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산업 안전’ 과제 남기고 떠난 청년 노동자
[이슈메이커] ‘산업 안전’ 과제 남기고 떠난 청년 노동자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3.0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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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산업 안전’ 과제 남기고 떠난 청년 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 위한 과제는?

 

ⓒPexel
ⓒPexel

 

지난해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고(故)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발전공기업의 ‘위험의 외주화’ 관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크고 작은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원청업체의 처벌 수위가 매우 낮고 재발 방지 대책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 작업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발생한 비극

당시 김용균 씨는 새벽 근무 도중 태안화력발전 9·10호기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석탄 먼지로 인해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김씨는 ‘2인 1조’ 근무라는 규정과 달리 홀로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벨트를 정지 시켜줄 사람조차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입사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김 씨는 회사로부터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며 여론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김 씨가 남긴 유품은 탄가루가 묻어 있는 슬리퍼와 작업일지가 담긴 수첩, 손전등, 컵라면 등이었다. 이는 지난 2016년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 군 사건을 상기시켰다. 작업자가 처한 환경과 사고의 사후 대처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험 작업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와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제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도 지난 10년간 작업 도중 사망한 12명의 노동자도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6개 발전공기업의 파견 및 용역 근로자의 정규직으로 전환이 1%가 되지 않는 환경은 어쩌면 비극적 사건을 필연적으로 만든 결과이기도 했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지난 5년간 1,452명의 하청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나갔고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며 연이은 사고는 ‘단순 산업재해가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28년만 국회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

김 씨 사망 이후 유족과 노동·시민단체들은 장례도 미룬 채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리고 김 씨의 희생으로 촉발된 흐름은 안전 대신 효율만 우선시 해온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국회에서는 위험 작업의 사내하도급 금지 등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28년 만에 통과되었다. 당정 역시 일명 ‘김용균법’이 통과된 뒤 후속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발전소 연료 및 환경설비 운전 분야에 대한 정규직 전환 방안 등을 발표했다. 정규직 전환 작업의 경우 그간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발전소 직접 고용은 아니지만,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를 포함해 5개 발전사의 정규직 전환 대상 업무를 통합한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하청업체에 위험 업무를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정부 차원의 의지를 확인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젊은이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고, 죽음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전했고, 시민대책위 역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오늘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부·여당의 발표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낸 노동자와 시민의 힘을 믿는다”고 피력했다.

 

‘제2의 김용균’ 방지 위한 과제는?

당정 합의안이 도출되면서 김 씨의 장례는 사고 두 달여 만에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질 수 있었다. 하지만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먼 것도 사실이다. 개정된 산안법에서 정한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 처벌 하한선이 여전히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당정이 후속 대책에 포함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지도 지켜봐야 한다. 특히 진상규명위 역시 단순히 사고 발생 경위와 직접적인 책임자 처벌에 머무르지 않고 이번 참사의 구조적 문제와 해결책을 모색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 원·하청 구조 및 ‘위험의 외주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후에도 다시 점화될 가능성도 높다.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 대한 산업 안전 확보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원청과 하청 구조를 허용하는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사망 사고를 부른 원청 사업주의 경우 강도 높게 처벌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아들의 처참한 죽음에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가슴에 커다란 불덩이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면서도 “우리 아들처럼 죽지 않게 여기서 끝내야 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김용균 씨가 세상에 내놓은 과제는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오는 6월 말까지 가동될 진상규명위의 활동이 산업 사고의 반복을 멈추고,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충분한 권리를 갖는 환경 조성에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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