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Policy] 전쟁할 수 있는 일본
노골적 ‘보통국가론’… 지역 패권 국가로 재도약 꿈꿔
중국과 북한 위협 지목하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15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현행 평화헌법 9조의 해석을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공식 표명했다. 헌법 9조는 일본의 군대 보유와 전쟁을 통한 분쟁 해결을 금지한 규정이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 배경으로 “남중국해에서 힘을 배경으로 한 일방적 행위에 의한 국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중국을 겨냥했다. 이 같은 일본의 시도는 동북아의 외교·안보 전반에 큰 파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 노련해진 아베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화한 15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헌법 해석으로는 우리의 자녀, 손자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며 "필요성이 인정되면 각의(閣議 : 각료회의,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 해당) 결정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아베 총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마친 오후 6시 정각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 국민 여러분께 직접 설명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해외에 150만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 갑자기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군 함대가 일본인을 이송하다 공격을 당해 일본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무력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자위대는 일본인이 탄 미군 함대를 지킬 수 없다. 이게 현행 헌법의 해석이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엄마 아빠 손자 손녀 그리고 친구가 이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며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그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 무장세력이 공격을 해도 자위대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며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이어갔다.
정치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노련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차 아베 내각 때(2006년 9월∼2007년 9월)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과 개헌을 밀어붙이다 참의원 선거 대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2차 내각에선 여론의 향방을 봐가며 능수능란하게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앞서 아베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 간담회’는 이날 집단적 자위권 추진 사례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간담회 보고서는 한정적인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와 절차를 담았다. 구체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 보호 및 미군 지원 방안이 집중 거론됐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무력으로 반격하는 권리다.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이 공격받을 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정당방위’ 성격의 개별적 자위권과 함께 국가의 고유 권리라고 유엔헌장 51조가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수방위(專守防衛·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한해 방위력을 행사)’를 원칙으로 해온 일본 안보정책이 69년 만에 일대 전환한다는 예고로 받아들여진다. 미국과 함께라면 일본이 일정 조건 아래서 다른 나라처럼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사적 ‘보통국가’로 거듭나는 셈이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신념인 ‘전후체제 탈피’에 한발 더 다가서는 것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 배경으로 중국의 위협과 함께 “북한 미사일은 일본의 대부분을 사정권으로 하고 있고 북한은 핵무기도 개발하고 있다”며 ‘북한 위협론’을 지목했다. 일본 언론들은 올여름쯤 해석 변경에 성공할 경우 연말까지 자위대법 및 미·일 방위지침을 개정해 집단 자위권 행사에 필요한 법적 기반을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본이 다시 전쟁하는 나라가 된다는 주장은 오해”라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 억지력이 높아져 일본이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적어진다고 주장했다.
관제(管制) 자문기구 의견이 근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들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쟁 억지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그는 자신의 사적 자문기구인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가 제시한 보고서 내용이다. 이 자문기구는 아베 1차 정권(2006∼2007년) 때도 활동해 2008년 1차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아베 정권의 재집권으로 지난해 2월 부활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는 기구인 데다 14명의 위원 전원이 강연회나 논문 등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혀 ‘관제(管制) 협의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조직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가 제시한 보고서 내용 모두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단 그물을 넓게 던진 뒤 제한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자문기구는 이번에 구체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집단 안전보장, 그레이 존(회색지대) 사태 등 3가지 범주에 대한 자위대의 역할 확대 사례를 제시했다. 또 6개의 자위권 행사 절차도 내놓았다. 주변국을 의식해 각 사례에 해당하는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해당하는 절차가 모두 충족됐을 때만 자위대를 출동시키겠다고 했다.
보고서 내용 중 그레이 존 사태란 무장한 중국군이 어민으로 위장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상륙했을 때 경찰력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시나리오를 상정한 것이다. 중일 간 무력 충돌도 불사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동중국해의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 기본적으로 중국 포위망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적극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한 장치가 집단적 자위권이다. 쉽게 말해 미국을 위해 보다 많은 군사적 역할을 하겠으니 유사시 일본을 확실히 지켜주고 중국의 확장을 미일 동맹이 힘을 합쳐 억제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을 지렛대로 안보 우산이었던 미국이 쇠퇴하는 것에 미리 대비한다는 포석도 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궁극적으로는 전후체제 탈피를 통해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달성하고 지역 패권 국가로 재도약한다는 정치 철학을 감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