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관료 전성시대 열리나
국회 입법관료 전성시대 열리나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12.3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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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국회 입법관료 전성시대 열리나 

공직사회 특유의 폐쇄적 집단주의 극복해야하는 과제도

 

 

행정부에서 입법부로 권력이 이동하면서 입법부 소속 공무원, 입법관료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입법 관료들의 업무는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00년대 이전에는 법안 수도 적었을 뿐더러 정부발의 법안이 주요하게 다뤄졌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회내부기 의원발의 법안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입법 관료들의 활약상을 들여다보고 이들에게 당면한 과제를 함께 들여다봤다.

 
 

국회 역할 강화되면서 입법고시 경쟁률 폭등

국회의 힘이 점차 커지고 입법 관료가 각광받으면서 이번 2015년도 제31회 입법고시(15명 선발)에 총 4891명이 지원해 326: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2009년에는 495:1까지 입법고시 경쟁률이 치솟기도 했다. 이에 반해 행정고시의 경쟁률은 다소 하락하는 추세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하면 최근 경쟁률은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경쟁률은 30.7:1이었으며, 2013년 32.4:1, 2012년 33.9:1 등의 양상을 보였다. 입시 외에 행시 등 다른 고시에 합격을 해도 국회를 선택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입법고시가 인기인 것은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관련이 깊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전 입법부는 사실상 허수아비였다. 행정부가 내놓은 법안은 국회에서 별다른 견제장치도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일이 잦았다. 국회에서 대강의 법률 틀만 통과시킨 뒤 정부가 하위법령을 통해 세부사항을 추진하는 식의 입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국회의 견제·감시 기능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각종 법안과 예산안에 국회가 관여하는 정도도 훨씬 더 커졌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90년대와 비교해서도 국회의 힘 자체가 몰라보게 커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의원들이 공무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검토보고서를 잘 써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국회의 현 분위기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회 지원인력에 대한 전문성이 많이 상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로 이전한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국회의 복리후생이 좋게 평가되는 큰 이유는 세종이 아닌 서울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16대 국회 이전만 해도 입법의 주도권은 온전히 정부에 있었다. 11대 국회 당시 정부는 287건의 법안을 냈는데, 이 중 257건이 처리됐다. 반면 의원발의는 204건 중 84건 가결에 그쳤다. 12대 국회(1985 ~ 1988년) 역시 정부발의(168건)의 대부분인 156건이 가결됐다.  국회의 상황이 변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인 17대 국회(2004 ~ 2008년)부터였다. 정부법안 1102건 중 절반 수준인 563건만 처리된 것이다. 의원법안도 갑자기 6387건으로 급증했다. 18대 국회(2008 ~ 2012년)와 19대 국회(2012 ~ 2016년)에서는 이같은 경향이 더 심화됐다.
 

입법고시에 합격하면 국회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국회도서관 등 4대 기관의 실무부서와 각 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한다. 서기관 승진에 걸리는 시간이 행정부처에 비해 3~4년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실질적인 장점 이외에도 입법고시의 경쟁률이 높은 것은 소위 감시받지 않는 기관으로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다는 무형의 장점이 꼽힌다. 이런 특성 때문에 '웰빙 고시'라는 별칭이 붙었다. 행정부는 국회로부터 감사를 받고, 예산과 법안, 정책 전반에 대해 간섭을 받는다. 국회기관도 국정감사를 받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입법활동과 예산심의 활동을 돕는 국회 지원기관에 대해 혹독한 감사를 하지 않는다.


이처럼 국회직은 감시받지 않을 뿐 아니라 지배받지도 않는다. 행정, 사법 기관은 이른바 '상명하복식'의 공직사회 기강에 지배받는다. 고시 출신의 내부 경쟁도 심하고 인사에서 누락될 경우 옷을 벗어야 한다는 압박도 엄존한다. 그러나 국회기관의 경우 최고 수장인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원로 국회의원이 2년 단임으로 맡고 있어 정치 인생의 원만한 마무리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조직을 장악하고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성과를 내야 하는 일반 행정부처의 치열한 분위기와 다르다. 입법고시 출신들은 조직 내에서 요직을 독점하며 우월적인 지위도 보장받는다. 국회 공무원 약 3500명 가운데 의원 보좌인력 2000여명을 제외한 약 1500명의 인력이 국회 기관들에서 일한다. 이 가운데 5급 이상이 약 550명, 이 중 입법고시 출신이 300명 정도다. 국회사무처에 240여명, 나머지 기관에 10~30명씩 배치돼 있다.

