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 실현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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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05.2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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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민족주의 정당 득세, 유럽연합 존립 ‘흔들’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하나의 유럽, 실현될 것인가


극우민족주의 정당 득세, 유럽연합 존립 ‘흔들’





유럽연합(EU) 통합의 시금석이 될 유럽의회 선거가 지난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EU 전역에서 실시됐다. 1979년 첫 번째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 이후 8번째인 이번 선거는 EU 통합 과정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한 장기 경기침체 이후 첫 유럽의회 선거로 반(反)유로화, 반이민을 내건 극우파 정당의 대거 약진이 예상되는 속에 우크라이나 사태, 유럽은행 통합, 저탄소 에너지 정책 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이번 선거는 EU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권력 수장인 집행위원장 등 지도부 대폭 물갈이


  유럽의회는 EU 28개 회원국의 유권자 5억여 명을 대표하는 의회로 EU 주요 기구 가운데 유일하게 직접 선거로 구성되는 대의기구다. 유럽의회는 과거에는 EU 집행위원회, EU 이사회 등 다른 기구보다 영향력이 약했지만 2009년 EU의 헌법 격인 리스본 조약 발효를 계기로 입법, 예산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확보했다.


  이번 선거에는 EU 28개국에서 약 3억8천200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해 75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임기 5년의 유럽의원 의석수는 국가별 인구에 비례해 할당된다. 총 751석 중 인구가 많은 독일이 96명, 프랑스가 74명, 영국과 이탈리아가 각 73명을 차지한다. 인구가 적은 키프로스 몰타 룩셈부르크에서는 6명씩 선출된다. 리스본 조약이 발효된 2009년 12월 이후 처음 실시되는 이번 선거로 구성되는 8대 유럽의회는 권한과 기능이 강화됨으로써 향후 5년간 EU의 정책 방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회 선거는 각국 선거법에 따라 개별 국가 단위로 시행됐다. 이번 선거는 지난 5월 22일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 23일 아일랜드, 체코(24일까지), 24일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몰타에서 실시된 상태다.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나머지 21개 회원국에서 일제히 선거가 실시되고 일찍 투표가 끝난 회원국의 개표 결과도 마지막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유럽의회 선거관리위원회는 25일 투표 종료 이전에 개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투표를 마친 나라의 결과가 다른 나라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선거 결과와 EU 행정권력의 수장인 EU 집행위원장 선출을 연계하는 직선제 효과를 가미함으로써 역대 어느 선거보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았다. 리스본 조약에 따라 회원국 간 협상으로 지명하던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반영해 선출하는 것이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변화다. 1979년 첫 유럽의회 선거 실시 이후 처음으로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집단 후보가 집행위원장에 오르는 것이다. 


  EU 집행위원 상당수와 유럽의회의 주요 교섭단체 대표 및 상임위원장 등도 대폭 물갈이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회 선거 이후 EU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식, 비공식 움직임이 숨가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인 지난 5월 27일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정상들과 비공식 회동을 하고 집행위원장 선출 방안을 논의했다.


  EU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는 물밑 접촉을 계속하면서 7월 중순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의 후임을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집행위원장 지명자는 유럽의회에서 과반수(376명)의 동의를 얻어 집행위원장으로 확정된다. 새 집행위원장은 11월1일 취임한다. 또한 각국 정당들은 정파 구성 협상을 통해 6월 중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다. 이어 7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8대 유럽의회 첫 번째 회기에서 유럽의회 의장이 선출될 예정이다.


▲유럽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사진은 EU 각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연합 정상회의(European Council)의 2011년 회의 당시 각국 정상들의 모습




각국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역할도


  유럽의회에서는 중도우파 유럽국민당그룹(EPP), 중도좌파 유럽사회당그룹(S&D) 등 7개 범국가적 정치그룹이 유럽 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반영해 왔다. EPP에서는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 S&D에서는 독일 출신인 마르틴 슐츠 현 유럽의회 의장이 집행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 달 5월 15일에는 처음으로 5개 정당그룹을 대표하는 집행위원장 후보들의 TV 토론이 유로비전을 통해 30여 개 유럽 국가에 생중계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슐츠 의장은 EU의 일률적인 예산 삭감 정책이 실수였다고 인정하고 탈세범 추적을 위한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스 급진좌파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EU의 긴축 정책은 그리스의 사회적 비극을 가져온 재앙이었다. 유럽 어떤 곳에서도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지정학적 슈퍼 파워로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를 제지하려는 EU의 우크라이나 사태 외교정책을 놓고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유럽의회 선거는 각국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9년 발생한 유로존 위기로 EU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반EU, 반이민, 반유로화를 내건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표심이 쏠릴지가 관심거리다. 영국 독립당(UKIP)과 프랑스 국민전선(FN) 등은 사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독일 헝가리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서도 극우정당이 유럽의회에 대거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싱크탱크 ‘오픈 유럽’은 이번 선거에서 EU의 통합 정책에 반대하는 정파들이 최대 30%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1979년 처음으로 유럽의회 선거가 치러진 이후 극우그룹은 한번도 원내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번에 여론조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 대약진이 아닐 수 없다.





