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tion Politics Ⅲ] 이념적 붕당정치
대립과 경쟁 통한 올바른 이념 확립 필요
진보와 보수, 살얼음판 위에 선 대한민국 정치
조선시대의 붕당정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난립하고 있다. 혹자는 의미 없는 다툼이며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인 지역대립을 야기한 주범이라고 평하며 조선의 붕당이 후에 예송논쟁으로 변질되어 정치가 민생과 동떨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이는 붕당이 국가 발전에 있어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이런 붕당이 서로 다투면서 발전해나가는 것을 통해 정치론들이 입안되고 거기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다. 붕당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정치로의 발전에 붕당정치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확연한 사실인 만큼 이제는 새로운 시각으로 붕당정치를 보아야 할 때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평가 가능
정치는 보는 시각과 그 개인의 이념에 따라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구한말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양반은 생업을 위해 일하지 않으며 친척들의 부양을 받는 것이 전혀 수치가 되지 않고, 담뱃대조차 자기 손으로 가져오지 않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라고 했다. 청교도적인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 눈에는 분명 비이성적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500여 년 동안 지탱해온 조선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자문화중심주의로 본 시각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의 망국 이유로 ‘붕당’을 꼽았다. 일본은 칼이 지배하는 사회인만큼 조선시대 붕당의 명분이나 의리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해 오직 소모적이며 망국적인 행위로 평가했다. 이런 일본의 평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이것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하기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다고 말한다. 한 역사학자는 이를 “조선이 멸망한 것은 당파싸움 때문이라는 논리로 한국인들에게 자국의 역사를 부끄럽게 여기게 함으로써,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일제의 강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당파 싸움의 부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붕당정치는 오늘날의 정치현상과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동양사상 전문가는 조선의 붕당정치를 두고 “정치의 의의는 붕당정치가 조선반도에서 새롭게 모색되고 검증을 거쳐 비록 일시적이나마 순기능을 해 한국적 정치모델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현대의 정치체제는 직접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 전환했다. 정당 민주주의에서는 의회 다수당의 의사와 국민의 의사가 동일시되며 그 결과 국민의 의사는 정당에 의하여 형성된다”라 전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국회는 그 자체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며, 국회의원은 정당의 대표자이자 국민의 대표자라고 보아야 한다. 각 헌법기관들은 서로 간에 견제와 비판을 통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점이 조선조의 붕당정치에서 전해 온 중요한 정치원리이다.
붕당정치에서 집권당인 경우 상대당의 공세를 벗어나기 위해 안민책을 내세웠으며 이러한 긴장관계가 조선을 발전시켰고 지탱했었다. 조선의 붕당정치에서도 서인과 동인은 서로의 부패를 감시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예송논쟁으로 변질되어 살육전으로 전개되면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으로까지 등장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조선 전체의 붕당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붕당은 조선의 정치였고 양반 사대부는 그 틀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웠다. 따라서 일본이 강점 논리로 내세운 당파싸움의 부정론으로 조선의 정치를 봐서는 안 된다. 붕당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붕당정치의 당쟁은 현재의 학연?
붕당의 시작 배경은 ‘같은 학문의 흐름과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의 무리’이며 붕당정치는 붕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조선 후기 정치 운영의 한 모습이다. 당쟁은 학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학연이 처음 생긴 것은 고려 말에 있었던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과거의 시험관인 좌주와 그 시험에 합격한 문생은 마치 부자간과 같은 긴밀한 유대를 맺어 학벌과 붕당을 이루는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좌주문생제는 엄밀한 의미에서 학연은 아니다. 단지 제도적으로 과거시험관과 합격자의 정치적 유대관계일 뿐이다. 물론 좌주가 경영하는 사립학교에서 배운 제자들이 과거시험에 많이 합격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과거가 공정하게 실시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쟁과 학연이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사림정치 이후의 일이다. 조선 전기에는 이색, 권근, 변계량, 노수신으로 이어지는 기호계의 관학파와 이색, 길재, 조광조로 이어지는 영남계의 사학파로 구분이 되었다. 이는 16세기 이후 사림정치가 실시되면서부터 기호계의 화담 서경덕 계열, 율곡 이이 계열, 우계 성혼 계열과 영남계의 퇴계 이황 계열, 남명 조식 계열로 나누어졌다. 이 중 화담학통은 여러 당으로 분파되었지만 율곡학통은 서인 중 노론계열, 우계학통은 서인 중 소론계열, 퇴계학통은 동인 중 남인계열, 남명학통은 동인 중 북인계열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들은 스승의 학설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의복이나 의식을 같게 하지 않았고, 후기에는 서로 간의 혼인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부모나 스승의 원수는 자신의 원수라는 생각을 가져 가문 간에 대대로 대립했고, 학통을 바꾸는 것은 반역행위로 여겨져 절대로 축에 끼워 주지 않았다. 이러한 형태가 현대정치의 정당정치로 이어지며 가족주의, 지역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 사회적 투쟁의 모습이 되었다”라고 피력했다. 이어 “붕당정치 대립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에 있었다. 상대 당을 넘어뜨리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거나 약점을 물고 늘어졌으며 자기들의 잘못은 끝까지 덮어두기에 급급하였다. 처절한 당쟁은 학연이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며 학연에 의한 대립은 조선시대 당쟁의 특징이자 현대의 정당과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붕당정치를 기반으로 보다 나은 정치 만드는 ‘온고지신’ 필요해
