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감각과 집중력 갖춘 중국 IT시장의 초인
비즈니스 감각과 집중력 갖춘 중국 IT시장의 초인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08.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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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형 검색엔진 개발…창업 15년 만에 중국 최대 갑부로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Cover Story] 바이두 리옌홍 회장



비즈니스 감각과 집중력 갖춘 중국 IT시장의 초인


중국형 검색엔진 개발…창업 15년 만에 중국 최대 갑부로





작년 12월 중국 재계에 주목할 만한 일이 있었다.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의 설립자 리옌홍(李彦宏) 최고경영자(CEO)가 왕젠린 다롄완다그룹 회장을 제치고 중국 최대 갑부로 등극했다. 중국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최고 부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리 회장의 재산 규모는 122억 3145만 달러로 1년 만에 65%나 증가했다. 음료기업 와하하의 쭝칭허우 회장을 제치고 2위 자리에 앉은 지 14일 만에 1위 자리까지 올랐다. 미국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최고 부자가 되면서 미국 성장산업의 지형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체 리옌홍은 어떻게 바이두를 성공시켰을까.





리옌홍은 30대에 이미 중국 5대 갑부에 올랐다. 그리고 46세 젊은 나이에 중국부자 1위가 됐다. 재산은 우리 돈으로 12조 원이 넘는다. 리옌홍은 중국 젊은이들에게 살아있는 우상이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단순한 집중’이라는 그의 좌우명에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한 리옌홍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컴퓨터공학 박사학위 과정 입학 통지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를 과감히 버리고 월스트리트에서 3년 동안 기자생활을 거쳐 개발자의 꿈을 안고 미국 실리콘밸리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마저도 그만두고 창업을 위해 중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경극배우 꿈꾸던 독서광


  리옌홍은 1968년 중국 산시성 양취안의 공장 노동자 부부의 5남매 중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산시 지역은 중국의 ‘경극의 요람’이었다. 경극에 나오는 어린 배우들은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배우는 어린 리옌홍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경극 배우를 동경한 리옌홍은 산시 진극단의 신인 발굴 오디션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여러 동작을 맛깔나게 연기했고 그 자리에서 단원으로 뽑혔다. 하지만 부모는 그에게 “공부를 하면 더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다”며 학업에 매진하게 했다.


  리옌홍은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뛰노는 것을 제일로 여겼다. 그런데 큰 누나가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것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중국에서 당시 대학생은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인재’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방에 널린 누나의 대학입학 축하 현수막을 보고 리옌홍은 경극이 아닌 공부를 통해 성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리옌홍은 어릴 때부터 주목받기 좋아하고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이후 리옌홍은 공부에만 전념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바닥을 기던 성적을 단숨에 올려놨다. 놀기도 좋아했지만 평소 책읽기를 좋아했던 것이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책을 읽기 위해 직원에게만 개방되는 공장 도서관을 아버지 출입증을 이용해 몰래 드나들 정도였다. 그는 “당시 도서관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어 힘들었다”며 “이는 내가 검색엔진 개발에 나서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리옌홍에게 “우리 집안은 평범하기 때문에 네가 성공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머니의 바람대로 리옌홍은 베이징대에 진학해 정보관리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컴퓨터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당시 습득한 정보관리학과 컴퓨터 지식은 향후 그가 검색 사이트 바이두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1세 때 호텔방에서 창업…타고난 비즈니스 감각


  베이징대를 졸업한 리옌홍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주립대 버팔로 대학 컴퓨터학과 석사과정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여름방학을 맞은 리옌홍은 파나소닉 정보기술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광학식문자판독기(OCR) 분야를 연구해온 그는 실습 기간 동안 식별효율을 높이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실습이 끝날 무렵 파나소닉은 실습생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던 관행을 깨고 그를 채용했다. 이후 리옌홍은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에 관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리옌홍의 지도교수는 국제적인 수준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뛰어난 리옌홍이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았다. 하지만 실무 경험을 중시했던 그는 월스트리트의 스카우트 제의에 과감하게 박사 학위를 포기했다.