 

 

▲국회사무처에서 입법고시에 합격한 ‘2015년도 5급 신규임용자 임명장 수여식’이 열렸다. ⓒ국회사무처

 

퇴직 후 소관 기관으로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입법관료

입법 관료들은 국회를 떠나고 나서도 꾸준하게 활약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회에서 통과된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가능 기관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공직자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체 외에도 법무법인, 회계법인, 시장형 공기업, 안전 감독 및 인허가 규제, 조달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 유관 단체, 학교법인,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에 퇴직 전 업무와 관련이 있으면 취업할 수 없다. 

반면 입법 관료들에게 별도로 적용되는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국회 규칙'은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이 거의 없다. 국회 규칙은 영리 사기업체에 대해서만 재취업을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입법 관료들이 다른 부처 공무원들보다 산하기관 재취업 제한이 엄격하지 않은 것은 30년째 바뀌지 않는 국회 규칙 때문이다. 1983년 제정된 ‘공직자윤리법’은 2001년, 2011년,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법무법인, 회계법인, 시장형 공기업 등 취업 제한 기관의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1983년 함께 만들어진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국회규칙'은 제정 후 한 번도 취업 제한 기관 범위를 확대하지 않았다. 입법 관료들의 재취업이 유일하게 제한되는 영리 사기업체의 기준 또한 ‘자산 100억원 이상, 매출액 300억원 이상인 기업체’로 30년째 동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규칙을 개정해야 하는 국회의원들도 ‘입법 관료’들의 퇴직 후 재취업 특혜 문제를 외면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사무처 등 입법 관료들에 대한 규칙은 국회의장이 운영위원회의 여야 의원들 동의를 얻으면 개정할 수 있다. 한편으로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료조직 비대화 되며 다양한 문제 대두 


여러 가지 이유로 덕분에 젊은 엘리트들이 입법고등고시에 몰리며 입법 관료가 각광받고 있지만, 정작 입법부는 공직사회 특유의 폐쇄적 집단주의에 병들고 있는 징후가 엿보인다. 고시 ‘기수 문화’도 초기 긍정적 효과에서 부정적 현상을 낳으려 한다. 국회사무처와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 조직 중에 예산정책처가 발간 보고서를 놓고 구설에 오른 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처럼 조직이 차츰 비대해지는 만큼 과제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5급 입법고시와 8급 공채시험에서 매해 각각 선발되는 인원이 비슷한 까닭에 입시 출신들이 각 요직을 독점하며 8급 출신들은 승진이 늦다는 불만들이 종종 나오고 있다. 8급 공채 출신의 국회 공무원은 “국회의 힘은 커졌지만 내부 갈등도 함께 존재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외에 국회 공무원조직 역시 견제·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역시 정부와 같은 관료조직인 만큼 복지부동 행태는 늘 존재하며, 이는 곧 조직의 폐쇄성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를 견제하는 곳은 사실상 감사원 한 곳 뿐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입법관료들의 소관기관 재취업 문제가 가장 큰 화두이다. 사법고시 출신 전직 국회 상임위원회 수석전문위원들은 모피아라 불리던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의 산하기관 재취업 못지않게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관피아에 이어 ‘어셈피아’(Assembly+Mafia)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어셈피아'들이 행정부를 견제하는 목적으로 하는 입법부 본연의 역할과 권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했다. 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민·관 유착을 끊겠다며 퇴직 고위 공무원의 재취업 기준을 대폭 높였는데, 정작 그 법을 만든 국회는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행정학과 교수는 수석전문위원들은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에 법적·정책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는데 퇴직 후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됐던 상임위 산하기관 등에 재취업하는 것은 수석전문위원 본연의 임무와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입법 관료 조직이 ‘어셈피아’라는 오명을 씻고 존경받는 관료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의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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