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 1] 전쟁을 일으키고 반성하는 나라 독일
[War 1] 전쟁을 일으키고 반성하는 나라 독일
  • 이창희 기자
  • 승인 2014.10.0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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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전쟁이 끝난 지금에도 보상은 이어져”
[이슈메이커=이창희 기자]

[War 1] 




전쟁을 일으키고 반성하는 나라 독일


“70년 전 전쟁이 끝난 지금에도 보상은 이어져”




전쟁의 승패의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패전국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회복의 여부도 달라진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로써 전 유럽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 독일은 전쟁 후 반성하는 모습으로 세계의 귀감이 되고 있고, 현재는 유럽 연합을 이끄는 선봉장이 되었다. 





잊고 싶은 기억, ‘홀로크스트’


  제 2차 세계대전은 광기 어린 전쟁이라고 기억될 만큼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처절했던 전쟁이였다. 단지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들의 죽음이 전부가 아니였다. 인종에 대한 문제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특히 ‘홀로 코스트’는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대표적 사건이다. 홀로코스트란 ‘불에 의하여 희생된 제물 (번제)’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1933년 1월에 집권한 나치는 독일인을 ‘우월한 인종’으로 믿는 믿음 하에 유태인을 ‘열등한 인종’으로 규정하고, 유태인 약 6백 만명을 대학살한다. 나치정권은 유태인 외에도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정신지체 장애인 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집단 수용소에 옮겨,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나치 정권 멋대로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규정지은 다른 그룹은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셈이다. 이리하여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한 유태인 뿐아니라 비유대인의 수까지 포함하면 약 6천 여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또한 나치 독일은 수 백 만명의 희생자를 수용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 약 20,000여개의 수용소를 건설했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와 소련을 침공한 후, 더 많은 수용소가 세워졌다. 유태인 대량 학살을 더 활발히 하기 위해 나치는 유태인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인 폴란드에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1933년 3월 지어진 최초의 강제수용소인 ‘다하우수용소’를 시작으로, 수용소의 시스템이 좀 더 정교하게 정비되어져갔다. 비슷한 시기에 아우슈비츠 집단 수용소도 건설되었는데, 이곳은 나치제국이 건설한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진 곳이였다. 이곳에서는 강제 노동, 학대 등이 자행됐고, 특히 학대생체실험, 독 가스 살포, 화염 등의 반 인륜적 방법으로 집단 학살을 자행했다. 





MISSION1! 전범들을 모조리 처단하라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을 주축으로 패전국 독일이 저지른 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추궁하게 된다. 영국의 외무장관 안소니 에덴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사냥"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나치전범에 대한 추적은 연합국이 전범재판에 세우기 위해 이루어지거나, 그 희생자와 그 가족, 지역주민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1945년 7월 연합국은 7만 명에 이르는 ‘전범 및 용의자 리스트’를 작성하여 전범들을 색출했다. 그 중 ‘독일 뉘른베르크 재판’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재판으로 히틀러의 최 측근이였던 1급 정치범 24명이 기소되었고, 공군총사령관이었던 헤르만 괴링, 외무장관이었던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등 12명에게 사형이 선고 됐다. 또한 부총통 루돌프 헤스 등 3명에게 종신금고형이, 그 외의 알베르트 슈페어, 칼 되니츠 등 기타 전범자들에게는 20년 금고, 15년 금고, 10년 금고형이라는 엄중의 벌이 선고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법정에 선 나치 전범 용의자만 10만 6,000명에 달했다고 하니 연합국이 용의자 색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금도 여전히 전범들의 색출은 계속 되고 있다. BBC보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국가사회주의근로자당(나치당) 소속의 주요 당원들과 이들과 협력했던 무수히 많은 전범들은 전쟁에서 패하자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 식민지로 도망 쳤다고 한다. 그 결과,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숨긴 채 목숨을 연명하며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나치 전범들을 찾아내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이먼 위센탈 센터’는 20세기 중반부터 전쟁을 주도한 군인들의 법정 송환 작업을 도왔고 그의 노력에 의해 약 1천명 이상의 전범들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또한 2002년에는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의 증언도 세상에 공개했다. 그 결과 여러 활동을 통해 전 세계 20개국 488명의 전범들이 체포돼 법정에 송환되는 결과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그룹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99개의 나치당 협력 사례를 적발해 현지 검사들에게 사건을 인도해 재판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3명이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고 2명은 보다 정확한 조사를 하기 위해 유럽 본국으로 송환조치를 받았다. 

