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관계의 늪에서 탈출을 꾀하는 사람들
[이슈메이커] 관계의 늪에서 탈출을 꾀하는 사람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11.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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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관계의 늪에서 탈출을 꾀하는 사람들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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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태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관태기란 ‘관계 + 권태기’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회의적인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이러한 과정에 놓인 이들을 ‘관태족’이라고 하는데,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이 같은 관태족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의 소멸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하는 관태기에 대해 알아봤다.

 

양심적 관계 거부?

서울에서 은행원으로 살아가는 직장인 A씨. 이른 출근과 회의, 고객 응대, 업무 종료 후 쏟아지는 잔업, 그리고 늦은 저녁과 회식.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하루하루에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A씨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업무 외의 일들로 엮이는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 자신의 에너지가 부족한 건지, 동료들과의 궁합이 안 맞는 건지 업무 후에 벌어지는 ‘관계 형성’에 큰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10여년. 많은 변화의 노력과 방법을 강구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선택한 것은 관계의 ‘단절’. 양심적 병역 거부가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듯이 ‘양심적 회식 거부’, ‘양심적 술잔 거부’, ‘양심적 주말 상납 거부’를 실천하고 나섰다. 수년간 따라다녔던 이명(耳鳴)이 사라졌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이른바 ‘자발적 아싸’(자발적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후에 생긴 변화들이다.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예비 취준생 B군. 유머러스하고 춤, 노래에 능숙해 인기가 많아 항상 친구들에 둘러 쌓여 웃음을 잃지 않는다. 수시로 울리는 ‘카톡’ 소리, 그리고 친구들의 호출 전화. 자신이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 된 듯한 기분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하지만 본격적인 진로 고민과 숨기고 싶은 연애 고민을 털어놓고자 ‘나의 진정한 벗이 누구일까’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딱히 떠오르는 친구가 없었다. 문득 자신이 쌓아온 관계에 물음표를 달게 된다.

 

최근 나이와 성별, 직군, 직위에 관계없이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관태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관태기에 놓인 대다수의 이들은 대부분 ‘자발적 아싸’라는 탈출구를 찾는다. IT와 SNS의 발달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자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여가에 대한 여건이 마련돼 있기도 하고, 여유 없는 삶의 패턴에 심신이 지쳐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 삶의 질을 중요시 하는 ‘욜로’나 ‘미코노미’, ‘워라밸’, ‘소확행’, ‘궁셔리’ 등과 같은 사회적 현상과 풍토가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의 주된 요인이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관태기의 확산엔 20대의 가치관 변화도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개인보다 단체의 이익이 중시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단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받기를 바라며, 개인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현 브레인트레이닝 심리상담센터 압구정점 소장은 한 칼럼을 통해 “‘아싸’(아웃사이더)에 반대되는 말은 ‘인싸’(인사이더)다. 이들은 행사나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주로 인간관계가 좋고 외향적인 성향에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잘 안다.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꼭 ‘좋은 사람’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사람들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말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무조건적 이탈보다는 상황에 맞는 대처 필요

관태기에 따른 자발적 아싸가 늘어나는 가운데 간혹 잘못된 시각으로 자발적 아싸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단체 생활의 가장 기본인 시간 약속이나 스케쥴 공유, 공동체 생활 태도 등이 하나의 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너무 중시하다보면 타인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거나 공동체 활동의 능률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나의 시간이 중요하면 남의 시간도 중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명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도 적절히 행할 줄 알아야 한다. 의견을 모으거나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고 결정된 방향성에 협조를 해야만 마찰 없이 공동체가 잘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필요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무조건적인 이탈과 반대 등은 가장 주의해야할 요수 중 하나다.

 

하나현 소장은 [소심해서 좋다](저자 왕고래)라는 책에서 ‘성격이란 공통된 성질끼리 묶어 경계를 나눈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성격이 개인의 모든 모습을 대변할 수 없으며, 이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친구들과 놀 때, 회사에 있을 때, 낯선 병원에 갈 때, 동생과 싸울 때, 데이트를 할 때, 어떤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홀로 샤워를 할 때,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닌다. 고로 더 좋고 나쁜 성격은 없다. 그 안의 여러 요소들이 상황에 따라 달리 발현될 뿐이다. 내 장점이 누군가에겐 단점이 될 수 있고, 이 장면에서의 부족한 면이 다른 장면에서는 필요한 면이 될 수 있다’는 구절을 소개하며 “천 명의 사람에게는 천 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때 우리의 삶도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다”고 전했다.

 

관태기를 겪는 이유도, 겪는 과정도. 그리고 자발적 아싸가 되는 이유도 과정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부정 혹은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오류의 주의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때문에 공동체와 자발적 아싸들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유연한 공동체 문화와 소통 방식을 강구하는 등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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