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Ⅲ] 젠트리피케이션, 돌파구를 찾다
[Special Report Ⅲ] 젠트리피케이션, 돌파구를 찾다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10.1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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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위기의 마을경제, 힘을 함께 모아 극복하려는 움직임 시작

 

세입자들, ‘임대료 난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은 외부인이 진입해 건축물을 카페나 음식점으로 용도변경 하면서 시작된다. 외부인이 주거 목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상업적 목적으로 들어와 주거지를 상업화하는 결과를 낳는 용도변경은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불러오는 부정적 영향이 점차 커지자, 전국의 지역자치단체들은 물론, 해당 지역민들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시작한 지자체


소위 '핫(hot)'한 동네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낙후된 도시환경이 개선되면서 임대료나 집값 등이 상승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가면서 최근 사회문제로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서울 홍대, 서촌, 삼청동 등에 이어 다음 타깃으로 지목되고 있는 지역이 바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다. 지난 2012년부터 사회혁신단체, 예술가 등이 둥지를 트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지역으로, 서울숲길 주택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40여 곳의 소셜벤처·사회적기업·비영리단체들이 동네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최근 도시재생 시범지구로 선정된 것도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줄이고자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 일명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지난 6월 25일 입법예고했다. 지자체가 직접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시도이며, 조례의 골자는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과 주민협의체 구성이다. 먼저 관할구역 안에 특정 지역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하고 지속가능발전구역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해당되는 구역에선 ‘자율상생협약(건물주와 임차인이 자율적으로 임대료 안정화를 위한 협약을 진행하는 것)’의 체결을 유도하고, 지역에 새로 유입되는 업체 및 업소의 조정 등도 이뤄진다.
 

  주민협의체는 이 계획을 주도적으로 실행할 주민 자치 조직이다. 건물주·임차인·거주자는 물론, 사회적 기업가·문화예술인 등 지역 활동가도 참여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번 조례는 (지역) 문화를 만든 그룹과 기존 주민이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우리의 실험이 전국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제동을 거는 단초가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조례는 지난 8월 초 조례규칙심의회에 상정됐고, 이번달부터 공포된다. 사회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나섰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세입자와 건물주 머리 맞대고 해결책 모색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금천교시장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이곳엔 100여 개의 점포가 300여m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2012년 음식문화거리로 지정되고 서촌이 뜨면서 덩달아 먹자골목으로 유명해졌다. 이곳 역시 임대료 상승을 막을 순 없었다. 3.3㎡ 기준 월평균 임대료가 2009년 7만~8만원 정도였으나 2013년엔 15만원까지 뛰었다. 이곳에 있던 원조 맛집 중 일부는 시장을 떠났고 단골손님이 줄기도 했다.
 

  이곳의 세입자와 건물주는 다른 지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2014년 8월 상인회를 결성했다. 임대료 폭등현상을 겪었던 북촌·삼청동의 사정도 관찰했다. 건물 두 곳을 소유한 한 건물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 사례를 보면서 임대료 몇 푼 올리고 전통과 우정을 잃을 순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력은 지난 4월 ‘상생 협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모든 세입자 240여 명과 건물주 40여 명이 참여해 ‘지나친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자’는 협약을 체결했다. 구청도 올 초 이곳을 골목형 시장 활성화 사업 대상으로 지정하며 주민들의 상생 노력을 지원했다. 협약 체결 후 임대료 상승세가 멈췄다. 상인회장은 “이달 초 계약 만료된 업소에서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기로 했다”며 “건물주의 70%가 협약에 참여하며 임대료 상승이 주춤해졌다”고 말했다.상인들은 임대료를 안정시킨 뒤 최근엔 지역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상호를 우리말로 하자’는 의견에 따라 외래어 간판을 한글로 바꿨다. 이에 대해 김의영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장은 “생활 이슈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문제해결형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라며 “기존 정치권이 못하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며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뉴욕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동산투자 협동조합(Real Estate Investment Cooperative)이 생겼다. 몇몇 뉴요커가 SNS상에서 상가 임대료 문제를 논의하다 ‘우리가 해결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은 곧 소상공인·예술가들이 활용하기 적합한 시설을 매입하고 임대료 수익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이러한 적극적 대응 사례 외에도 시민들 주도로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을 만들어 토지를 매입한 후 임대하면서 투기시장에서 배제하는 방식도 있다. 영국에서는 로컬리즘 법(Localism Acts)에 따라 지역 자산화를 위한 우선 구매권, 개발권 등을 시민에게 주고 동네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위기를 조명하는 이유는 사회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모양을 그려보고 지역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을 마련하는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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