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사랑과 소통을 전하다
대한민국에 사랑과 소통을 전하다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08.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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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시간 동안의 사랑과 치유, 공감과 배려의 메시지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over Story]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대한민국에 사랑과 소통을 전하다


100시간 동안의 사랑과 치유, 공감과 배려의 메시지





2014년 8월 18일,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행기에 올랐다. 수없이 많은 어록과 감동적인 순간들 외에도 그가 남긴 것은 또 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를 방문했을 때 남긴 깨알 같은 크기의 서명. 100원짜리 동전 크기에 불과한 이 서명에는 전 세계 천주교계의 지도자라는 지위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인이었던 St.프란치스코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그의 겸손하고 낮은 자세가 담겨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역사상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각각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 방문은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천주교회 제2기 순교자 103위 시성을 위한 것이었고,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 대회장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 두 번째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광주에서 열린 미사에서 “최근의 참극으로 여러분이 받은 깊은 상처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러기에 화해의 은총이 여러분들에게 내려질 것입니다”라고 광주 시민들을 보듬었다. 민주화의 열풍과 이를 저지하는 군부 정권의 탄압이 충돌하던 시절, 교황의 방한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2014년. 취임 후 줄곧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왔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며 남긴 메시지는 치유가 절실히 필요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따뜻한 포옹으로 다가왔다.


  8월 16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시복 미사로 향하던 교황은 노란 플랜카드를 들고 있던 한 인물을 보고 차에서 내린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참사로 기록된 ‘세월호 침몰’ 이후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을 이어오던 단원고 2학년 故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였다. 차에서 내려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1분 남짓한 시간동안 김영오씨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번 방한 내내 온화한 표정을 유지했던 교황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손을 잡아주는데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는구나 싶었다. 교황을 보면서 내가 미소 짓고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정제천 신부의 통역을 통해 김영오씨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교황은 다시 한번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절절한 문구가 담긴 편지를 건네받은 교황은 이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내내 그의 왼쪽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다양한 일정을 수행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했던 그는 작은 것 하나에서도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였다. 일정을 마친 18일, 귀국편 기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황은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라고 설명했다. 전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말을 행동으로 확인시켰다.





가장 작은 차에서 보여준 ‘다가가는 리더십’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고 했다. 그리고 끝없는 사랑은 먼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방한 일정에서 국민들이 느낀 감정은 바로 ‘공감’이었다. 


  긴 경기침체와 실업, 노동형평성 문제, 그리고 올 초 터진 ‘리조트 붕괴’와 ‘세월호 침몰’까지.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던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다양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책을 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에 터진 일련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함은 변화를 기대하던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만을 안겼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사장 김무성)이 지난 8월 조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6월 SNS의 주요 키워드는 ‘세월호’와 ‘무능’이었다. 특히 정부의 후속대책과 관련된 키워드인 ‘무능’은 무려 8만 1,323회나 언급되며 국민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앞서 언급한 「복음의 기쁨」을 보면 교황이 “자신의 사명은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일으켜 세우며, 공감하고 나누는 것. 철저하게 다른 사람과 동일화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구절이 나온다. 힘없고 약한 사람을 ‘내가 돌봐야하는 측은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하느님 앞에 서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번 방한 일정 중 교황의 모습에서 많은 국민들은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세를 봤다고 말한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말뿐인 ‘공감’이 아닌, ‘실천하는 공감’, ‘다가가는 공감’을 본 것이다.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자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고 했던 그의 요청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한 국회의원은 “종교 지도자로서 그가 한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교황의 말을 현실에서 실현하기는 어렵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교황이 방한 일정 중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거나 물질적인 혜택, 정책적인 조언을 제시한 것은 전무하다. 하지만 그가 준 것은 거대한 울림과 감동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박동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은 “리더는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겪었는지 알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보여준 리더로서의 교황의 덕목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방한, 우리에게 남긴 것들


  방한 첫날 청와대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 사람, 배려, 소통’의 4가지 가치를 이야기했다. 모두 우리나라의 현안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남북관계가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의 ‘평화’의 가치, 수치 중심의 경제성장을 이뤄온 현대사회에서의 ‘사람’의 가치, OECD에서 복지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인 우리나라의 ‘배려’의 가치, 사회 지도층과 일반 서민들 간의 불통과 오해가 심화되고 있는 사회구조에서의 ‘소통’의 가치. 한국사회가 그동안 잃어온 4가지 가치에 대해 교황이 던진 메시지는 자극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교황은 ‘한국 수도 공동체들과의 만남’ 강론 중 “공동체 생활이 언제나 쉽지는 않다는 것을 저는 체험으로 압니다만, 공동체 생활은 마음의 양성을 위한 섭리적인 토양입니다. 아무런 갈등이 없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해미 순교 성지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 연설에서는 “대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합니다. 진정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는 진정한 만남을 이끌어 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부조리함과 고통을 직시하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저항하고 맞서 싸우고, 거부하고, 일어설 것’을 역설한다. 


  교황의 강론 이후 많은 이들은 그가 단지 ‘치유’만 준 것이 아니라 ‘행동할 것’을 독려했다고 말한다. 청와대에서는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며 통일은 용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으며, 주교들에게는 “마음을 열지 못하는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독백”이라며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를 촉구했다. 젊은이들에게는 “우리 삶에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물질과 권력, 쾌락 숭배의 징후들”을 경고하며 가까이에 있는 친구와 동료들을 보살피고 ‘죽음의 문화’와 맞서 싸우라고 일깨웠다.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교황은 줄곧 가난한 자의 편에 서고, 소외된 자들을 보살펴왔다. 또한 시장의 절대 자유와 금융투기를 거부하고, 불평등 사회와 그로 인해 받는 고통을 개선하자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스스로가 받은 자비로,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라 강조했다. 한 없이 자신을 낮추고, 손 잡아주며, 눈을 맞추는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 지도자란 행동하는 사람이며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일깨워준 그의 4박 5일간의 짧은 여정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다.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걸어가는 겁니다.”

- Pope Francis








<프란치스코 교황, 4박 5일간의 여정>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14일 대한민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교황은 청와대의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후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주교단과 공식 만남을 가졌다.


  광복절인 8월 15일, 교황은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성모승천대축일 기념행사에 참여하며 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천주교 신자들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등과 만나 그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진행된 아시아 가톨릭 청년대회에 참여해 미래 가톨릭계를 이끌어나갈 젊은이들 만났다. 교황과 청년들의 대화는 1시간 40분 가량 이어졌다. 이후 교황은  솔뫼 성지와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방문했다.


  방한 3일째인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최대 순교 성지인 서소문순교성지를 찾아 일정을 시작했다. 이후 광화문에서 진행된 시복 미사는 백만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손을 잡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교황은 광화문 시복식을 마친 뒤 헬기를 타고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로 이동했다. 교황은 “자신을 보호할 힘조차 없는 낙태된 태아들과 이 땅의 가장 연약한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라고 전하며 장애인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17일에는 25년 만에 한국 신자가 교황에게 세례를 받았다. 주인공은 세월호 사고 유족인 이호진 씨. 그는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교황에게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집전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인 8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웃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시행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밀양 주민, 용산 참사 유족, 장애인들과도 인사하며 대화를 나눴다. 행사 이후 오후 12시 40분경 비행기를 탑승해 1시에 출국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별다른 환송행사 없이 소박하게 주교단과 작별인사를 나누며 대한민국을 떠났다.





정리 / 경준혁 기자,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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