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한국 정치 고질병 Ⅰ] 분노와 갈등 조장하는 혐오의 정치
[이슈메이커_한국 정치 고질병 Ⅰ] 분노와 갈등 조장하는 혐오의 정치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4.03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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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분노와 갈등 조장하는 혐오의 정치

민심 왜곡과 정치혐오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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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3월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발언하며 정치권이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면서 나 대표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했고, 한국당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제소로 맞불을 놓았다. 겨우 재개된 국회가 ‘막말 발언’으로 또다시 암초를 만난 것이다.

 

대통령과 여야 파트너 향한 막말의 역사

정치권의 막말과 이로 인한 설화는 야당만의 문제는 아니고, 현재의 일만도 아니다. 야당일 때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막말’을 일삼다가, 정작 집권당이 되면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998년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옛말에 염라대왕이 거짓말을 많이 한 사람의 입을 봉한다고 했는데, 공업용 미싱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해 여당의 격렬한 항의를 받았다. 이후 김 의원은 모욕죄로 기소돼 벌금 1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한나라당 의원 다수가 연극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쏟아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여야의 입장이 바뀐 후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는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귀태(鬼胎)’ 발언으로 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와 같은 막말의 정치는 대통령을 겨냥한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당장 선거제 개편 안을 놓고 정치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상대방을 향한 비난 발언의 수위도 높아지는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당과 야 3당이 내년 총선부터 적용할 선거제도 개편안에 합의하자 ‘좌파 수명 연장을 위한 입법쿠데타’라고 맹비난했고, 민주평화당은 ‘토착 왜구의 개혁 방해’라고 맞대응하며 살벌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선 “정치를 과연 ‘말의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자조 섞인 한탄도 이어지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수석대변인’ 발언은 정치권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수석대변인’ 발언은 정치권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사실관계 확인 없는 막무가내 음모론 제기

한국정치의 해묵은 고질병은 비단 막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음모론 역시 심심치 않게 피어난다. 대부분의 음모론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보다 자극적인 내용에 치중하기 때문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2월 말 개최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국당 전당대회 일정이 겹친다는 점을 거론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당 전당대회의 효과를 감쇄하려는 북측이 문재인정부를 생각해서 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에는 국민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과 전대 일정이 겹친 것을 “의심이기를 바란다”면서도 “국민들도 세 번 정도면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며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또 한 가지 올해 정치권의 대표적 음모론을 꼽는다면 김경수 경남지사와 1심 재판부였다. 김 지사가 드루킹 댓글 조작 공모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민주당은 성창호 부장판사를 가리켜 “양승태 사법부의 비서실 판사이던 그 재판장의 공정성을 의심하던 시선이 마침내 거둬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그의 비서실 판사를 지낸 성 부장판사가 ‘보복성 판결’을 내렸다고 규정한 것이다.

 

양당의 음모론에 대해서 정치권 안팎에선 구태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며 “합리적 의심으로 조각된 지속적인 음모론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막말과 음모론 제기는 한국 정치의 후퇴와 정치 혐오를 부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막말과 음모론 제기는 한국 정치의 후퇴와 정치 혐오를 부를 뿐이라고 경고한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정치의 대중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 지적

전문가들은 쏟아지는 막말과 음모론 제기에 대해 정치의 대중화 과정에서 파생된 부작용으로 여기기도 한다. 과거 엘리트 기득권층의 전유물로 통하던 시대가 변화하며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단어 역시 ‘어려운 언어’, ‘품격 있는 언어’보다는 ‘쉬운 언어’와 ‘자극적인 언어’로 변모하며 막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SNS의 대중화는 정치인의 말이 ‘얼마나 많이 인용되고 소비되느냐’에 따라 그 위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이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양극화 사회가 막말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이 막말을 하는 것은 지금 사회가 양극화 됐다는 반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치 행위는 다분히 정략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향한 공격의 목적보다 진짜 대상은 자신의 소속 집단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막말 논란이 발생해도 소속 정당에서는 ‘용기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흑백논리를 통해 대립 구도를 형성하면 지지층은 결집하기 마련이다. 실제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결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는 결국 듣기 싫은 민심에 귀를 닫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과도 연결된다. 국가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는 책임감보다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우선시하는 행동은 결국 민심 왜곡과 편향적 정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며 정치냉소주의까지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흘러간다. 언제쯤 품격 있는 정치언어를 찾아볼 수 있게 될까, 정치권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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