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진보 숙원 이뤘으나 만만찮은 후유증 낳아
[이슈메이커] 진보 숙원 이뤘으나 만만찮은 후유증 낳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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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진보 숙원 이뤘으나 만만찮은 후유증 낳아

 

지난해 정치권을 관통한 키워드는 ‘거대여당’이었다. 4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전체 의석의 60%인 180석을 확보하며 국회선진화법 울타리마저 뛰어넘는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상임위원장 독식과 쟁점법안 단독처리,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등 굵직한 이슈마다 그 시작은 거대여당이었다.

 

 

ⓒ국회
ⓒ국회

 

‘협치’ 대신 ‘강공’으로 점철된 국회

지난 총선은 16년만의 최고 투표율(66.2%)을 기록하며 극단적인 세력 대결 속에 펼쳐졌다. 물러설 수 없는 혈투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개헌 빼고는 사실상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쥐었다. 이를 바탕으로 민생법안과 개혁입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며 기세를 올렸다.

 

민주당은 첫 작업이었던 원 구성에서부터 협상이 여의치 않자 53년 만에 야당 없이 국회의장을 단독 선출했고, 관례상 제1야당이 맡아왔던 법사위원장도 차지하는 등 18개 전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처음이었다.

 

물론 야당과의 협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회 개원 준비가 한창이던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회담을 가지며 협치의 단초를 마련하는 듯 했지만 이때뿐이었다. 9월에 취임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 역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고공 협치’를 타진하기도 했으나 당내 지지층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주요 입법과제 중 상당수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역사의 발전’으로 자평했다. ⓒ더불어민주당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주요 입법과제 중 상당수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역사의 발전’으로 자평했다. ⓒ더불어민주당

 

거대여당이 국회를 든든히 받쳐주자 문재인 정부의 국정 동력도 탄력을 받았다. 주요 정책의 연내 완료 목표를 세우고 이를 완수하기 위해 민주당이 선봉에 나섰다.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 정책을 위한 법안이 여러 논란 속에서 민주당 단독처리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 시작은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차보호3법’이었다. 임대차3법은 정기국회가 개원하기 전인 7월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부동산 정책의 일환으로 발의된 지 불과 3일 만이었다. 당시 전문가와 야당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수적 우위로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전세난을 완화시키고 장기적인 주거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 다음날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곧바로 시행됐지만, 이후 부동산 시장은 긍정적 효과 보다는 전월세 가격이 상승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당내 만류로 재신임됐다. ⓒ국민의힘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당내 만류로 재신임됐다. ⓒ국민의힘

 

각종 개혁 입법 ‘후퇴’ 논란

경제·노동 관련 개혁 입법의 내용을 놓고선 ‘개혁 후퇴’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표적 사안이 공정경제 3법으로 명명했던 법안 중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핵심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유지’로 뒤집은 대목이다. 공정거래사건에 대해 전문집단인 공정위의 고발이 반드시 있어야 검찰이 수사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인 전속고발권의 폐지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당초 정부안에는 가격 및 입찰 담합, 공급 제한과 시장 분할 등 4대 불공정 행위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없애 공정위와 관계없이 검찰도 수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민주당은 막판에 현행 유지로 방향을 틀었다. 민주당은 공정위와 검찰의 이중 수사를 우려하는 반발을 수용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는 검찰의 권한을 제약하기 위한 고려 때문에 개혁성이 후퇴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나마 논란이 됐던 상법 개정안은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출 대주주 의결권을 개별 3%까지 인정하고, 공정거래법 전속고발권도 유지하는 등 정부 원안보다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경제계는 여전히 시행시기라도 1년 늦춰 보완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과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노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결사의 자유를 확대한 노조법 개정안에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연장을 3년으로 확대한 부분 때문이다. 아울러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며 주52시간제 취지를 벗어나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등 건강권을 침해할 가능성도 크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여야의 갈등은 정기국회 막바지 공수처법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여야의 갈등은 정기국회 막바지 공수처법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이어지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입법과제 완수한 민주당, “역사의 발전”

여야의 갈등은 정기국회 막바지 공수처법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절정으로 치달았다. 민주당은 당초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법에 야권의 비토권을 포함시켰다. 야당 추천위원들이 공수처장 후보를 반대할 경우 임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공수처장 후보 인선이 지연되며 설립이 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자 여당은 1년 만에 추천위 의결정족수를 6명에서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5명)으로 낮춤으로써 야당 비토권을 사실상 무력화시켜 개정안을 다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12월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개혁입법 상정을 밀어붙였고,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은 공수처법과 국정원법, 남북관계특별법 개정안 3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수처법 필리버스터는 정기국회 회기 종료로 3시간 만에 자동 종결됐고, 곧바로 개회한 12월 임시국회에서 국정원법 필리버스터가 시작됐지만 민주당은 코로나19 재확산을 이유로 야당의 반론권을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했다. 이후 사상 첫 강제종료 표결에 나서면서 필리버스터 정국은 막을 내렸다.

 

속전속결로 입법을 강행하다보니 부작용도 속출했다. 공수처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최장 90일 이내 활동을 보장하는 안건조정위를 신청했지만 민주당은 불과 77분 만에 마무리 지었다. 낙태죄 관련 공청회가 진행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습 상정해 의결하기도 했다. 야당이 신청한 반대토론은 토론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종결했고, 법안 표결 전 공수처 예산 내역이 담긴 ‘비용 추계서’를 의결하지 않고 생략하는 촌극도 빚었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주요 입법과제 중 상당수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 민주당은 이를 ‘역사의 발전’으로 자평했다. 이낙연 대표는 공수처의 제도화가 가시화된 점을 거론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처럼 역사는 발전한다고 저는 믿는다”며 “국민들도 역사 발전의 도도한 소명에 동참하고 성원해주시길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범여권 주도의 공수처법 국회 통과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54.2%로 다수였다. 공수처법 개정안 의결 당시 “권력을 잡으니까 보이는 게 없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던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당내 만류로 재신임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전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전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국민의힘

 

야당, 대안제시하지 못한 채 지리멸렬

민주당의 입법 속도전에 야권은 지리멸렬한 상황 속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에 함몰된 전략이 자업자득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당의 입법독주는 야권의 현 상황과 동전의 앞뒷면 관계라는 것이다. 당 지도부의 전략이 부재했고, 정책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등 수권정당으로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총선 이후 의석수에 압도당한 국민의힘의 투쟁 전략은 여론전에 ‘올인’하는 것에 그쳤다.

 

그간 국민의힘은 당명 개정을 시작으로 당 쇄신에 안간힘을 쏟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한 데 이어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대통령의 잘못은 곧 집권당의 잘못”이라며 “저희 당은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했으며, 통치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당을 뿌리부터 다시 만드는 개조와 인적 쇄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한 인물난으로 인해 차기 대선 구도를 이끌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집권당의 일방통행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압도적인 의석을 앞세워 입법 드라이브만을 건다면 결국 ‘정치 실종’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는 설득과 타협, 대화를 핵심 요체로 하는데 우리 정치를 보면 ‘제로섬 게임’을 계속 하면서 후진적 행태를 되풀이 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협상과 타협이 사라진 국회가 만드는 사회적 갈등과 이로 인해 유발되는 불신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2년차를 맞는 21대 국회는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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