붕당정치는 긍정적인 기능과 부정적인 기능이 동시에 존재했다. 다만 갈수록 당쟁이 심각해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부각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과거 고려의 ‘삼국사기’, 조선의 ‘고려사’처럼 조선의 몰락에 대해 정치와 문화를 총정리를 해야 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이상무 원장은 “대한민국은 일본의 원시축적과정에 편입되어 뒤늦게 건국되었지만, 해방이 미군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분단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 어수선한 건국 초창기에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재정리할 틈이 없었다”라며 “조선사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로 당쟁의 부정적인 유산마저 그대로 전수되었다”라고 전했다.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옛것의 앎을 통해 새로운 것도 깨닫게 된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은 과거와 역사, 경험의 중요성을 의미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를 오해해 무조건 ‘옛 것이 좋다’는 식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울산대 건축학부 한삼건 교수는 “과거는 미래의 지남(指南)이라 했다. 과거에 걸어온 날을 돌이켜 보며, 이를 통해 미래 발전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정한 온고지신은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 아닌, 과거를 통해 보다 발전하는 미래를 그리는 것이다. 과거의 붕당정치에 있어 순기능이 있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좋지 않았던 역기능에 대해서는 연구를 통해 배제해 보다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치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됨을 넘어 포기하는 지경에 다다른 현대정치의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진보 없는 보수, 보수 없는 진보
붕당정치의 성리학적 이념 대립은 현대정치의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대립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고 볼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한국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이념적 용어들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도 매우 빈번히 거론된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현세대의 한국은 진보와 보수 진영이 없는 것 같다.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 모두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모두 그럴듯한 정책만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정당간의 의미는 퇴색되어 마치 학창시절의 반장선거처럼 대충 뽑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비판한다.
이런 가운데 진보진영에서 많이 지적되는 것은 진보를 너무 진보 일색으로 채우려 하는 ‘총괄성의 논리’ 및 ‘내부 순결주의’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을 구성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과 보수적일 수 있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인데, 진보 진영의 생각이 정치적 표어로 뽑히고 이슈화될 때에 판에 박은 ‘반대’, ‘개혁’, ‘척결’ 일색이다. 즉, 담론화된 진보성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늘날 진보 이념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탈(脫)진보’를 외치는 대표적 학자인 권혁범 대전대 교수는 “예전처럼 민족이나 계급 문제가 최고의 가치라는 식의 절대적인 진리와 목표는 없다. 탈진보가 추구하는 진리와 목표는 구체적인 실천과 노력을 통해 항상 수정되고 재해석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는 것 자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전 강원지사 김진선 의원은 “어느 나라든 이념적 대립은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사생결단식 대립투쟁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념은 진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해야 의미가 있다. 보수도, 진보도 혁신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과거 붕당정치의 좋지 않았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오늘날의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대립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대립과 경쟁을 통해 보다 나은 정책이 탄생할 수도 있지만 현 상황의 정치에서 이를 바라기는 힘들어 보인다. 북한전략센터의 강철환 대표는 “한국 사회에서는 가짜 진보가 판치고 있다. 보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진보는 진보다워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한다”며 “보수와 진보의 시각은 다르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진보와 보수는 상반된 이념이지만 둘 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탄생된 이념들인 만큼 서로간의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비난이 아닌 비판을 통해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바른 정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서로간의 다툼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좌우 양 날개로써 서로 보완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화합정치의 산물 ‘탕평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