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50년 한국 패션의 뿌리, 창신동 봉제 골목
홀대받는 봉제사, 지속 발전의 근본 흔들려
최근 K-Pop, K-Beauty, K-Food 등을 포함해 IT, 의료 등 국내 다양한 분야의 산업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4대 패션지로 꼽히는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만큼은 아닐지라도 K-Fashion은 요즘 대세이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뉴욕 패션위크-Concept Korea 같은 패션쇼와 각국의 전시회 참가하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패션행사에 해외 바이어의 참석률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K-Fashion 시대
과거에는 칼라거펠트와 도나카란, 장폴고띠에 등 외국 디자이너가 국내 패션 학도들의 롤모델로 꼽히고는 했다. 하지만 우영미와 송지오, 정욱준 등 해외를 무대로 디자인을 선보이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늘어남에 따라 한국 패션학도들의 롤 모델로 자국 디자이너가 선호 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패션 행사에서 한국 디자이너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을 만큼 한국 패션 시장은 성장했다. 디자이너들의 활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내 가수와 배우 등 유명인들이 한국 브랜드 패션 아이템을 착장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공개되며 해외 소비자들은 K-Fashion에 큰 호감을 느껴왔다. 비단,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만 주목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패션의 메카라고 불리는 동대문 시장의 제품들도 해외 패션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 KBS 다큐멘터리 3일 |
동대문 시장은 인근에 평화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등의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거평프레야와 밀리오레, 두산타워, 디자이너클럽 등 현대적인 시장을 형성하며 명실공히 국내 대표적인 쇼핑지로 도약했다.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밀리오레와 두타 등의 대형 쇼핑몰은 많은 외국인들이 찾는 투어 코스로 자리 잡게 됐다.
국내 패션관계자들은 해외 여행객들이 한국 패션 시장에 방문해 국내 패션 아이템을 만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한 단계 더 도약해 K-Fashion을 해외에 전파하기 위하여 신진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3월, 2007년 12월에 철거됐던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프라자가 설립되었다. 해당 건축물은 동대문운동장의 공원화와 지하 공간 개발에 따른 상업 문화 활동 추진, 디자인 산업 지원시설 건립 등 복합 문화 공간 건립을 목적으로 건설된 시설이다. 동대문디자인프라자는 서울모델리스트콘테스트와 국내 대표적인 패션 컬렉션인 패션 위크가 개최되는 등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역량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 및 육성하기 위해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시민디자인정책연구소를 운영하며 사회문제 해결과 시민들이 공동으로 필요로 하는 디자인 혁신과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동대문 쇼핑몰인 두타가 ‘어너더 월드(Another World)’란 콘셉트로 변화를 꾀하며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물론 디자이너 매장을 기존 60여 개에서 100여 개로 한층 강화했다. 이 외에도 현대홈쇼핑과 동대문 두타의 신진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 MOU 협약 등 동대문 상권이나 쇼핑몰에서 국내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대폭적인 지지가 계속됐다. 동시에 동대문 일대에서 각종 패션 행사들이 펼쳐지자 다수의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이 거취를 동대문으로 옮겼다. 현재는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디자이너와 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컨템포러리 캐주얼 브랜드인 플랫분앤코와 캐주얼부터 세미 포멀 룩 등 다양한 여성복을 선보이고 있는 루키버드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 flickr/늘봄 |
사라질 위험의 봉제골목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K-Fashion에 비해 국내 패션시장의 기반을 다져온 창신동 봉제 골목은 외롭기만 하다.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시작되는 창신 시장 초입부터 낙산공원 삼거리에 이르는 가파른 언덕길까지 봉제공장으로 가득한 이곳을 일명 ‘창신동 봉제 골목’이라 부른다. 외관만 보면 서울의 달동네 주택가의 모습이지만, 대다수의 건물 지하와 1층에는 간판 없는 봉제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60~70년대 동대문 근로자들의 주거공간이었던 창신동은 평화시장에서 운영되던 봉제공장들이 임대료 상승을 피해 옮겨오며 봉제 골목을 형성했다. 의류제조업이 밀집되면서 전성기에는 공장 수가 3000여 곳에 이르기도 했던 창신동 봉제 골목. 이곳은 원단을 떼오는 평화시장과 동대문 상권이 인접해 있어 디자이너가 주문한 옷을 빠르게 만들어 전달 가능해 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소품종 다량생산 방식의 패션 시장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변화하며 창신동 봉제 골목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다수 봉제공장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의류 기업 하청업체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시대가 바뀌며 일감이 부족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다품종 다량생산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자라·유니클로 등 해외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Brand)브랜드의 등장으로 더욱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은 층의 봉제사 회피 현상도 봉제 골목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현재 창신동 봉재 골목의 평균 연령대는 50~60대이다. 간혹 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마저 외국인 노동자거나 봉제 공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일원이다. 젊은 일꾼을 확보하기 힘들다 보니, 새로운 패션 사업을 진행하거나 공장의 규모를 키우는 건 언감생심일 뿐이다.
최근 의류업계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물으면 10명 중, 8명은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봉제사보다 매체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화려한 디자이너란 직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봉제공장의 작업환경도 그들이 봉제사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부분 공장이 사업자등록 없이 낙후되고 좁은 건물에서 운영되며 4대 보험과 같은 근무 여건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적은 주문과 잦은 휴업이 지속되다 보니 객공으로 불리는 비상근 근무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객공이란 임시로 고용한 직공이라는 뜻으로 제품 하나에 일정액의 삯을 받거나 일하는 시간과 능력에 따라 삯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얼핏 보면 공장장이 횡포를 부르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저렴한 제품생산비용으로 공장을 운영하다 보니 생겨난 환경이다. 이 때문에 시다(보조)에서 시작해 차곡차곡 쌓아온 봉제 실력을 갖춘 봉제기술 장인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3D 업종이라는 사회적인 이미지도 젊은 층들이 봉제사가 되기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일 년 내내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정작 일할 때는 하루에 열댓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내는 것이 부지기수다.
과거 봉제업계에는 일 년 중, 6월에서 8월을 비수기라 부르고 이른 봄과 가을을 성수기라 말했다. 봄 상품과 가을옷은 다양한 종류와 많은 물량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납품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온종일 작업해도 시간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봄과 가을이 짧아져 봄옷과 가을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수요가 현저히 적어졌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불황까지 이어지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다수의 사람은 의·식·주 가운데, 의에 해당하는 의복 관련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절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경기 침체로 불리는 요즘에는 봉제 공장의 일감이 그 어느 때보다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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