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원인과 전망
통합진보당 해산, 원인과 전망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02.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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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통합진보당, 창당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혼돈의 정치권







법무부는 지난 2013년 11월 5일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에 반한다며 정당활동금지 가처분과 함께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법무부와 통합진보당은 18차례에 걸친 공개변론을 거치며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였다. 18차례의 팽팽한 공개변론 끝에 박한철 헌재소장은 1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진당 정당해산심판 마지막 재판에 나와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고 주문을 낭독했다. 법무부가 청구한 정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해산이 결정된 것이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비극의 시작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으로부터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소속 의원 5명에 대한 의원직 상실을 결정하면서, 통합진보당은 지난 2011년 창당 후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해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면서 “통합진보당의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당해산 외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정했다.

  당초 의원직 박탈은 비례대표만 해당되고 지역구 의원은 예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지만 헌재가 지역구 의원들까지 의원직 상실을 결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관련, 헌재 측 통보를 접수하는 즉시 정당 등록 말소 절차에 들어감과 동시에 통진당의 국고보조금 압류 및 자산동결 조치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정희 의원은 “말할 자유 모일 자유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암흑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과 유시민 등 참여정부 일부 인사들의 국민참여당, 심상정·노회찬을 필두로 한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류해 2011년 12월 결성됐다. 진보정당으로서의 입지와 함께 대중성이 있는 정치인들의 영입으로 진보당은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지역구 7명을 포함해 13명을 의원을 당선시키면서 원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번 정당해산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지난 2013년 8월 벌어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원이 같은 해 5월 지하혁명조직인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와 함께 폭력혁명을 통한 체제전복을 기도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에 대한 체포와 구속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진보당은 국회 안팎에서 여론의 집중포화로 고립됐다. 이를 계기로 법무부는 재작년 11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의 다른 표현이며 국내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현저히 위배한다는 논리였다.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은 북한 추종세력 판결


정당해산심판 청구 소송도 헌정사상 처음인 데다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의 예상을 깨고 압도적 다수로 진보당의 목적 등이 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시, 박근혜 정부의 매카시즘(Mccarthyism·반공산주의) 빗장이 풀린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인 이날 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NL(민족자주파)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이 일거에 붕괴, 정부의 본격적인 공안몰이로 이어질 공산이 한층 커졌다. 진보당 해산은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PD(평등파)와 민주노총 중심의 ‘국민승리 21’이 출범한 지 17년 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나치 집권기의 독일과 터키·이집트·스페인에 이어 정당해산을 한 5번째 나라가 됐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이날 최종 결정문에서 법무부가 지난해 9월 제기한 정당해산심판 청구 소송의 적법성을 긍정한 뒤 정당해산 사유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중 어느 하나라도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경우, 그 위배가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 등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 존재 등을 꼽았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그 요건을 좁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진보당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의원 등이 포함된 경기동부연합을 거론하며 자주파에 속하고 그들의 방침대로 당을 주도해왔다며 “당의 주도세력은 과거 민혁당 및 영남위원회, 실천연대, 일심회, 한청 등에서 자주·민주·통일 노선을 제시하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북한과 연계돼 활동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다”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맹목적인 북한지지, 우리나라를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한 점,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한다는 입장을 가진 점 등을 이유로 정당해산을 긍정했다. 


  여권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보수 정당으로서의 이념과 가치를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헌재의 결정과 관련해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자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의 승리라며 “대한민국이 종북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전했다.

 





진보진영의 강한 반발, “역사와 민주주의의 역행”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라 이에 따른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문제는 헌재의 최종 결정문에서 진보당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와 북한 추종의 고리를 찾기 힘들다는 데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헌재 결정은 존중하지만 민주주의의 정신이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은 역사와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것이며 헌재 스스로가 헌법정신을 파괴한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헌재의 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최종 결정문은 그간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새누리당의 논거와 닮아있다. 진보진영 내부에서 헌재가 일방적으로 진보당 해산 주장을 했을 뿐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특히 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논거는 정당해산 제도를 용인한 유럽국가들의 권고지침인 유럽 평의회 산하 베니스위원회 지침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 그 지침에는 폭력의 실제적 동원, 폭력을 동반한 동원의 실질적인 위험성 등이 인정될 때 정당해산을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가 이날 진보당 해산 근거로 든 이 의원의 내란 관련 회합은 1,2심 재판 결과가 엇갈릴 정도로 법리적 논쟁이 불붙는 사안이다. 2심에서는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 범죄의 구체적 준비방안에 대해 어떤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 의원의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내란음모의 구체성, 적극성, 현실성 등이 결여됐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에 발맞춰 선고하면서 사실상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인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을 막기 위해 사법부를 동원한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불을 지르게 됐다.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 앞으로의 정국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 정국은 앞으로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은 지속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서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대정부 규탄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당 해산의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원들을 추슬러 정치세력으로서 존속을 꾀할 의도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야인사들이나 시민사회단체와의 결합을 꾀하며 생존의 돌파구를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이름은 물론 유사한 정당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만큼 통합진보당의 부활은 어려울 것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곧 다가올 4월 29일 재보선은 또 다른 정국의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이번 보궐선거는 성남 중원구와 서울 관악을, 광주 서구을 등 지역구 3곳이 그 대상이다. 비례대표의 경우는 정당이 해산됐기 때문에 내년 20대 총선까지 빈 자리가 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현재 300석인 국회의원 정수가 298석으로 줄어들게 됐다. 새누리당이 158석, 새정치민주연합이 130석, 정의당이 5석인 가운데 올해 보궐선거에서 3개의 의석이 어디로 향할지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선실세 의혹으로 수세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진보당의 야권연대에 대한 종북공세를 강화하며 야당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새정치민주연합도 공격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여 공무원연금과 국정조사, 비선실세 의혹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간 청와대 문건유출 파문이 연말정국의 큰 틀을 흔들었다면 앞으로는 정당해산으로 급전환돼 여권에 반가운 국면전환의 계기가 됐다. 


  한편 통합진보당과 협력의 끈을 긴밀히 유지했던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이번달 전당대회에 출마할 주자들의 이념적 노선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념 측면에서 볼 때 중도 쪽으로 노선을 갈아타지 않겠냐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됨에 따라 5석을 가지고 있는 정의당은 제3정당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원내 유일한 진보 성향 정당이 됐다. 그러나 헌재 결정에 따라 유사 강령을 표방하는 정당의 창당도 금지되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의 탄생 등 진보 정당의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진보 정당도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이번 사건으로 정당 활동의 자유와 종북 논란, 두 이념 대립이 길어지면서 국론이 분열돼 입법안 처리 표류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정당활동의 자유와 종북논란 등을 놓고 여야 간 이념대립이 격화될 경우 공무원연금 개혁과 민생법안,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등 민생과 관련된 각종 입법안 처리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제 정치권이 여야의 이념 문제에 대한 소모전에서 벗어나 민생의 목소리와 현안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을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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