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惡人)Ⅱ] 역사 속 악인의 재조명
[악인(惡人)Ⅱ] 역사 속 악인의 재조명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5.11.09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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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누구나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균형 잡힌 역사의식도 필요


 

 

역사 속 악인을 꼽으라면 우리는 흔히 몇몇 인물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대다수 사람이 기억하는 악인과 이들이 득세했던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악인들은 혼란의 시대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달과 탐욕 채우기에 나라의 안위는 개의치 않았으며 자신들의 악행으로 나라와 수많은 사람을 불행으로 밀어 넣곤 했다. 이처럼 이들의 발자취를 좇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조명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다수의 역사학자는 밝힌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악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승자가 기록한 역사의 희생자일 수도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탐욕과 배신으로 무장된 희대의 악인일 수도 있다. 명백한 악인이라고 판정할 수도 있고,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동정할 수도 있다. 여러 인물의 끊임없는 충돌로 기록된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궁예는 폭군일까 정복군주일까

수년 전 후삼국 시대 폭군으로 알려진 태봉국 궁예왕이 실제로는 정복 군주였다는 사실을 재조명하기 위한 ‘태봉 학술세미나’가 개최된 바 있다. 당시 세미나에서는 전남 선각대사비문의 재해석을 통해 ‘나주 경략’의 주역은 왕건이 아닌 태봉국 궁예라는 사실과 함께 궁예의 선종 승려 우대정책 등이 새롭게 제기되며 태봉국과 궁예가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됐다. 덧붙여 역사 속에서 무고한 사람을 마구 살해한 ‘미치광이 폭군’으로 그려진 궁예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아 국사 교과서에 반영하기 위한 토론도 함께 이루어졌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는 진부한 이야기처럼 태조 왕건의 왕조를 섬겼던 사가들이 그려놓은 궁예의 이미지는 최근의 만화 속 악인 캐릭터에 가깝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궁예가 태생적 악인으로 묘사된다. 이에 따르면 궁예는 신라왕의 서자로 태어날 때부터 이빨이 있는데다 단옷날에 태어나 흉측한 징조들을 나타내니 주술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권유로 왕실에서 그를 죽이려 했다. 우연히 살아남은 궁예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애꾸눈이 되고 만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괴팍한 버릇과 품행이 단정치 못해 유모에게서도 버림받고 승려가 되지만, 계율을 지키지 못해 도적 양길의 부하가 되어 신라 말기의 난세를 틈타 호족으로 몸을 일으킨다. 

901년에 스스로 후고구려의 왕임을 선포하고 나서 부석사에 걸려 있는 신라왕의 초상에 칼부림하고 신라 귀순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 신라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을 보인다.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하고 불교의 이상적 군주인 전륜성왕인 것처럼 보배로운 금색 왕관을 쓰고 요망한 말만 담겨 있는 경전 20여 권을 짓는데, 그의 불교론에 반대하는 승려 석총을 때려죽이기까지 한다.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수가 되니 이를 더 이상 차마 보지 못한 왕건은 918년에 어쩔 수 없이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그를 제거하고 스스로 임금이 된다. 여기까지가 삼국사기 ‘궁예전’을 간추린 내용이며 이렇게 왕건 쿠데타의 ‘절대적 정당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위인과 독재자를 넘나드는 나폴레옹의 업적

워털루 전투는 1815년 6월 엘바 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 1세가 이끈 프랑스군이 영국, 프로이센 연합군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Waterloo)에서 벌인 전투로, 프랑스군이 패배하여 나폴레옹 1세의 지배가 끝나게 되었다. 이 전투가 벌어진 지 200년이나 지났지만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 시민 중 그를 위인으로 치켜세우며 업적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독재자로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나폴레옹을 위인으로 보는 이들은 그가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고 사법체계를 정비하는 등 공로가 많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그의 권력 행사가 지나쳤다고 지적한다. 세계적으로도 대체로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라이벌 국가 영국에도 그를 영웅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좀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다. 프랑스에 영광을 가져다준 주인공인 동시에 영광에 대한 욕망으로 수많은 희생을 치르게 한 장본인이라는 식이다. 이 때문인지 광장과 거리 이름에 사람 이름을 붙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파리에 ‘나폴레옹대로’나 ‘나폴레옹 궁’은 없다. 카르티에라탱 지역에 넓지 않은 ‘보나파르트가(街)’가 있을 뿐이다. 정치인 사이에서도 나폴레옹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왜곡하고 폭정에 나섰다고 비판한다. 반면 나폴레옹 기념품 수집가로 유명한 도미니크 드 빌팽 전 총리는 관련 서적을 여러 권 펴내며 나폴레옹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악인은 존재했다. 하지만 누구나 역사 속 악인을 명백한 악인이라고 판정할 수도 있고,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동정할 수도 있다. 여러 인물의 끊임없는 충돌로 기록된 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없이 역사를 되짚어 본다는 것은 바라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는 반쪽짜리 역사일 것이다. 숨기려 했던 역사의 악인들을 조명하며,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뛰어넘는 것이 올바른 역사의 완성을 꾀하는 길이라고 대다수 역사학자가 입을 모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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