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역사 새로 쓰는 무티(Mutti) 리더십
유럽 정치역사 새로 쓰는 무티(Mutti) 리더십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3.09.30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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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경제 위기 속, 나홀로 경제 성장 이룩한 독일의 여제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over Story]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난 9월 22일 치러진 독일 총선 결과 집권여당인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압승하며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1954~ ) 총리의 3선 연임이 확정됐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영국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던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1925~2013)’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3선 연임 여성 지도자가 탄생한 것이다.

 

 

가난한 목사의 딸에서 독일 최초·최장 여성 총리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했다.

2017년까지 예정된 임기를 모두 채우면 대처의 기록을 넘어 유럽 최장수 총리의 기록도 세우게 된다. 1949년 서독 지역에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60여 년 동안 역대 총리는 초대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1876~1967)부터 지금의 앙겔라 메르켈까지 모두 9명이다. 3선에 성공한 총리는 아데나워,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 ), 메르켈 셋뿐이다.

1954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메르켈은 열세 살 때부터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독립해 생활하기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고 차분하며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민주변혁에 가입하면서 과학자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발탁으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시작으로 기민당 부당수, 환경부 장관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이력을 쌓았다. 그리고 2005년 동독 출신 여성 정치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정치 입문 15년 만에 독일 총리에 올랐다. 통일독일의 첫 동독 출신 총리,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 등 수많은 최초·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며 독일의 정치사를 새로 썼다.

 

 

 

실용주의 노선 발판으로 재정위기 극복

가난한 목사의 딸이며, 동독 출신에 이혼 경력까지 있는 그야말로 ‘변방인’이었던 그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 전문가들은 첫째로 그의 깨끗한 이미지를 꼽는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산당원으로도 활동했지만 동독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상적으로 전향했다. 이후 통일을 바라는 민주 개혁 운동에 앞장섰고, 통일 후 연방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때마침 동독 출신의 새 인물을 찾던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눈에 들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그의 진가는 콜 전 총리의 비자금 사건 때 발휘된다. 1999년 비자금 사건으로 기민당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 그는 ‘정치적 양부’로 불렸던 헬무트 콜과의 단호히 결별을 선언하고 공개적으로 그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차기 총리 후보들에 의해 임시대표로 뽑힌 그는 콜과의 결별을 통해 어수선한 당 내부를 수습하고 성공적으로 재건했다는 평을 받으며 2000년 4월 첫 여성 당수가 됐다.

과학자답게 치밀하게 계획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정치스타일도 성공 요소다. 그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단계를 밟아가는 신중하고 실용적인 지도자로 꼽힌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메르켈에게 ‘메르키아벨리(Merkiavelli)’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메르켈과 현실주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합친 말이다. 그는 말수가 적으며 실수를 잘 하지 않고, 중대한 일을 판단할 때도 충분한 자문을 거쳐 결정한다. 이 같은 리더십은 2011년 하반기 불거진 그리스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연정 내 불협화음을 잠재우면서 긴축 중심의 위기 극복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소통과 화합의 조용한 리더십으로 EU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반면 그의 실용주의 노선은 재정 위기에 빠진 스페인과 그리스에 “긴축 없인 재정 지원도 없다”라며 단호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겉치레를 모르는 직설화법은 지난 2005년 총선기간 슈뢰더 총리와 맞붙은 자리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총리, 거짓말하고 있군요”, “약속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을 어겼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실업자 500만 명을 쏟아낸 슈뢰더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실용주의와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독일 국민에게 이러한 모습은 새 시대의 정치인이 갖춰야 할 미덕으로 비춰지며 당시 역사적인 첫 승리를 일궈냈다. CNN은 메르켈 리더십의 비결을 분석하면서 “정치인의 지루한 스타일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독일 국민성과는 잘 들어맞는다”고 지적했다.

  

따뜻함을 겸비한 독일판 마가렛 대처

유럽을 좌지우지하는 여성 지도자라는 점에서 그는 마가렛 대처와 비교되기도 한다

. 두 여성 모두 목사의 딸과 식료품점의 딸이라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결국 최초의 여성 국가지도자 자리에 올랐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각각 최초의 여성 총리에 등극했을 뿐 아니라 3선에 성공한 점도 유사한 모습이다. ‘철의 여성’ 대처에 이어 메르켈도 ‘독일판 철의 여성’이라고 불리는 등 재임기간에 남성 못지않은 강인한 정치적 역량을 보여줬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끈기와 결단력으로 권력 쟁취에 성공한 우파 정치인이라는 점 역시 닮은 모습이다.

