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 속 공포정치를 통해 전망한 북한의 최후
세계 역사 속 공포정치를 통해 전망한 북한의 최후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5.07.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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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세계 역사 속 공포정치를 통해 전망한 북한의 최후


김정은의 말로를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바라보다

 

 

 

 

지난 4월 30일, 북한 군 서열 2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불경죄로 숙청을 당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탔다. 국정원의 현안보고에 따르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평양 부근 사격장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됐다. 현영철의 숙청사유로는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출, 김정은 지시 수차례 불이행, 태만과 더불어 김정은이 주재한 훈련일꾼대회에서 조는 등 불충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숙청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고사총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12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이후 북한에서는 고위 간부와 주민들에 대한 처형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국정원은 북한 김정은이 권력을 집권한 후 2012년 3명, 2013년 30여명, 2014년 31명, 2015년 현재 8명(일반 주민 포함 시 15명)이 처형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집권 초기 4년간 10여명을 처형한 것과 비교하면 7배나 많은 숫자다. 국정원은 지난 5월 13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정은 집권 후 총 70여명이 총살당했고, 장성택, 이영호와 같은 최고위급 간부는 물론이고 중앙당 과장이나 지방당 비서 등 중간 간부들까지 처형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제1비서는 2012년 3월 김정일 사망 추도 기간에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처음으로 처형했다. 이후 아버지 시절 군부 1인자였던 리영호 총참모장과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차례로 처형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영구차를 호위했던 운구 7인방 중 김정은 집권 3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건재한 인물은 2명에 불과하다.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자살했고,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과 김정각 전 총정치국 제1부국장은 2선으로 물러났다. 최태복, 김기남 당 비서만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김 제1비서는 지난 3월, 은하수관현악단 관계자 등 예술인들도 풍기 문란 등의 혐의로 처형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반당·반혁명 종파 행위나 간첩 같은 중죄인뿐 아니라 김정은 지시와 정책 추진에 대한 이견 제시나 불만 토로, 심지어 비리·여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처형이 남발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권부 실력자들도 하루아침에 처단하는 김 제1비서의 행동은 자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분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정은이 공포통치에 의존하는 건 젊고 과단성이 있다는 것을 지나치게 과시하면서 경험이 부족해 정치적 계산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또한,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김정일은 장기간의 체제 구축 과정을 거쳤지만 김정은은 단기간에 대규모 세력 교체를 진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북 체제의 경직성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견장통치와 서열 경쟁으로 연장되는 공포정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북한 내 권력 장악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숙청’과 더불어 ‘견장통치’와 ‘서열 경쟁’을 진행하고 있다. 군부 고위급의 계급장을 변경하는 ‘견장통치’는 김정은 체제 들어 두드러졌다. 현영철 부장은 김정은 통치 기간인 지난 3년간 차수와 대장, 상장, 대장을 오갔다. 김 제1비서의 농구교사 출신으로 알려진 최부일 인민보안부장도 별 넷에서 별 하나로 떨어지는 큰 폭의 부침을 겪었다. 소니엔터테인먼트 해킹 사건의 배후로 미국이 지목한 김영철 인민군 정찰총국장도 상장이었다가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2012년 2월 대장에서 같은 해 11월 중장, 2013년 2월에 다시 대장으로 복귀되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 인민무력부장인 김일철과 김영춘이 각각 9년과 3년씩 일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서열 경쟁’ 역시 김 제1비서가 사용하는 통치술 중 하나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2014년부터 세 차례나 서열이 바뀌었다. 지난달 황 총정치국장이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르면서 최 비서를 앞질렀다. 장성택 처형 이후 자신의 유일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권부 2인자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김 제1비서의 계략으로 파악된다. 숙청과 견장통치, 서열 경쟁으로 구성된 김 제1비서의 공포정치는 그를 둘러싼 결사옹호의 충성심으로 무장한 호위무사 당과 군부의 실세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까지 불안감과 당혹스러움을 면치 못하게 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정치모습을 두고 인권문제와 공포정치를 운운하는 것에 대해 용납 못할 정치적 도발이라며 인식공격성 비방과 중상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5월 22일 ‘민족의 재앙거리, 북남 관계개선의 암덩어리’라는 제목의 글에서 ‘괴뢰 집권자가 그 누구의 인권 문제를 운운하며 공포정치니 뭐니 하고 악담을 늘어놓는 것은 천추에 용납 못 할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SLBM 발사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높이면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의 개성공단 방문을 갑자기 불허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최근 숙청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강한 압력을 행사하는 까닭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는 체제 유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은 “70여명이 넘는 실세들의 무차별 처형으로 이미 북한사회는 고위간부부터 주민에 이르기까지 직위를 불문하고 피의 숙청에 따른 공포감과 함께 이반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단동 등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의 탈북 주민 색출 검거 경계병들의 경계수위도 도를 더하면서 예전에 없던 첨단 장비들까지 설치하고 전했다. 지금 북한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공포정치(Reign of Terror)라는 단어를 처음 등장시켰던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비슷하다.

