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Story] 패스트 패션을 탐구하다
[Fashion Story] 패스트 패션을 탐구하다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5.12.2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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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패스트 패션을 탐구하다

 

 

 

인스턴트 패션의 두 얼굴…저렴한 가격과 빠른 회전율에 감춰진 환경과 인권 문제


 

 

▲패스트 패션의 영향으로 무분별하게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영화 쇼퍼홀릭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란 패스트푸드(fast food)처럼 유행하는 옷을 저렴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007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패스트 패션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과 빠른 상품 회전율, 저렴한 가격을 강점으로 패션 산업 환경을 변화시켜왔다.




패스트 패션에 주목하다

2007년 이후, 패스트 패션이 패션 산업의 주류 아이템으로 떠오르자 다수의 브랜드가 SPA 브랜드를 선보였다. SPA란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로 계절에 앞서 옷을 만드는 일반적인 패션 회사 방식에서 벗어나 1~2주 단위로 유행을 반영해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을 만들어내는 ‘자가상표부착제 유통방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소비자의 니즈와 유행을 반영해 제품 제작이 가능하므로 의류 업체의 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패션 업체가 옷의 기획·생산·판매에 직접 참여하다 보니 중간 유통 과정이 생략돼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단기간에 공급 가능하다. 



 

▲ SPA 운영 방식은 미국 청바지 회사 갭(Gap)이 최초로 도입한 방식이다 ⓒ wikiwand

 

 


SPA 운영 방식은 미국 청바지 회사 갭(Gap)이 최초로 도입한 방식이다. 196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편집 매장으로 시작한 갭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주축으로 다수 브랜드의 청바지와 레코드 음반 등을 선보였다. 다양한 치수와 색상의 라비이스 청바지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던 갭은 미국 내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며 제품 확대에 속도를 더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패션 시장에 할인 판매가 상설화되자 갭은 동종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됐고 연간 30~40%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갭의 창업자이자 당시 갭의 회장이던 도널드 피셔((Donald Fisher)는 다른 매장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판매 대리점 형태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생산한 기획 제품을 판매하는 SPA 시스템으로 갭의 운영 방식을 재단장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당시 갭은 기획과 생산, 유통 등을 모두 관리하며 다양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운영 방식의 변화 후, 80년대 중반부터 갭은 매출 수직 상승이라는 결과를 얻었고 1987년에 영국 런던, 1993년 프랑스 파리, 1995년 일본 다마가와에 매장을 오픈하며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 했다. 피셔 회장은 86년 결산 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새로운 소매업태인 SPA를 개발했다. SPA란 창조성·디자인성이 풍부한 상품을 개발해 리스크를 떠안아 생산하고 가격 결정권을 가지며 매장에서는 제품과 코디네이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진 판매원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SPA에 대해 언급했다.  


일본의 SPA 브랜드 유니클로(UNIQLO)는 갭의 SPA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해 출시된 의류 브랜드로 ‘Made For All(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내걸고 운영되고 있다. 유니클로는 1984년 5월에 남성복 회사 ‘Ogori shoji’가 히로시마시 나카쿠에 ‘Unique clothing warehouse’라는 이름의 유니섹스 캐주얼의류매장을 오픈하며 시작됐다. 당시 Unique clothing warehouse는 Unique clothing의 줄임말인 유니클로로 불렸고 현재에는 유니클로라는 명칭이 공식 브랜드 네임으로 사용되고 있다. 1991년 10월, Ogori shoji는 Fast retailing으로 회사명을 변경한 후, 1994년 4월까지 일본 전역에 100여 개의 유니클로 매장을 개점했다. 당시 유니클로는 자체 제조공장 없이 중국 공장에서 아웃소싱한 저렴한 가격의 의류를 소비자에게 제공했다. 현재는 70여 곳의 협력사에서 제품을 공급받아 구매자에게 선보이고 있다. 유니클로가 SPA 의류를 처음 선보일 당시, 일본은 심각한 경기 불황기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유니클로가 선보인 저렴한 가격의 질 좋은 캐쥬얼 제품들은 고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1998년 10월, 도쿄 번화가인 하라주쿠에 최초로 신식 유니클로 매장이 개점됐고 이후 신식 매장은 일본 도시 전역으로 확대됐다. 유니클로는 2001년에 일본 500여 개의 매장 판매총액과 수익총액에서 신기록을 기록하였고,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했다. 유니클로는 회사를 분할해 중국에 Fast Retailing(Jiangsu) Apparel사를 설립하였고 2002년에는 상하이에 첫 유니클로 해외매장을 오픈, 영국 런던에 4개의 매장 개점을 했다. 이후 2005년에는 뉴욕과 홍콩 등에 매장을 열었으며, 롯데쇼핑과의 합작투자를 통해 한국에도 매장을 오픈했다. 유니클로는 유명인 또는 경쟁력 있는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도 했다. 2014년 4월, 퍼렐 윌리엄스 ‘i am OTHER’라는 이름으로 유니클로 컬렉션을 발표했다. 또한, 2009년과 2011년, 2015년에는 ‘질 샌더X유니클로’라는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2015 F/W 시즌에는 르메르와 카린 로이펠트 등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유니클로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기존의 강점뿐만 아니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트렌디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국내 SPA 시장은 2001년에 국내에 입성한 스페인 브랜드 망고(MANGO)를 시작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마진 정책으로 백화점 중심의 유통 환경이 부각되고 있어서 SPA 브랜드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이 지리적으로 아시아 거점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SPA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2005년에 일본의 유니클로와 2008년 스페인의 자라(ZARA), 2010년 스웨덴의 H&M 등 다양한 국가의 SPA 브랜드들이 국내에 속속 진출했다. 국내에 진출한 SPA 브랜드들은 싼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뒤엎고 저렴한 가격임에도 좋은 품질의 의류를 선보이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실제로 2013년 기준 유니클로와 자라, H&M 등 이른바 ‘글로벌 빅3 SPA 브랜드’의 국내 매출 합계는 1조 2,45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5%나 성장했고, 2008년의 1,069억 원 기록과 비교하면 무려 12배 가까이 성장했다. 패션 시장에 SPA 바람이 불면서 국내 SPA 브랜드도 등장했다. 국내 패션 업체 중, 가장 먼저 SPA 브랜드를 선보인 이랜드는 2009년 스파오를 시작으로 미쏘와 후아유, 로엠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제일모직은 2012년 2월 에잇세컨즈를 론칭 했다. 




