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many Ⅱ] 독일경제 지탱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
[Germany Ⅱ] 독일경제 지탱하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3.12.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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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성래 기자]


독일 경제와 중산층의 버팀목, 경제위기 속에도 ‘유럽의 강자’로 자리매김




글로벌 위기 이후 독일이 세계경제의 우등생으로 부상하면서 각국이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어로 ‘사회의 중산층, 또는 중소기업’을 의미하는 미텔슈탄트는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일을 글로벌 제조 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선진국들은 수출 진작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면서 미텔슈탄트 배우기에 나서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최근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줄 대안으로 미텔슈탄트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텔슈탄트(Mittelstand)’

경제위기가 와도 독일이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부자 한명이 아니라 수많은 중산층들이 만들어나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텔슈탄트는 19세기 자영농이 중심이 된 남부 독일에서 발흥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토지분할상속(Realteiling)의 전통으로 개발 농가들이 영세화되면서 소득보전 수단으로 수공업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계층의식 때문에 농지를 떠나 도시 공장노동자가 되는 것을 기피했고, 그 결과 이농 유휴인력 배출이 억제되어 대규모 공장생산방식 대신 다수의 중소 생산자 간 분업시스템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장한 중소 생산자들이 현재의 미텔슈탄트의 근간이 된 것이다.

19세기 영국 대량생산제품의 위협은 독일 미텔슈탄트들이 제품 특화를 통해 틈새시장을 개척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군소국가들로 분열된 19세기 독일에서 지역 간 경제개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현재와 같은 지역 정부 주도의 지원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중소기업은 독일을 세계 주요수출국가로 만드는데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엘리트기업이고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숨은 챔피언입니다.” <히든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은 독일경제의 강점은 중소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은 중소기업들이 세계 1000개의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독일처럼 강한 중소기업은 없다고 전했다.

지몬은 독일 미텔슈탄트의 성공 요인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품질·고가격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해 저임금에 기반한 신흥국의 저가제품을 차별화하고 특화된 제품 생산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한 점을 꼽았다. 사업초기 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지향하고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해외생산에 나서는 등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한 점을 두 번째로, 지역별 클러스터를 형성해 타기업과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숙련기능인력 양성, 기술 표준화 등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간 점을 세 번째로 꼽았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미텔슈탄트를 지원하는 제도와 정책은 물론 미텔슈탄트의 비즈니스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텔슈탄트 성공의 핵심요인은 고도로 특화된 제품생산으로 세계시장에 적극 진출하였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하며, 다른 나라의 중소기업도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으로 ‘한 우물 파기’에 나서고,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한다면 미텔슈탄트와 같은 히든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세계 경제 우등생으로 부상한 ‘독일’

독일은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수출호조에 힘입어 다른 주요 선진국들이 부러워 할 만한 고성장·저실업 상태를 구가하고 있다. 2010~2012년간 독일은 GDP의 6.5%에 달하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것이 경제회복을 견인한 주요한 역할이었다고 독일의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독일의 실질GDP 성장률은 연평균 2.6%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6.2%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2012년의 청년실업률만 보더라도 독일은 8.1%인데 비해 미국 16.2%, EU평균 22.8%로 두 배 이상이 차이가 났다.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찬양을 들었던 독일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기침체가 거듭되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유럽의 병자’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과도한 복지제도, 경직적인 노동시장 등 구조적 문제와 1989년의 갑작스런 통일이 독일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경험하였다. 1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이 유로지역에 미치지 못하는 1%대 초반에 머물렀으며 2001~2005년 중에는 0.6%에 불과했다. 낮은 성장에 따라 실업률은 10%를 상회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경상수지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적자를 지속하였으며 이후에도 몇 년간은 소폭 흑자에 그쳤다. 한 가지 위안은 정부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하였다는 것이다. 독일이 이렇게 우등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근원은 무엇보다 착실한 구조개혁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한 것에 있다. 독일 정부는 조급하지 않게 사회보험 및 노동시장 개혁, 제조업 위주의 경쟁력 강화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또한 옛 동독지역의 낮은 임금수준 및 유럽통합에 따른 수요확대 등을 경쟁력 회복의 기회로 활용하였다.

