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쫓겨나는 원주민, 몸살 앓는 관광지들
[이슈메이커] 쫓겨나는 원주민, 몸살 앓는 관광지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9.01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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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쫓겨나는 원주민, 몸살 앓는 관광지들

 

관광객 몰리며 삶의 질 하락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디즈니피케이션’, ‘오버투어리즘’, ‘투어리시티피케이션’ 등은 모두 아직 우리말로 번역이 마땅치 않은 신조어들이다. 공통점이라면 지나친 관광정책과 과잉 상품화 탓에 겪게 되는 생활의 불편함과 삶터의 파괴현상을 지적하는 용어라는 점이다. 이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일종의 놀이터처럼 변모하며 현지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떠나는 현지인 늘어나자 수습 나선 지자체

 

도시가 고유의 정취를 잃고 미국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처럼 관광객 놀이터처럼 되는 것을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이라 한다. 1991년 피터 팔론 뉴욕대 교수가 처음 사용해 관광객 때문에 주민이 쫓겨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등과 함께 쓰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꼽을 수 있다. 관광객을 우선시하면서 주민들이 쫓겨나거나 생활고를 겪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암스테르담시가 대형 크루즈선용 항만을 만들기로 하면서 개발 예정지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하다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집주인들은 숙박 공유 사이트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영업에 열을 올리고만 있다. 이로 인해 임대용 주택이 부족해 월세가 치솟고 집을 빌린 외지인들이 밤샘 파티를 열어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시내는 관광객들 때문에 늘 교통 체증이 극심하다. 이로 인해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최근 관광 규제안을 조례로 통과시키는 데 이르렀다. 도심에서 에어비앤비 영업을 금지하고 1인당 하루 10유로의 관광세까지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유서 깊은 도시이자 다양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암스테르담이 오로지 관광업으로만 쏠리고 있어 다양한 가치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려는 조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의 대표적 관광지 ‘북촌한옥마을’은 하루에만 평균 1만여 명이 방문하는 서울관광 필수코스이지만 정작 북촌에 사는 주민들은 관광객으로 인한 삶의 파괴를 호소하고 있다.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모여 연신 셔터를 누르고, 화단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은 언뜻 정겨워 보이지만 주민들의 불만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 주민은 “아침에 청소를 하려고 대문을 열면 관광객들이 몰려와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허락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바람에 불쾌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하소연했다. 만성적인 주차난과 급등한 물가에 시름 하는 전주한옥마을이나 쓰레기와 소음으로 몸살을 앓는 여수 낭만포차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북촌을 떠난 주민만 1,300명에 달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와 종로구는 최근 북촌로11길 일대 관광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허용하고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 예고하는 등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이다.

 

지자체 과욕이 화근 되었나

 

이와 같은 현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의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주민 소득 증가와 상권 활성화 등 유무형의 파급력을 창출하는 관광산업은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나머지 원주민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곳곳에서 여러 부작용과 갈등이 빚어지는 주요 원인이 된다.

 

통영시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라 할 수 있는 동피랑의 사례를 보면 과잉 관광 상품화의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동피랑 마을 만들기’의 기존 취지는 사라지고, 마을벽화가 유명해지며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주민들의 생활이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얻는 것 없이 내주기만 해야 하는 관광지 현지 주민들의 노골적인 불만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어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비추어 전문가들은 가시적인 성과만을 노린 무리한 관광정책이 원주민과 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지역 실정과 주민 정서에 부합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 송광인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지자체에서 성공했다고 지역 현실에 맞지 않은 관광정책을 들여와 추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관광객 숫자에만 연연해 주먹구구식 정책을 밀어붙이는 건 예산 낭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유명해지는 만큼 역설적으로 원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틈을 노려 비집고 들어오는 장사치들 덕분에 동네 인심은 팍팍해지는 악순환의 반복. 이를 단기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관광자원을 살리는 일에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대안을 현실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역 실정에 맞는 지속가능한 관광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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