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며 분노하는 청년들
[이슈메이커]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며 분노하는 청년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11.1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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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공정’과 ‘정의’를 요구하며 분노하는 청년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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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영국 극작가 존 오즈번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런던의 로열코트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성세대로부터 버림받은 전후 젊은 세대의 고뇌와 분노를 담은 연극이었다.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 이 작품은 ‘앵그리 영 맨(Angry Young Man)’을 탄생시켰다.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 10대 환경운동가

영국 콜린스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기후파업(climate strike)’을 선정했다. 기후파업은 ‘기후’에 파업과 시위라는 뜻의 ‘스트라이크(strike)’를 붙여 만든 신조어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 결석하거나 출근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UN) 기후변화 회의에서 처음 등장했다가 이후 사어(死語)가 됐지만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이를 다시 살려내 국제적인 운동으로 만들었다.

 

올해 노벨평화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툰베리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학교 파업’이라는 팻말을 들고 지난해 8월부터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정부와 기성세대에 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여 주목받았다. 지난 9월에는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당신들이 감히 어떻게(how dare you)”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격정어린 연설을 쏟아냈다. 그는 “저는 여기가 아닌 학교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내 어린 시절과 꿈을 앗아갔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실망시켰습니다.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각국 정상들에게 일갈했다.

 

툰베리의 ‘기후파업’ 외침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 약 139개국에서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이 됐다. 그리고 그 주축은 툰베리와 비슷한 또래의 미래 세대들이다. 더 이상 그들은 기성세대의 말을 믿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스마트 기기를 쥔 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연대하기까지 한다. 툰베리의 활동이 지구 반대편 한국에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SNS의 발달 덕분이다. 시위를 계획해 광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현장의 모습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중계’ 기능을 활용해 퍼뜨리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앵그리 영 맨’들은 더 빠르게 증가한다.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파업’ 외침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 약 139개국에서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Anders Hellberg/Wikimedia Commons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파업’ 외침은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 약 139개국에서 참여하는 대규모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Anders Hellberg/Wikimedia Commons

 

‘반환둥이 세대’의 공포, 민주화 요구하는 홍콩

반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홍콩시위의 주축 역시 ‘밀레니얼 세대’이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태어나 흔히 ‘반환둥이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시위를 주도해서 이끌고 있다. 개학일인 지난 9월2일에는 홍콩 중·고교 400여 곳 가운데 230여 곳의 학생 1만여 명이 ‘미래가 없는데 수업이 무슨 필요인가’라는 구호를 내걸고 수업 거부에 참여했다.

 

이처럼 2014년 우산혁명으로 시작된 홍콩 민주화의 열기는 올해 6월 ‘범죄인 인도 법안 개정안’ 문제로 다시 불이 붙었다. 광범위한 시민 저항으로 시작해 이제는 행정장관 직선제와 더 나아가 홍콩의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단순히 중국 본토의 사법체제로 넘겨질 위협에 반대하기 위해서 이토록 격렬한 시위를 펼친다고 생각한다면 사태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영국 가디언은 “홍콩은 권리와 자유의 도시인데 이런 정체성이 끊임없이 위협받게 되자 시위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 이와 같이 홍콩 정부에 대항하는 주도 세력인 청년들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며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중국이 영국과 반환 협약에 명시한 2047년까지 자치권 보장 약속에 반해 끊임없이 자치권을 침해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어 사회주의 체제로 변한 홍콩에서 자유와 권리가 말살된 중국인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반년 가까이 이어지며 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불고 있는 홍콩시위의 주축은 1997년 이후 태어난 ‘반환둥이 세대’이다. ⓒStudio Incendo/Flickr
반년 가까이 이어지며 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불고 있는 홍콩시위의 주축은 1997년 이후 태어난 ‘반환둥이 세대’이다. ⓒStudio Incendo/Flickr

 

이로 인해 현재 홍콩의 청년 세대는 그 누구보다 중국에 반감이 강하고 ‘홍콩인 정체성’이 강하다. 실제 2017년 조사에서 홍콩의 18~29세 인구 중 93.7%가 자신을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을 맡고 있는 조슈아 웡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시위대가 중점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유직선제, 우리의 직접 정부 인사를 선출하는 것이다”라며 “우리는 30년 전부터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자유선거제를 얻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고 직선제 쟁취를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동시다발적 ‘반정부 시위’ 벌어지는 지구촌