거센 극우 민족주의 물결에 험난한 앞길  


  이번 선거 결과를 앞두고 유럽의회 의사당(프랑스 스트라스부르와 벨기에 브뤼셀)은 극우파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채비를 하고 있다. 통합 유럽의 상징인 유럽의회가 반(反)EU를 기치로 내건 극우주의자들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회 선거 이전 일찍부터 극우 정당들은 인기몰이를 했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덴마크에선 제1당을 굳혔거나 선두를 다퉜고, 오스트리아·그리스·헝가리·핀란드에서도 주류 정당을 위협할 정도의 상승세를 보였다.


  영국의 극우 독립당(UKIP)은 제1야당인 노동당과 집권 보수당을 2, 3위로 밀어내고 선두에 올랐다. 지금까지 영국 하원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정당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UKIP는 영국의 EU 탈퇴와 강력한 이민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도 중도우파 야당 대중운동연합(UMP)과 치열한 1~2위 각축을 벌이고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 사회당은 3위로 처졌다. 네덜란드 자유당과 덴마크 국민당도 1위 자리를 넘본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헝가리의 반유대주의 요비크,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은 선두권을 위협하고 있다. 극우파는 아니지만 이들과 함께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정당들도 강세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신생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오성운동, 그리스의 급진 좌파 연합인 시리자 등이 대표적이다. AfD는 독일의 유로존 탈퇴를 요구하고, 오성운동은 기성 정치를 전면 부정한다.


  이들 반EU 정당들은 처음으로 원내 교섭단체 구성을 노리고 있다. 교섭단체 구성은 28개 회원국 중 7개국 이상에서 25명의 의원을 확보하면 가능하다, 프랑스 국민전선 당수 마린 르펜은 극우파 규합에 앞장서고 있다. 르펜은 지난해 11월 네덜란드를 방문해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스 당수와 유럽의회 선거 연대 방안에 합의했다. 르펜은 비슷한 이념을 가진 오스트리아·이탈리아·벨기에·스웨덴·리투아니아 정당들과의 협력에도 나서고 있다.


▲극우민족세력의 득세로 EU의 앞날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의 본부 건물.




EU 탈퇴, 유로화 폐지…다시 떠도는 민족주의의 망령


  극우파의 유럽의회 진출은 그렇지 않아도 분열 양상을 보이는 EU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 수 있다. 유럽의회가 파멸적인 재앙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먼저 유럽의회 무대가 반EU세력의 정치 선전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들이 입법 활동보다는 이데올로기 투쟁에 치중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유로존의 재정·경제위기와 이에 따른 높은 실업률은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발호하는 토양이 됐다. 이는 반이민 정서를 확대 재생산했고 외국인 혐오증까지 불러들였다. 반EU 정당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EU 탈퇴나 해체, 유로화 폐지, 이민 규제 강화, 반이슬람, 국경 통제 강화 등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외적으로는 EU와 미국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필요할 경우 극우파가 반EU적인 좌파 정당들과도 연합해 협상 속도를 늦추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협상을 무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회에서 아직은 다수를 이루게 될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이러한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에서처럼 좌우 대연정을 펼치는 상황도 예상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회 내 극우파 연합 전선이 거꾸로 개별 국가의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날로 높아가는 극우파의 지지율을 의식한 중도 성향의 우파를 비롯해 거의 모든 정파가 앞 다퉈 우경화 정책을 양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발언권이 세지는 유럽의회의 파워를 무력화하는 것도 극우파의 주요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유럽의회는 이번에 처음으로 유럽집행위원장을 선출하는 것을 물론, 1355억 유로(약 190조5000억원)에 달하는 EU 예산 편성과 유로존 개별 국가에 대한 감독, 그리고 구제금융 펀드 조성 등에 대한 발언권도 가지고 있다. ‘트로이의 목마’처럼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유럽의회 내부로 들어가 유럽의회와 EU 해체를 노릴 수 있다는 예측은 여기에서 나온다.


  유럽은 지난 500년간 민족국가로 나눠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을 벌여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인 나치즘과 파시즘의 파멸적인 행태를 지켜봤다. 유럽 시민들이 1951년 4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공동 화폐인 유로화 도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유럽을 만들려는 것은 민족주의가 빚은 참극을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런 유럽에 민족주의라는 망령이 다시 떠돌고 있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유럽의회를 휘젓고 다니게 될 EU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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