뮌헨대학교 피르니 라이히 교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미텔슈타트’기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 대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며 노동자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희생을 감내하며 동료들의 해고를 막았다.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로 내수침체를 막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기가 수습된 이후 경기회복세에도 빨리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2003~2006년간 도입된 ‘하르츠개혁(Hartz reform)’은 기업의 고용유연성을 제고하고 유휴인력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했다. 기업 간 노사가 고용 유지와 임금인상 억제를 합의하는 ‘양보교섭(Concession bargaining)’ 확산으로 기업과 노사 간의 안정을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독일 기업에는 노조가 없다. “BMW의 성공은 노사가 ‘서로 함께한 결과’이지, ‘서로 대치한 결과’에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한 BMW 경영진의 말이다. 브랜드 가치 218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자동차 브랜드 BMW는 1993년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노사가 함께 논의 한 결과, ‘근로시간계좌제’를 만들어 위기를 극복했다. ‘근로시간계좌제’란 호황기에는 초과 노동시간을 저축했다가 일이 없는 불경기에 직장에 나오지 않고 저축한 노동시간에 준해 임금을 받는 시스템이다. BMW의 경쟁력은 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에어백과 안전벨트를 납품하는 하청업체 ‘오토리브(Autoliv)’ 역시 BMW와 비슷한 수준의 임금과 대우를 받는다. BMW와 동등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공정한 가격으로 제품을 납품하며, 새 모델을 출시할 땐 초기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BMW와 하청업체 모두가 서로의 협력과 상생이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함부르크대 경제학과 베른크 뤼케 교수는 “직장평의회(Betriebsrat)가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조는 아니다. 그러나 개별 기업에 노조원은 있다. 노조원은 산별노조에 가입돼 있고, 산별노조의 단체교섭에 따라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이 결정된다”고 전했다. 독일 기업 노사 협상은 중앙집중식이다. 전국 단위 노동조합인 독일노동조합연맹(DGB) 산하에 8개 산별노조가 있고 산별노조는 사용자단체와 임금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노조의 협상파트너인 사용자단체는 독일사용자단체연맹(BDA)이다. 47개 전국 단위의 사용자연합회로 구성됐다. DGB는 618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으며, BDA 역시 200여만개 기업을 대표한다.



독일 경제를 지탱하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들’

유로존 경제위기가 서유럽을 덮쳤을 때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도움을 요청한 국가는 독일 이었다. 이는 유럽연합 경제체제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증표다. 독일은 유럽연합 27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 이다. 독일 연방 재무부와 연방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유로존 위기가 덮친 지난 2010년과 2011년에도 독일은 각각 3.7%, 3.0%의 성장세를 보였고 실업률도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을 경제 강국으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독일이 자랑하는 수많은 중소기업과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이다. 독일의 중소기업 중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강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들이 많다.

중소기업으로 인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도 독일의 강한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독일의 제조업 비중은 26.1%로 영국(16.1%)과 프랑스(14.1%)를 압도한다. 독일 듀스버그에센대 경제학과의 앙거 벨케 교수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은 독일 경제의 심장이다. 중소기업 규모인데도 한국의 삼성전자처럼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이 130여개나 된다. 한국 제조업도 기술력도 상당하지만 독일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독일 경제의 또 다른 원동력은 중소기업의 가족경영이다. 독일 중소기업의 95%는 가족기업이다. 기업 소유자가 직접 경영을 하며 다음 세대로 상속되는 독일 가족기업은 지배구조가 안정돼 있고,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단기 이윤 추구보다 장기 투자와 성과에 집중한다. 이 때문에 독일 중소기업이 세계를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특징으로 가족기업을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전업체인 독일의 밀레(Miele) 역시 전형적인 가족기업이다. 공동 창업자인 밀레(Miele)가문과 진칸(Zinkann)가문이 1899년 이후 4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밀레의 레인하르트 진칸(Reinhard Zinkann) 회장은 밀레의 성장 비결로 품질경영, 무차입 경영 두 가지를 우선 꼽았다. “밀레가 독일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4대째 두 가문 공동경영을 성공적으로 이어온 것은 보완과 견제, 그리고 능력 있는 후계자 양성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진칸 회장은 “저는 마케팅을 담당하고, 마르크스 밀레 공동회장은 기술 부문을 맡는 등 철저하게 역할이 분담되어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 때는 서로 견제하고 규제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장점을 살려 분담했지만 서로 힘을 합칠 부분이 있으면 상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서로 채워주고 서로 규제하는 게 공동경영의 장점입니다”라고 소개했다. 밀레의 경우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한 집안이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부문과 경영부문의 대표를 번갈아 맡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히 후계자인 CEO 선발 과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진칸 회장은 “가족 중 회사에 들어오고 싶으면 경영이나 기술 등 관련된 공부를 하고 한 가지 이상 외국어에 능통해야 합니다. 또 밀레가 아닌 다른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하며 최종적으로 회사와 관계없는 외부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의 인터뷰를 거쳐 적정성 여부를 평가 받습니다”라고 전했다.

연방경제연구소 피르니 프리드리히 소장은 “미텔슈탄트를 빼놓고 독일 경제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제는 경제 성장의 가치를 넘어 그 자체가 독일의 문화이자 역사다”라고 강조했다. 밀레나 독일의 ‘미텔슈탄트 가치(Mittelstand value)’가 이러한 비즈니스 전략을 사회적으로 장려하고 국가 경제의 기반을 다진 것처럼, 한국사회에서도 고유의 중소기업 문화를 발전시키는 사회문화적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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