  경제뉴스를 제공하는 다우존스에 입사한 리옌홍은 박사급 대접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리옌홍은 다우존스 기자로 일하면서도 컴퓨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하이퍼링크를 접목한 기술을 개발해 회사 사람들에게 발표하기도 했다. 회사사람들로부터 “기사나 쓰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다우존스에서 그가 개발한 금융정보 검색 시스템은 아직까지 월가의 수많은 기업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이후 그는 인포시크라는 유명 검색엔진 업체를 거치며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창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99년 중국에도 인터넷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그는 120만 달러를 모아 중국으로 돌아가 창업에 뛰어든다. 당시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첫 사무실은 3성급 호텔의 객실이었다. 6개월의 밤낮 없는 개발 끝에 중국 실정에 가장 적합한 검색엔진 바이두가 완성됐다. 바이두(百度)라는 이름은 송나라 시인 신치지의 시구에서 나왔다. ‘무리 속에서 그를 수백, 수천 번 찾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등불 아래 그가 있더라’라는 시구 중 ‘수백번(百度)’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필요한 것을 찾는다는 검색엔진의 이미지를 잘 살린 이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다른 엔지니어들과 차별화됐던 것은 기술 개발보다 비즈니스 전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애독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IBM에 대항하고 있는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 비즈니스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리옌홍은 뒷날 “기술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며 비즈니스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의 비즈니스 감각이 유감없이 드러난 것은 바이두의 미국 증시 상장이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10년 전에 바이두의 창업자인 리옌홍을 조심스레 만나 “원하는 금액을 다 투자해줄 테니 미국 증시 상장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해외 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리옌훙은 바이두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결정했다. 2005년 8월 개장가 66달러로 상장된 바이두의 주가는 당일 최고 151달러까지 오르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이후 바이두는 승승장구하며 성장해 2012년에는 매출 223억600만 위안(약 3조9000억 원)을 달성했으며 2013년에도 40~50%의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의 구글’이 목표… 중국 검색 시장 사실상 독점


  바이두의 성공을 평가절하 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바이두는 그동안 ‘중국판 짝퉁 구글’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두가 무인자동차 등 인공지능 영역에까지 구글 따라하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바이두의 첫 화면은 구글과 거의 비슷하다. 바이두는 구글의 최대 혁신이라고 불리는 무인자동차, 구글글래스부터 길거리 구석구석을 찍은 거리뷰 지도까지 구글의 사업을 사실상 모방한다. 리옌홍도 “구글을 벤치마킹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인정할 정도다. 그는 “중국의 구글이 되는 게 목표”라고 공공연하게 밝힌다. 바이두는 최근 자율주행 자전거를 개발하고 베이징 시와 함께 원격의료 서비스까지 제공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2010년 중국 정부와의 관계 악화로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철수하자 일부 사람들은 바이두를 두고 “호랑이 없는 곳에 토끼가 왕 노릇을 한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실제로 현재 바이두의 검색 점유율은 80%를 넘어서고 있다. 현재 바이두는 중국 검색사이트 시장을 80% 이상 독점하고 있다. 4억5천만 명의 중국 이용자들이 인터넷 시작화면으로 바이두를 켜놓는다는 의미다. 심지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바이두이샤’는 ‘검색해봐라’라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다. 일각에서는 “구글이 중국에서 퇴출되지 않았다면 시장점유율 1위는 어림도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왜 유독 바이두가 크게 성공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단순한 집중과 수평적 기업문화 ‘강점’


  바이두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바로 ‘단순한 집중’이다. 리옌홍은 어떤 창업자보다 단순함을 강조했다. 인터넷의 핵심은 ‘단순한 서비스’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하기 때문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널리 알렸다. 원래부터 리옌홍은 관심을 두는 곳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그러나 그 밖의 것은 과감히 버렸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는 성격은 경영철학의 바탕이 됐다. 그의 경영철학은 “목표를 정했으면 바로 행동하고, 시류에도 흔들리지도 동요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리옌홍은 2008년 베이징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사람이 살면서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며 “한 가지에만 미쳐야 남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수평적 기업문화도 성공비결로 꼽힌다. 바이두 직원들은 딱딱한 직함 대신 중국어 이름이나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심지어 리옌홍 마저 직원들에게 사장님이 아니라 로빈으로 불린다, 아무리 IT기업이지만 위계질서가 뚜렷한 중국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또 리옌홍은 직원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최우선으로 여겼다. 리옌홍은 “바이두의 서비스 상품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 동원되는 아이디어 중에 위에서 아래로 하달되는 경우는 전체 20%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는 회의 때도 마찬가지다. 리옌홍이 말하는 중간에라도 누구든 이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할 수 있다. 상하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는 직원들의 사고를 유연하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촉진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동종업계의 평가다. 


  바이두는 최근 돌변하고 있다. 모바일 검색시장을 잡기로 한 것이다. 리옌홍은 지난해 6월 “모바일은 아직 바이두의 수익 모델이 아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180도로 바뀌어 모바일 시장 공략에 나섰다. 리옌홍은 지난 7월 24일, 2분기 실적발표 자리에서 “전 세계에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 바이두보다 더 많이 투자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특히 전반적인 모바일 전략에서 올해와 내년은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두는 모바일 검색을 통해 모바일 광고와 게임시장도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구글을 모델로 검색 시장에 뛰어 들어 구글을 넘어서려 하고 있는 바이두. 리옌홍 회장과 바이두의 약진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전 세계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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