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를 향한 행보
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를 향한 행보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5.12.31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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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Cover Story] China & England

 

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를 향한 행보

 

‘특별한 동맹국’으로 맺어진 양국의 숨은 의도는?


 


최근 중국 신발업체 천백도(千百度)가 255년 전통의 영국 장난감 업체 햄리스(Hamleys)를 인수했다. 1955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자녀들 장난감을 사준 곳으로 유명한 7층짜리 장난감 백화점 햄리스는 수많은 아이들의 천국이자 시대를 같이 해온 영국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의 명소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중국 관광객들을 위해 비자법도 완화하기로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현재 중국의 6개월 관광 비자를 2년으로 늘려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영국 방문으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는 영·중 관계를 대변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영국의 일시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겠지만, 영국의 ‘상징’까지 인수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지속적인 영국투자가 ‘양날의 검’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사적 패러독스 영국 vs 중국

영국은 중국에게 있어 뼈아픈 역사의 일단이자 긴 시련의 시발점이었다. 1840년, 당시 세계 제1의 초강대국이었던 영국은 청조(淸朝)를 상대로 아편전쟁(雅片戰爭)을 일으켰다. 마약 밀무역을 정당한 행정력을 발휘해 단속한 것에 앙심을 품고 벌인 세계사에서 가장 더러운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전쟁이다. 이 결과 중국은 치욕스러운 패배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했고, 영국의 요구를 전부 수락하면서 체결된 난징(南京) 조약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침탈하는데 죄책감을 덜어주는 표본이 되었다. 이후 중국은 속수무책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유린당하면서 이후 100여 년간 ‘아시아의 병자(東亞病夫)’로 전락했다.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뒤로하고 국력이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영국을 방문하며 두 나라의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되고 있다.
 

최근의 양국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시 주석의 영국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영국의 노력은 각별하다. 영국은 지난해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다루는 중국에 대해 비교적 비판을 자제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영국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참여 사실이 발표되자 ‘중국에 대한 영국의 지속적 순응의 일부’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이번에 중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활동과 최근 위안화 절하, 사이버해킹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묻는 말에 보좌관들은 ‘불편한 메시지’는 사석에서 전달될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특히, 오스본 장관은 최근 불거진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와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중국을 옹호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이 계속해서 세계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과 자신의 지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이번 주에 상하이증권거래소를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본 장관은 “(중국 증시 폭락이) 다른 금융시장에 미친 파급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게 우리의 평가”라고 밝혔다. 이어 “런던과 상하이 증시를 연계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할 것”이라며 “영국이 더 많은 중국 투자를 기대한다면서 이를 발판으로 유럽의 명실상부한 위안화 거래 거점으로 부상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점혈(點穴)외교’ 펼치는 시진핑 주석

지난해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영국 방문을 단행했다. 당시 5일간의 일정 동안 시진핑은 영국 왕실과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시진핑은 이에 화답하듯 400억 파운드(한화 약 7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시 주석은 영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는 기립박수 한 번도 못 받는 괄시를 당했지만, 영국 왕실은 그에게 버킹엄궁에서의 1박과 황금마차 행진을 제공하는 등 극진히 대접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정상회담 후 펍에서 맥주를 대접하기도 했을 정도다. 이에 시 주석은 “영국은 서방 국가들 가운데 선견지명이 있다”면서 “앞으로 영국에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영국의 극진한 대접이 크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처럼 영국 왕실과 정부가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극진하게 대접하며 ‘친중(親中)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 과연 ‘황금시대’를 실현할 수 있을까. 
 

실제 400억 파운드 규모의 투자는 영국 고속철도(HS2)와 보건의료보험, 항공기 제조, 에너지 개발, 부동산, 금융까지 전 분야를 망론한 전폭적 투자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은 중국과 비자 간소화를 추진 중이며, 영국 정부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도 서방 국가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가입했다. 이 같은 중국과 영국 간의 ‘끈끈한 관계’를 지켜본 한국 언론들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적대적이었던 양국 관계가 이번 시진핑의 영국 방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시진핑의 영국 방문을 ‘점혈(點穴)외교’라고 부르며 영국 왕실과 정부가 그를 극진히 환대한 것을 ‘외교적 성과’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언론들은 영국이 국내 상황 때문에 중국의 돈주머니를 노린 행동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럽의 한 언론 관계자는 “영국 왕실과 정부가 시진핑을 극진히 환대한 것은 ‘돈’ 때문”이라며 “시진핑이 영국 왕실과 정부의 환대를 받은 것이 영국 정부의 ‘친미(親美)전략에서의 이탈 혹은 수정’”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시진핑 맞는 영국의 중국 구애, 미국은 불편

