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6·4 지방선거
安 무공천 철회의 대안은 ‘개혁공천’
출마자 불신·거부감…野 내홍은 수렁 속으로
[Politics] 6·4 지방선거
安 무공천 철회의 대안은 ‘개혁공천’
출마자 불신·거부감…野 내홍은 수렁 속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물어 기초선거 후보를 공천하기로 당론을 번복하면서 무공천 소신에 정치생명까지 걸겠다던 안철수 공동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일단 안 공동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된 대표직 사퇴는 보류하는 대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매진하겠다"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약속과 신뢰라는 새정치의 원칙이 훼손된 만큼 리더십 타격은 불가피하게 됐다. 여기에다가 회심의 카드로 제시한 ‘개혁공천’도 당내·외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공천 철회 “국민과 당원 뜻 따르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4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때 당 소속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했던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 4월 10일 “국민과 당원의 뜻에 따라 지방선거에서 기초 단체장·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을 하기로 했다”며 “저희들마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무공천 철회 방침은 전날 이뤄진 일반 국민 여론조사(50%), 전 당원 투표(50%) 결과 ‘공천해야 한다’(53.4%)는 견해가 ‘무공천’(46.6%)보다 높게 나타나자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한길 공동대표와 함께한 회견에서 안 공동대표는 “이번 투표에서 나타난 당원의 뜻은 일단 선거에서 이겨 정부·여당을 견제할 힘부터 가지라는 명령”이라며 “오늘 이후 당원의 뜻을 받들어 선거 승리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흘리겠다”고 말했다. 안 공동대표는 또 “많은 분이 새누리당이 공약을 파기한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만 무공천을 하면 궤멸적 패배를 당할 것이라고 걱정했다”며 “정치인 안철수의 신념이 당원 전체의 뜻과 같은 무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무공천 철회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무공천 방침 철회를 두고 새정치민주연합 내 의견은 분분하다. 무공천을 주장해온 한 재선 의원은 “지역구에 걸려 있는 ‘새정치는 약속이다’의 현수막을 찢고 싶다”며 “안 대표를 불러다 놓은 뒤 강경파가 흔들었다”고 비판했다. 반면 무공천을 반대했던 진성준 의원은 “당원과 국민의 판단으로 당의 입장이 최종 정리된 만큼 이제는 선거 승리를 위해 뛰어야 한다”고 환영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은 “철수를 안 한다는 안철수는 실제로는 철수였다”며 “공천하지 않는 것이 새정치라더니 공천을 하기로 했으니 구정치로 돌아간 것”이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호 2번’의 프리미엄 회복 VS 당 정체성 치명타
여야가 결국 정당 공천을 결정하면서 선거판도가 여야 1대 1 양강구도로 재편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결정으로 실리를 챙겼다. 그러나 야당이 이번 선거에서 활용하려던 ‘약속 파기’ 대 ‘약속 이행’ 프레임이 깨진 데다 ‘새 정치’라는 신당 창당의 명분도 퇴색돼 이번 선거의 유·불리를 판단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일단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 철회로 지방선거에서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됐다. 무공천 원칙을 고수했다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기초선거 출마자들이 집단 탈당해 제1야당의 특권으로 불리는 ‘기호 2번’을 사용하지 못할 뻔했다. 무소속으로 신분이 바뀌는 새정치민주연합 출신 후보들은 다른 정당들 기호에 밀려 5번 이후의 번호를 배정받아야 할 형편이었다. 따라서 개인의 인물 경쟁력보다 정당 지지도에 좌우되는 기초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쪽 출마자들이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은 물론 유권자들에게 막대한 혼선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후보를 공천하기로 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서울 등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이전보다 유리해졌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최악의 성적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에서 전화위복이 됐다”고 말했고, 배종찬 리서치 앤 리서치 본부장도 "기초선거에서 불리한 환경이 해소되면서 박빙의 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됐고 특히 수도권 현직 기초단체장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환경이 유리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새누리당에 비해 기초선거 공천작업이 한 달 가까이 늦어진 데다 구 민주당 출신과 안 공동대표 측 후보들 사이에서 공천작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그동안 무공천을 고수한 탓에 공천 룰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시간 단축을 위해 광역선거 룰을 그대로 적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룰을 정하는 대로 시·도당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후보관리위원회, 재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 등 의결기구를 구성하고 바로 후보자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이 충분한 준비를 거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공천 작업이 졸속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공동대표 측 인사들이 기초선거에서도 ‘5대 5 원칙’ 혹은 일정 정도의 배려를 요구하고 구 민주당 측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양측 후보 간 싸움이 격화되면서 유권자의 실망감이 커지면 당 지지율 자체가 떨어질 수 있어 선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획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安, 정치 입문 후 최대 시련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천으로 ‘U턴’하면서 무공천을 주장했던 안 공동대표는 정치권 입문 이후 최대 시련에 직면하게 됐다. 안 공동대표는 한때 “대표직을 걸겠다”면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안 공동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새정치와 신뢰 이미지는 일정 부분 훼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공천 방침 철회 발표 후 안 공동대표 홈페이지 속 ‘응원 한마디’에 게재된 글 중에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여당의 당당함을 따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이 많이 있음을 생각하시고 앞으로 전진하라”며 격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한편 “새정치는 오늘 장례식을 치렀다”, “그동안 희망고문 감사했다”는 비난의 글도 눈에 띄었다.
