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집회 Ⅰ] 시들지 않고 어둠을 밝혀온 시민의 촛불
[이슈메이커_ 집회 Ⅰ] 시들지 않고 어둠을 밝혀온 시민의 촛불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11.17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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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시들지 않고 어둠을 밝혀온 시민의 촛불

 

한국 사회에서 촛불집회의 역사는 제법 깊다. 1974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주관한 시국기도회로 시작해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도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가 있었다. 그리고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으로 본격화 된 촛불집회는 그동안 민주화와 통합의 상징으로 기능해왔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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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안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 지방도로에서 길을 가던 신효순, 심미선 두 학생이 주한 미군의 장갑차량에 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오마이뉴스’의 시민 기자가 두 여학생을 추모하자는 뜻으로 인터넷을 통해 촛불시위를 제안하며 11월 광화문 앞에서 처음 촛불집회가 열리게 된다. 초기에는 단순 추모 집회였지만 미군 법정이 장갑차 운전병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반미 시위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전국에 확산되며 한·미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탄핵 무효’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 대한문까지 촛불로 가득 찼고, 이러한 집회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안을 기각할 때까지 전국 각지에서 지속되었다. 탄핵소추 결의의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항의하며 발생한 촛불집회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08년 5월 ‘촛불소녀’라 불린 10대 여학생들이 청계광장에 모이며 촉발되어 연인원 100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가 되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고 고개를 숙여야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의 미숙한 대처와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과 과장된 유언비어에 선동된 시민들의 감정 등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한동안 소란이 이어졌다.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광화문 촛불집회

박근혜 정부 당시 집회는 ‘국정농단’으로 대표된다.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 최순실이 ‘비선 실세’로서 의사결정은 물론 국정 전반에 개입해 농단을 일삼은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또 한 번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였다. 2016년 10월 24일 뉴스룸에서 최순실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를 입수해 조사한 결과 대통령 연설을 비롯한 각종 국가기밀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를 기점으로 격앙된 민심은 대통령 하야와 퇴진 등을 외치기 시작했다.

 

10월 29일 2만 명 규모로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는 2차 20만 명과 3차 100만 명을 넘어 12월 3일 6차 집회에서는 주최 측 추산으로 232만 명이 모여 정부 수립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듬해 4월 23차 집회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는데 주최 측 기준 누적 연인원만도 1,700만 명에 달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폭력 사태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국회가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이듬해 10월에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은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집회에 참여한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열렸던 촛불집회는 연인원 1,700만 명이 모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지난 2016년 열렸던 촛불집회는 연인원 1,700만 명이 모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조국 사태’ 두고 진영 간 갈등 극에 달해

지난해 서초동과 광화문에서는 ‘검찰개혁’과 ‘문재인 정권 퇴진’을 주제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조국 전 장관 가족의 도덕성 논란과 이에 대한 대규모 검찰 수사가 벌어지자 한쪽에선 ‘조국 사퇴’를 외쳤고, 이에 반대쪽에서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부르짖으며 광장이 갈라졌다.

 

진영 간 갈등이 점차 고조되며 ‘세력 부풀리기’ 논란도 일어났다. ‘서초동 집회’에서 참가자 숫자를 200만 명이라고 발표하자 바로 이어진 ‘광화문 집회’에서는 300만 명이 모였다고 받아쳤다. 그리고 다시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이 “시민 여러분들이 반포대로, 서초대로를 300만으로 꽉 채워줬다”고 주장하며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처럼 지난해 광장은 그동안 ‘통합’의 상징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갈등과 대립과 분열이 계속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 강연에서 “두 집회 군중들 사이의 진리는 결코 같지 않다. 정치 갈등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2016년 촛불집회와 같이 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도 찾기 힘들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앞선 광장민주주의와 촛불민주주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데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촛불민주주의가 지향한 가치들이 그 이후에 정치과정 속에서 녹아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렇게 각자의 ‘프레임’으로 갈라졌던 지난해의 집회는 올해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모습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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