 

과거의 공포정치

로베스피에르는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 시민 혁명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과격했던 국민 공회를 주도한 인물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진행됐던 루이 16세의 처형은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프랑스에 맞서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에 프랑스 정부에서 징집령을 발휘하자 방데 자빙을 중심으로 반정부 운동이 벌어졌다. 또한, 혁명정부에서 내놓은 경제대책의 실패로 경제난이 심화되며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졌다. 그러는 와중에 혁명군을 앞세워 값진 승리를 따내 온 ‘혁명영웅’ 뒤무리에까지 적국에 항복하고 망명해 버리자 프랑스는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다. 이에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혁명은 민중이 왕이나 귀족들 없이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유에는 미덕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는 미덕 없이는 자멸적인 혼란만 빚어질 뿐이다”라며 “공포를 통해 그들의 방종을 단속하고 사랑의 매로써 그들에게 미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과 함께 프랑스에는 공포의 바람이 불었다.
 

1793년 6월, 자코뱅의 사주를 받은 파리 코뮌의 노동자들이 국민공회에 난입했다. 그들은 지롱드파 의원들을 반혁명 분자라며 끌어내고, 자코뱅 일색의 공안위원회는 즉석에서 지롱드파 29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막이 오른 공포정치는 1년 사이에 1만 7천 명을 단두대로 보냈고, 지방 반란 진압 과정에서 따로 3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 지방에서의 ‘반혁명파 박멸’ 과정은 사람들을 수백 명씩 구덩이에 몰아넣고는 대포알 세례를 퍼부으며 잔인한 광경을 연출했다. 반정부 운동의 중심이었던 방데가 일시적으로 진압되었을 때에는 한꺼번에 25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손꼽히는 라부아지에, 낭만주의 시의 선구자인 셰니에, 유명한 천문학자였고 혁명 초기에 국민의회 의장을 지냈던 바이이도 단두대의 제물이 되었다. 하지만 공포정치의 끝은 스스로의 파멸로 다가왔다.
 

1794년 7월 27일에 열린 국민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인 생쥐스트가 아직 남아 있는 반대파 숙청의 연설물을 읽는 와중에, 흥분한 탈리앵에게 폭력을 당했다. 이어서 비요 바렌이 역시 살기등등한 얼굴로 단상으로 뛰어올라 더 이상 동료들의 숙청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소리쳤다. 당통이 죽은 지 110일 동안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의 독무대였던 국민공회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시청에서 농성 중이던 로비스피에르 일파는 위병들에 의해 체포되었고 7월 28일, 공포정치의 주역들은 자신들이 수립한 방식 그대로 재판을 받았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동료 18명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예상되는 북한체제의 급변사태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를 포함해서 오늘날 세계사에 이름을 올린 독재자의 말로는 분명했다. 42년 전제권력의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를 필두로 사담 후세인(이라크),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세르비아),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 등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사람을 쉽게 죽였던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더불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까지 화염방사기나 고사총 등을 사용해 잔인하게 숙청하는 김정은의 말로 역시 비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10월,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 제출한 ‘북한인권 상황에 관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 제1비서와 그의 측근들이 반인도 범죄의 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다”며 “유엔 안보리가 반인도 범죄 책임자들을 기소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적시한바 있다. 국내외 북한 인권단체들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촉구 운동과 함께 위와 같은 유엔의 움직임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압박감으로 작용해 그가 더 큰 공포로 북한을 삼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역사를 바라보았을 때, 그 공포는 결국 김 제1비서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김일성을 신격화시키면서 3대에 걸쳐 독재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 돌입하면서 단단한 권력 기반을 확보한 김정일 위원장 때와는 달리, 김 제1비서는 측근 세력과의 연계나 신뢰가 취약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공포정치라는 한계점에 부딪혔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공포정치를 펼쳤던 독재자의 모습과 같이 공포정치가 지속되는 한 북한체제의 급변사태는 발생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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