하지만 대처 전 총리가 비타협 강경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메르켈 총리는 통일 독일의 화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따뜻한 보수주의자’라고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메르켈 총리는 여당 야당을 가리지 않는 정책 채택으로 호평 받고 있다. 또한 유럽 통합에 강력히 반발한 대처와 달리 현재 유럽연합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메르켈의 모습은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독일 언론들은 그가 가진 '검소함과 소탈함의 이미지'가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고 분석한다. 한 언론은 “독일인들은 메르켈의 권력있다고 티내지 않고, 돈을 아끼는 슈바벤 지역 주부스타일의 검소함을 좋아한다”면서 “메르켈은 권력을 가진 것을 특별하지 않은 일로 바꿔 놓았다. 권력을 과시하지 않지만, 힘을 가졌다”고 호평했다. 실제로 메르켈이 처음 정계에 데뷔했을 때 언론은 “유머 감각도 없는 촌스러운 동독 아줌마”라고 비아냥댔다. 싹둑 자른 단발과 촌티 나는 ‘옷발’에 잘 웃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런 그를 꼬집어 ‘무티(Mutti, 어머니)’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총선을 앞두고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등의 머리를 매만진 유명 스타일리스트 우도 발츠의 손에 힘입어 탄생한 자연스러운 커트머리와 세련된 옷차림은 그의 이미지를 ‘세련된 카리스마를 가진 여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무티’라는 별명도 더 이상 모욕적인 말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해외출장을 앞두고도 남편의 아침식사를 꼭 챙기고, 주말 별장에서 키운 채소로 친구들을 대접하며 농담까지 즐기는 소탈한 면모와 어울리며 화합과 포용력을 갖춘 ‘엄마 리더십’의 상징적인 단어로 변모했다.

 

  

 

 

  

긴축과 감세 정책으로 경제 안정화 우선 삼는다

메르켈이 집권한 2005년만 해도 독일은 10%가 넘는 고실업률, 재정악화, 빠른 고령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독일은 이제 유럽연합(EU)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때문에 메르켈 총리가 EU의 비공식 회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갈수록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 전체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그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명단에서 2010년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에게 1위 자리를 한 차례 내눈 것을 제외하고는 2006년부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번 연임으로 ‘메르켈 공화국’시대가 펼쳤다는 독일 슈피겔지의 지적이 있을 만큼 메르켈 총리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일각에서는 ‘기민당-기사당의 승리가 아닌 메르켈 개인의 승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메르켈은 치열한 선거 기간 중에도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공약을 전혀 내걸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추진해왔던 긴축과 감세 등 경제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갈 것이라고만 강조하는 것으로 선거 전략을 삼았다. 독일 경제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진정성에 독일 유권자들이 표로 화답한 게 이번 총선이었다.

2005년 집권 이후 그가 보여준 정책도 한결같았다. 전임 슈뢰더 정권이 강도 높게 실시한 노동 개혁 등 각종 정책을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수용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그는 이어 2000년 40%에 달하던 법인세를 2008년엔 15%까지 인하해갔다. 신규 직원의 해고 가능기간을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했고 고령자를 고용하는 경영자를 지원했다. 바이오 기술 등 신규사업에 투자하고 교통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자연스레 기업의 투자는 늘어나고 실업은 줄어들었다. 지금 독일 실업률은 5.4%(6월 기준)로 1990년 독일 통일 후 최저수준이다. 신규 업종인 바이오산업은 매년 10% 이상 인력이 늘고 있다. 물론 고용이 개선되면서 재정도 튼실해져 소득 세수는 늘어나고 실업 급여는 줄어들었다. 독일 야당은 새로운 공약이 없다고 메르켈을 비난하면서 가짓수도 요란한, 거창한 천국행 복지공약을 내세웠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유럽 최고의 권력자로 부상, EU 미래 결정할 지도자

3선 성공으로 날개를 단 메르켈은 선거기간 동안 미뤄 놓았던 독일 사회 및 경제구조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민당과 대연정이 성사될 경우, 긴축보다는 성장 쪽에 무게를 더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 유럽 정책에서는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방안인 재정연합(Fiscal Union), 은행연합(Banking Union) 구성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메르켈의 강력한 긴축 정책 요구에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던 그리스나 스페인 등은 그의 승리에 못마땅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는 3차 금융지원이 절실한 상황으로 이 과정에서도 메르켈 총리의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빠른 위기 탈출과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3차 그리스 구제금융이 신속히 집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메르켈의 승리로 유로존 국가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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