안 공동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세간의 관측과 달리 지방선거 승리에 매진해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번 입장 번복에 대한 책임과 평가를 지방선거에서 받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안 공동대표의 당대 장악력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의 위상이 흔들린 가운데 무공천 재고를 주장해온 친노(친노무현)계의 부활로 당내 세력다툼이 표면화될 것이란 평가다. 실제로 친노계 문재인 의원은 6.4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합하자고 강조하며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지난 대선 당시 무공천 공약을 냈던 민주당 후보였던 문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결과적으로 기초공천 폐지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저희 당 단독으로라도 무공천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돼 더욱 송구하다”고 말했다. 공약을 내놨던 장본인으로서 사과를 한 셈이지만 당력이 당분간 선거체제로 급속 전환된다는 점에서 당내 세력 재편의 기간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더불어 안 공동대표의 정치적 성향과 당심 간 차이가 있다는 점이 이번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안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입장번복에 대한 사과 대상을 국민보다는 당원이라는 단어로 대부분 갈음했다. 이번 기초선거 공천 여부 관련 당원투표 및 국민여론조사에서 당심이 국민여론에 비해 공천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공동대표가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당심을 끌어 모으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설명이다.
무공천 철회 복안 ‘개혁공천’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한 것을 만회하는 복안으로 ‘공천개혁’에 힘을 쏟고 있다. ‘이기는 것이 좋은 것’이란 안일함을 떠나 부적격자는 철저히 검증해 솎아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실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 철회를 발표한지 다음날 11일 안철수, 김한길 공동대표와 정세균 문재인 정동영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 역대 대선후보·주자들이 참석한 ‘무지개 선대위’ 첫 회의를 열고 개혁공천을 다짐했다. 안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지금까지 혼선은 어제 내린 눈일 뿐”이라며 “이제 눈은 깨끗이 녹아내리고 앞으로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울 일만 남았다. 기초선거 공천에 대한 논란을 모두 덮고 앞만 보고 나가자”고 말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6`4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공천을 두고 중앙당에 ‘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를 구성, 강도 높은 평가와 공평무사한 공천을 14일 약속했다. 자격심사위원장은 천정배 전 의원이 맡았고 민주당 출신의 노옹래 사무총장, 최원식 전략기획위원장, 진선미 의원이 포함됐으며 안 공동대표 측에선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김윤 전 서초을 지역위원장이 선임돼 7명으로 구성됐다. 보통은 시·도당에서 기초단체장 공천을 주도해왔는데 중앙당이 ‘공천 거름종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현역 단체장 물갈이가 예고되는 부분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자금법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뇌물 수수 등 행정을 집행하기에 부적합한 범죄 경력이 있는 자는 공천 대상에서 일괄적으로 배제한다. 본인뿐 아니라 친인척 비리까지 들여다본다. 또 대법원 형이 확정되기 전이더라도 1심에서 유죄를 받았다면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안도 고심 중이다. 현역 단체장에 대해선 만족도와 후보 경쟁력을 조사해 학점을 매기는 평가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도덕성과 행정력, 주민 만족도 모두 묻겠다는 얘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은 특히 지방선거 기초단체장과 시의원 후보 공천에 다면평가 방식을 도입, 현역 20% 이상을 교체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과 서울시당 오영식 위원장은 4월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격한 기준과 원칙, 민주적 경선 등을 통해 당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분을 찾고, 능력, 자질, 도덕성을 모두 갖춘 최적 최강의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혁공천 내부갈등 표면화 ‘난항’
새정치민주연합이 6·4지방선거 공천 문제의 늪에 빠져 ‘도로 민주당’ 입구까지 갔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무공천 논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지도부가 꺼낸 ‘개혁공천’ 카드가 당내 갈등만 노출시킨 데다 이를 수습해야 할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도 결단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균환 최고위원은 4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정작 우리 본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대단히 안타깝다”며 “공천 과정이 국민한테 또 실망을 줄 위기를 맞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역단체장 17곳 중 아직 광주시장과 전남·북 도지사 등 3곳의 공천 룰을 확정하지 못했다. 당 공천위원회가 호남 지역 공천 방식에 대한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했지만 논란이 제기되면서 최종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무공천 터널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지도부는 개혁공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곧바로 당내 반발에 부닥쳤다. 광주 지역 현역 의원 5명이 윤장현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과 관련해 다른 광주시장 후보들은 경선 보이콧, 탈당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전략공천을 바라지 않는다”며 경선 참여 의사를 밝히며 정면 승부를 공언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도부의 한 핵심 의원은 “계파가 전혀 다른 광주 의원들이 논란을 무릅쓰고 윤 후보를 지지한 것은 일종의 ‘용단’인데 두 대표가 이를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초선거 공천 권한을 누가 갖느냐를 두고는 지도부와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거친 언쟁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기에다 노웅래 사무총장 명의로 시·도당 공천관리위원회에 ‘현역 의원은 위원 총수의 3분의 1을 넘지 말도록 하라’는 취지의 공문이 발송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도부 대 시·도당’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갈등이 계속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창당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 발표한 조사(전국 1203명, 95%신뢰수준, 표본오차 ±2.8%, 응답률 17%)에서는 26%까지 내려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북한 무인기 추락 등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하지만 당내 공천 논란으로 뚜렷한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