앞으로 10년간 ‘황금시대’를 맞을 것으로 주장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 양국이 경제 협력을 넘어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모색 계획을 밝히는 러브콜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 역시 중국의 소비자 주도 경제로의 전환이 영국 서비스 산업의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영국이 중국에게 서구 최고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 중국은 첫 해외 원자력발전소 수출 사업으로 영국 남부에 원전 2기 건설에 참여 중이며, 맨체스터의 고속철도 건설에도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같은 영국의 급격한 중국 접근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영국의 전통 동맹국들은 좋게는 ‘기괴’하고 나쁘게는 ‘위험’한 것으로 여긴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012년 캐머런 총리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를 만난 후 중국과 외교관계가 냉각됐던 점을 부각하며 최근 급변한 영국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영국 기업들도 상당한 피해를 봤을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대해 미국에 비해 훨씬 조용한 태도를 취한 점과 그동안 중국의 인권문제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영국이 최근에는 이 문제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 노팅엄 대학의 중국 전문가 스티브 창은 “영국은 중국이 자신들을 최고의 친구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 뭐든지 하겠지만, 중국 정부는 매우 유능하고 콧대가 높다”며 “장기적으로 오스본식 접근은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영국 노동당의 맥도널 의원은 지난해 11월, 마오쩌둥의 어록을 인용해 중국과 대대적인 경제 협력에 나선 영국 정부를 비판했다. 당시 맥도널 의원은 “오스본 동지가 새로 사귄 동지(중국)와 잘 지내도록 돕고자 마오 어록을 가져왔다”며 일부 구절을 읽어 내려가며 “이 글이 오스본 장관의 새로운 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오스본 장관에게 조언했다. 이후 맥도널 의원은 마오 어록을 맞은 편에 앉은 오스본 장관을 향해 던졌다. 어록을 집어 든 오스본 장관은 책을 펼쳐 본 뒤 “개인 소장본이네요”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이 같은 맥도널 의원의 돌발 행동은 최근 ‘황금시대’를 연 영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영국의 가디언은 전했고,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영국이 아첨 외교를 펼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맥도널 의원의 돌발 행동이 우습다는 반응이 많았다. 신화 통신사가 이를 보도한 직후 1,200명 이상이 해당 기사를 팔로잉했는데, 중국 누리꾼의 댓글 중에는 ‘마오의 어록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마오의 좌파 이데올로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글들이 있었다. 


 
영국의 ‘친중 외교’, 양날의 검


한편 야오수제(姚樹潔) 노팅엄대 당대중국학원 원장은 지난해 10월 “달콤한 영국의 말을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과 영국의 ‘황금시대’를 논하는 시진핑 주석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화교 경제학자이자 영국 전문가인 야오 원장은 중국의 인터넷 매체인 펑파이(澎湃)에서 네티즌들과 대화를 통해 “영국 정치인들은 원래 (상대에게)말을 달콤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네티즌이 “시 주석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황금시대를 연다고 하는데 얼마나 갈 것인가”라고 묻자 나온 답이다. 또 “영국이 갑자기 중국을 이렇게 환대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영국인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리적이다. 중국의 굴기와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영국은 이를 활용해 국익과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영국 정부는 2007년 4월 중국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수백억 달러를 런던 금융시장에서 대량 투매해,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일으킨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때까지 영국은 중국 금융 전략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시 주석 방문을 계기로 대규모 자금을 영국에 투자하면, 영국 정부는 중국의 자금전략과 수단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현재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특별한 동맹국’과 보조를 제대로 못 맞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특별한 동맹국’과 보조를 맞추고, 국가전략을 바로잡으면 영국의 ‘친중 외교’는 중국의 ‘돈’을 빼먹은 뒤 사그라질 가능성이 크다. 영국이 이렇게 벌어들인 돈과 주요 정보는 미국과 호주, 영국, 캐나다가 공유하며, 중국이 바라는 ‘신형 대국관계’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막는 데 사용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은 정치권, 언론, 학계가 중국의 눈치를 보며 미국과의 관계에서 헛발질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뀌면 국가전략까지 휘청거리는 데 반해 미국과 ‘특별한 동맹국’인 ABC(호주, 영국, 캐나다)는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간에 핵심 국가전략은 유지한다. 앞으로 현실화될 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를 향한 행보에 우리 역시 나아갈 방향성을 명확히 해 올곧은 정책을 펼쳐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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