분노한 청년들의 반란은 남미와 중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칠레에서는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고교생과 대학생의 시위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얼핏 작아 보일 수 있는 30페소(약 50원)를 올렸을 뿐이지만 수십 년간 누적된 고물가와 생활고, 빈부격차 등에 대한 불만이 이를 계기로 폭발하며 무임승차를 하거나 지하철 역사의 회전문을 파손하고 차량의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등 저항운동을 벌어졌다. 지난 10월에는 칠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120만 명의 시민이 참가한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칠레는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고교생과 대학생의 시위가 장기간 지속되며 각종 국제회의가 취소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Carlos Figueroa/Wikimedia Commons
칠레는 수도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 인상에 반발한 고교생과 대학생의 시위가 장기간 지속되며 각종 국제회의가 취소되는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Carlos Figueroa/Wikimedia Commons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와 야간통행금지를 선포하기도 했지만 방화와 상점 약탈은 물론 사망자도 다수 발생하자 결국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5)의 개최 취소 결정을 내리며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 등 각종 수습책을 제시한 상태다.

 

연료보조금 중단으로 시위와 촉발되어 정부 일부 기능을 수도 키토에서 과야킬로 임시 이전한 에콰도르와 세금 인상과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리며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하야한 볼리비아, ‘왓츠앱 혁명’으로 불리며 조세저항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 부정부패와 실업난 등 정부의 무능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며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가 사퇴한 이후에도 수개월째 시위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이라크까지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은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층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작금의 시위를 관통하는 이유로 ‘경제적 불평등’을 첫 손에 꼽고 있다. 교육 수준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높음에도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년을 맞이해 경제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만의 특징을 통해서도 ‘앵그리 영 맨’의 확장을 분석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위대가 신체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위해 거리로 나선다”며 “주변 사람들 모두가 시위에 참여할 때 연대는 어느새 사람들이 따라야 할 유행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또래의 평판과 대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 세대의 특징과 연결된다.

 

 

국내에서도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이 ‘공정’과 ‘정의’에 대해 요구하며 촛불을 들기도 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국내에서도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이 ‘공정’과 ‘정의’에 대해 요구하며 촛불을 들기도 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SNS 통한 연대와 정보력으로 빠르게 확산

‘디지털 원주민’으로 불릴 만큼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기 때문에 비밀 메신저로 소통하며 공권력의 정보망보다 한발 앞서 자유의 외침을 전 세계에 타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청년 주도의 시위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요인으로 꼽힌다.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는 “과거에는 시위를 조직하는 핵심 세력이 존재해 이들을 검거하면 시위가 멈췄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소셜 미디어를 매개로 수평 연대하는 특징이 있어 각국 정부가 리더 없는 시위를 가라앉히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기존의 질서에 과감히 ‘물음표’를 찍고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 세대들의 분노에는 대체로 사라진 ‘공정’과 ‘정의’에 대한 요구로 귀결된다. 출발점은 모두 제각각일지 몰라도 핵심에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정치 엘리트를 향한 분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모두 특정 패턴이 있다”며 “정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소수 정치계급이 부를 독차지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분노한 것이다”고 진단했다. 에리카 체노웨스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세계경기 둔화와 빈부격차 심화, 실업률 상승으로 좌절하고 분노한 젊은 세대가 민주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정부를 변화시킬 수단은 거리 시위가 유일하다고 믿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내에서도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이 촛불은 든 모습을 통해 목도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조국 전 장관은 사임 발표문에서 “상처받은 젊은이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최근에는 서울 인헌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일부 교사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했다고 주장하며 ‘공정한 교육’을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학교 안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점차 커져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서 ‘앵그리 영 맨’의 분노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는 지금, 기성세대와 기득권은 이들의 불만을 달랠 수 있는 개혁에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청춘이 분노하는 시대는 역사에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지, 지구촌과 국내 사회 지형에 어떤 구조적 변혁을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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