 

▲‘독일 뉘른베르크 재판’은 전범 및 용의자 리스트를 작성 후 히틀러의 최 측근들을 재판한 역사적인 재판이다.




60년간 무려 약 80조원 배상금 지원한 독일


  독일은 정치범 색출할 뿐만 아니라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독일은 아데나워 총리 시절인 1952년 나치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담은 '룩셈부르크 협약'에 서명했고, 이에 따라 그해 처음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에게 30억 마르크(약 2,100억원)의 피해 배상금을 지급했다. 이때부터 독일 정부는 주기적으로 나치 피해자 또는 단체들과 만나 협상을 갖고 나치 범죄의 피해 상황이 추가로 확인되면 배상을 해 왔다. 이렇게 독일이 1952년부터 60년간 지급한 배상금이 무려 700억 달러(약 80조원)에 다다른다고 한다.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대독유대인청구권회의 협상단 대표는 “긴축재정 압박 속에서도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책무를 다하려는 독일 정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또한 2000년엔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연합하여 '기억과 책임 그리고 미래'이라는 재단을 설립했는데, 이 재단은 생체실험의 생존자 714명과 당시 강제노동을 당한 어린이 527명, 그리고 희생된 어린이의 부모 79명 등 약 천 3백 명에게 6천6백유로(약 9백만원)씩 추가보상금을 지급했다.


  독일 정부는 지금까지 이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올해부터 2017년까지 독일 나치 정권 시절 박해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피해 배상금으로 10억 달러(약 1조1,320억 원)를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유대인 피해자 단체인 '대(對)독일유대인청구권회의'는 이 돈은 46개국에 살고 있는 나치 피해자 5만 6000여명에게 지급될 예정이고, 이는 고령(高齡)의 나치 피해자들이 자택에서 요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전했다.



▲메르켈은 양국 수교 50주년에 맞춰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시몬 페레스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시민 메달'을 받았다. ⓒKBS 방송 캡쳐



독일, 전범국가에서 유럽(EU)의 중심이 되다


  1970년 12월 7일 빌리브란트 독일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그는 말없이 한 동안 침묵하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나중에 그는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일 뿐이다”라고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그리고 독일 수뇌부의 사죄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1994년 8월 로만 헤르초크 독일 대통령은 폴란드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다시 한 번 잘못을 빌었다. 그는 “독일 사람이 폴란드 사람들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아닌 독일 ‘사람’이라고 말해 반성의 의무는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의미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사죄의 흐름은 현(現)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이어졌다. 올해 1월 그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학살 추념 일을 맞아 자신의 웹사이트에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가 다시는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모든 개인이 용기를 갖고 임해야 한다”며 “우리는 이 점을 세대를 이어가며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일관된 독일의 사과의 행보는 주변국들에게 많은 신뢰를 갖게 해주었고, 안보적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결과 현재 독일과 폴란드는 독일 통일 후인 1991년 서로 평화 조약을 맺고, 현재 24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메르켈은 양국 수교 50주년에 맞춰 이스라엘을 방문했고, 시몬 페레스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시민 메달'을 받았다. 이는 나치의 유대 인종 대학살에 대한 독일 역대 총리들의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이 '이스라엘 훈장을 받는 독일 총리'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독일에서 나치 시절의 만행을 사죄하는 모습은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전할 만큼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우호 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국제담당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치먼은 “오늘날 유럽의 '사실상 수도'가 독일의 베를린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독일은 이러한 주변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오늘날 유럽연합(EU)을 이끄는 중심국이 됐다. 


  독일은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철저히 반성함으로 주변국들과 분쟁 및 갈등이 아닌 건설적인 미래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는 과거사로 인해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일본의 행보와 대조된다.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의 모습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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