패스트 패션의 어두운 이면

낡고 해져서 의류를 폐기시키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멀쩡한 옷들이 버려지고 있다. 한 패션 관계자는 다수의 사람이 깨끗한 옷을 버리는 이유로 패션 상품의 제작 기간이 긴 점을 꼽았다. 일반적으로 패션 업체에서 의류를 기획하고 디자인해 제조, 유통, 출시하기까지 약 6개월에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와 유행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6개월 전 유행에 맞춰 만들어진 의류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어렵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트렌드가 즉각 반영된 저렴한 가격의 패스트 패션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갈수록 문제점도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의류를 만들고 관리·폐기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쓰레기양과 탄소 배출량이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패션 사회적 기업인 오르그닷은 세계적으로 한 해 한 명이 버리는 옷의 무게가 평균 30kg에 달한다고 밝혔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의류 폐기물 배출량은 지난 2008년 5만 4,677t에서 2010년 6만 4,057t으로 약 9,380t이 늘어났다. 이는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최근 추세에 맞게 전체적인 생활폐기물이 줄어드는 것과는 역행하는 결과로 생활폐기물 중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2년 동안 3.54%에서 4.29%로 증가했다. 환경보호론자들은 90년대 이후 엘니뇨와 라니냐 등 기상이변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의류 폐기물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다수의 패션 기업에서는 윤리적 가치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의류 제작 공정을 늘리고 있으며, 오가닉 상품 인증인 에콜로지 인증마크 표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친환경 의류 제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H&M을 꼽을 수 있다. H&M은 지난해 4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발표하고 14일에 국내에서 ‘컨셔스 익스쿨루시브 라인’을 런칭했다. H&M에서 발표한 지속 가능성 보고서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4월에 발표되고 있는 보고서로 의류 소재를 생산·가공할 때, 사용되는 물과 염료, 살충제 등의 양이 적혀 있다. 또한, 매년 사용한 염료와 살충제 등의 양과 해당 연도에 사용한 양을 비교해 업체에서 얼마나 환경에 안 좋은 재료를 줄여나가고 있는지를 담고 있다. H&M은 지속 가능성 보고서를 토대로 2009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라인은 유기농 면과 페트병 등 재활용 원단을 사용해 제작된 트렌디한 의상들로 구성돼 있다. 이 외에도 H&M은 2013년부터 전 세계 매장에서 의류 수거 및 재활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H&M에 따르면 이 캠페인을 통해 약 2년 동안 모은 옷이 1만 3,000여t에 달하며, 수거된 옷들의 95%가 재활용되거나 중고시장에 판매됐고 이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기부되고 있다.


유니클로도 2006년부터 ‘전 상품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다. 유니클로는 고객들이 매장으로 가져오는 자사 의류들을 모아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캠프 등 옷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유니클로는 지난 2014년 9월 말까지 약 53개국에 1,000만 여벌 이상의 옷을 전달했다. 2014년부터 국내 유니클로에서도 환경의 날인 6월 5일에 사용하지 않는 유니클로 옷을 매장으로 가져온 고객들을 대상으로 청바지 밑단 수선과 수선 후 남은 천으로 제작한 커피 컵 홀더 등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짧아진 옷의 순환 주기는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 wikiwand

 

 

 

패스트 패션은 노동자 착취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짧아진 옷의 순환 주기만큼 제 3세계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저임금을 받으며 고통받고 있다. 의류 산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생산비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패스트 패션이 늘어나면서 재단사와 수선업자의 설 자리는 좁아졌지만, 반대로 의류공장의 노동자 수는 늘어났다. 하지만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은 억제되고 있으며, 작업환경의 열악함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의류 산업의 노동착취 현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에 있는 의류공장 건물 붕괴사고를 들 수 있다. 이 사고로 1,13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로, 이들은 월 4만 원이 약간 넘는 임금을 받으면서, 비좁고 위험한 건물에서 H&M·갭·베네통·타미힐피거 등에 납품할 제품을 제작했다. 사건 발생 전, 벽에 금이 가는 등 사고 조짐이 있었지만, 공장주는 선적날짜를 맞추기 위해 작업을 강행했고 이는 대형사고 발생을 초래했다. 


패스트 패션으로 노동착취와 환경오염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슬로우 패션’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슬로우 패션이란 상품 뒤에 가려진 노동자의 권리와 생태 환경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윤리적 패션’을 추구하는 기업과 슬로우 패션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향후 패션 시장에 슬로우 패션 바람이 거세게 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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