 세대와 견줘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으로 설문은 마무리됐다.


이 설문조사는 영국국민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얻었는데, 무려 1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설문이 참여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전해 받은 런던정경대(LSE)·맨체스터대를 비롯해 3개국 6개 대학 연구팀은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설문 참여자의 절대다수가 소득·교육 수준이 영국 사회 평균보다 높은 ‘전형적인 시청자층’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다국적 여론조사 전문기관 ‘GfK리서치’에 맡겨 계층별로 대표성을 지닌 1,026명을 따로 심층면접해 조사 결과 ‘보정작업’을 벌여야 했다. 이 조사결과 영국 사회는 전통적인 계급 분류에서 훨씬 더 복잡하고 파편화 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사회학회(BSA)가 밝힌 최종 보고서를 보면, 전통적인 3계급 구조는 이제 7계급으로 세분화됐다.


최상위층은 영국 사회의 특권 집단인 ‘엘리트 계급’이다. 전체 인구의 6%를 점하는 이들은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자본이 가장 많은 집단이다. 연평균 최소한 8만 9천파운드(약 1억 5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14만 파운드(약 2억 4천만원) 이상의 예금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체 고위 간부와 경영자, 변호사·펀드매니저·의사 등이 이 부류에 많은데, 좋은 집안 출신으로 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킹스칼리지 등 명문대 출신의 집중 현상이 뚜렷했다.


두 번째 집단은 전체 인구의 25%를 점하는 ‘기성 중산층’이다. 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고루 ‘자본력’을 갖춘 이들은 평균 46살의 전문 기술직으로, 연평균 4만 7천파운드(약 8천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사회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며, 문화적 취향도 다양한 집단으로 분류됐다.


그리고 ‘전통적 노동계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4%에 그쳤다. 경제·사회·문화의 3개 평가 항목에서 고루 낮은 수준을 보인 이 집단의 평균연령은 66살, 연평균 수입은 1만 3천파운드(약 2200만원)에 머물렀다. 그나마 주거용 부동산값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설문 참여자들은 주로 비서직군과 전기·전자 등 기술직, 돌봄서비스 노동자였다. 전통적 의미의 중산층과 노동계급이 전체 인구의 39%에 그쳤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통적인 계급구조에서 벗어나 이번 조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계급은 기술적 중산층, 풍족한 신 노동계급, 신흥 서비스 노동계급, 프리캐리아트(불안정 노동계급) 등 4가지다. 계급별로 특징이 있는데, ‘기술적 중산층’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사회·문화적 자산이 적은 계급이다. 파일럿·약사·연구직 종사자 등이 대부분인 이들은 영국 사회의 6%를 차지한다.


‘풍족한 신 노동계급’은 영업직과 유통·부동산 업계 종사자가 많은데,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수준이지만 사회·문화적 욕구는 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는 ‘신흥 서비스 노동계급’은 이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경제 능력이 떨어지지만, 특히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등 사회·문화적 ‘자본’은 풍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리사·간호조무사·보육교사 등이 다수인 이 부류는 평균연령이 34살로,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젊은 집단에 해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 사회의 최하층을 이루고 있는 집단, 바로 ‘프리캐리아트’ 계급이다. 이 계급은 불안정한 노동계급으로 경제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가장 취약하며, 영국 전체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평균 소득은 8천 파운드(약 1,360만원). 수적으로는 엘리트 계급의 2배가 넘지만, 소득은 10분의 1에도 이르지 못하는 셈이다. 평균 예금액은 800 파운드(약 136만원), 대학 교육을 받은 비율도 30명 중 1명꼴에 그쳤다. 영국의 16세기 당시 최하위 계급을 담당하던 ‘노동계급’에 해당하며, “영국 사회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권위도 없는 집단. 누군가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지배를 받기 위해 태어난 계급”으로 표현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발전 위해 인간다운 기본적 권리 보장해야


스탠딩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현 시대는 프리캐리아트라는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냈다”며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줘야만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스탠딩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긴축을 추진했으나 고용안정성을 잃은 프리캐리아트만 실질적으로 긴축을 강요받았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이 무질서한 사회 불안정으로 연결되기 전에 안정성, 시간, 공간, 교육, 금융지식, 자본 등 6가지가 재분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탠딩 교수는 특히 “금융지식 불균형은 더 큰 소득불균형을 낳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이 더 많은 금융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 즉 프리캐리아트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비정규직을 중점으로 하는 노동개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여야는 물론이고 청와대, 노동단체 모두가 날을 세운 채 대립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기간제법(비정규직법) 개정안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 본인이 신청할 경우 최대 2년 범위 내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상정되면서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에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늘어가는 ‘프리캐리아트’에 대한 문제는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정당하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프리캐리아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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