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패션, ‘환경’과 ‘윤리’를 입다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한 관심 증대 속 업계 화답
유행에 민감한 패션은 다른 제품들에 비해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끊임없는 소비를 요구하며 자원 낭비의 주범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소비층들의 의식 변화 속에 이와 같은 흐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컨셔스 패션(Conscious Fashion)’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 중심으로 확산되는 컨셔스 패션
컨셔스 패션은 ‘의식 있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컨셔스(conscious)’와 ‘패션(fashion)’의 합성어다. 의류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재 선정에서 제조 공정까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으로 생산된 의류나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 계층 혹은 문화를 뜻한다. 이는 지난 10년간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유행하며 환경문제가 점차 심각해진 것에 따른 자성의 움직임이자 환경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의식 있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패션업계가 응답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재활용 소재와 재사용 가능한 천연 섬유를 사용한 컬렉션으로 글로벌 패션위크가 개최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스웨덴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으로 확산 중인 ‘플로깅(Plogging)’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플라스틱을 수거하면서 몸을 굽히며 스쿼트를 하거나 러닝을 하는 등 운동과 환경보호를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거창한 의미를 두고 있거나 일상과 동떨어진 이벤트가 아닌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움직임이다.
실제 지난해 실시된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18~24세 사이의 ‘밀레니얼 세대’ 중 40%는 리세일 아이템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원이 넘쳐나는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소비에만 가치를 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유와 경험 등 비물질적인 부분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포브스 역시 이들을 두고 “사회적 가치가 담긴 제품을 SNS에 적극적으로 알릴뿐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가 그 브랜드를 지원하고 키워가는 주도적인 후원자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내외에서 속속 등장하는 친환경 제품들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이 같은 활동에 있어서 원조 격이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파타고니아는 덜 만들고 덜 쓰는 노력을 통해 환경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가치관을 두고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기업의 경영철학과 환경 보호 가치를 공유하게 만들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에도 ‘리서클 컬렉션(ReCircle Collection)’을 새롭게 선보이며 컨셔스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재생 가능한 나무나 생산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면 조각을 활용해 새로운 옷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지난 5월에는 한국에서 ‘사람을 위한 변화, 자연을 위한 혁명’이라는 주제로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비즈니스의 책임과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이 물을 사용하지 않고 염색한 의류를 통해 환경보호와 옷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패션을 제시하거나, 윤리적 소비를 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더 이상 매장에서 판매할 수 없어 소각되는 제품들을 해체해 새로운 브랜드를 운영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며 자연 보호에 노력을 기울인 제품이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패션의 가치를 더 쉽게 알리고 소비로도 이어져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품을 지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다”고 말했다.
단발적 마케팅 대신 장기적 인식 변화 요구
이처럼 많은 소비자들은 환경오염과 윤리적 소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한 시장조사전문기업이 지난해 전국 19~59세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착한소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이 넘는 52.9%가 착한 소비의 개념으로 ‘친환경적인 소비’를 꼽았다. 또한 68.9%는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려는 기업의 제품이라면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컨셔스 패션에 대한 삐딱한 시선도 존재한다. 컨셔스 패션은 일반 의류에 비해 제작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소재에 비해 비싼 제품이라는 의견을 듣거나 기업 입장에서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보여주기’ 식의 제품 출시에 그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려지는 폐기물들과 친환경 소재들을 사용해 업사이클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는 소셜 벤처 ‘몽세누’의 박준범 대표는 “지속가능한 소비에 대한 가치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면 궁극적으로 재활용 개념 자체가 완전 사라지고 ‘프리 사이클’의 트렌드도 확산될 것이라 믿는다”며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인식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했다.
최근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플라스틱 일회용 컵 사용이 불가능해지면서 한동안 이로 인한 마찰과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제고시키고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우리 사회, 그리고 지구촌을 긍정적이고 깨끗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