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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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병준 기자
  • 승인 2013.09.26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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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겪고서도 굳건히 일어나 세계 일류로 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슈메이커=박병준 기자]

[Thank U Korea] 땡큐코리아




9월 25일 3년 만에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지기 나흘 전인 9월 21일,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상봉 연기 통보로 60년 동안 생사를 모르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북한은 지금까지도 화전양면전술로 일관하며 적화통일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김신조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아웅산테러, KAL기 폭파사건에 최근 일어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북한의 무력도발은 이어지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국민들의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기도 전부터 이념 갈등을 이어온 대한민국이지만 70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선진국의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성장을 ‘기적’이라고 말하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들은 대한민국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무조건항복 선언에 의해 독립을 이루게 된 대한민국. 그 기쁨을 즐기기도 전에 좌우이념갈등은 한반도와 한민족을 자본주의의 대한민국과 사회주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둘로 나눠버렸다. 그리고 1

950년 6월 25일, 북한은 기습남침을 하며 한반도 적화의 야욕을 드러냈다. 북한은 4일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을 점령하고, 3개월 만에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을 장악했다. 당시 대부분의 산업기반시설은 북한에 위치하고 있었고 군사전력 또한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의 총공세를 대한민국이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자본주의 진영의 수장격인 미국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했고 국제연합군의 참전을 결의했다. 당시 소련이 중국문제로 불참 중이었기에 미국안은 거부권 행사 없이 통과되었고 전쟁은 국제전화(國際戰 化)되었다.

국제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50. 9. 15)으로 서울을 탈환(50. 9. 28)하고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50. 10. 13)했으며,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50. 10. 26)했다. 국제연합군의 북진의 위협을 느낀 중공군의 개입(50. 10. 25)으로 후퇴와 진격을 번갈아가며 38도선에서 전선은 고착화 되었고 소련이 휴전을 제의(51. 6. 23)해 휴전교섭에 들어간 지 2년 1개월 만인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남북은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냈고, 한반도는 피폐화 되었다. 1944년 한반도 총 인구수가 2,592만 명이었다는 것과 남북한 병력이 합쳐서 30만 명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피해가 얼마나 컸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건국과 동시에 이렇게 커다란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1968년 1월 21일 일명 ‘김신조 사건’이라 불리는 1・21사태는 북한의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의 무장게릴라들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을 말한다. 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야간을 틈타 수도권까지 잠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세검정고개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았고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게다가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이 살상 당했다. 군・경이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해 무장공비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당시 생포된 김신조는 그동안 김일성의 허위선전에 속아왔음을 깨닫고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이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 8. 18), 아웅산 테러사건(83. 10. 9), KAL기 폭파사건(87. 11. 29) 등 북한의 무력도발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케 해왔다. 최근 벌어진 천안함 폭침사건(2010. 3. 26), 연평도 포격사건(2010. 11. 23)은 아직도 북한의 침략 야욕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연평도 포격사건은 휴전협정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으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었으며, 국제사회는 북한을 규탄했다.

광복직후 경제력과 군사력이 앞서던 북한이 무력 도발을 통해 힘을 과시하려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에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의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천안함은 폭침이 아니라 좌초된 것이라고 말한 북한은 대한민국내의 종북세력 등과 함께 남남갈등을 부추겼고, 연평도 포격 역시 정당방위였다며 대한민국의 통상적인 군사훈련과 정상적인 포격훈련에 그 책임을 전가했다.


빛나는 경제발전, 세계 속의 대한민국

지금껏 대한민국은 북한의 행위에 반응해줄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힘의 차이로 인해, 현대에

▲50년대 서울(좌) 21세기 서울(우)
들어서는 핵개발을 막기 위해 그들의 억지스런 주장에 하나하나 반응해왔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제 그들에게 휘둘릴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안녕을 위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1945년 광복전후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수명은 44세에 불과했고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문맹이 전체의 77% 수준이었으며, 영아사망률은 인구 1천 명당 102.4명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의 하나였으며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는 황폐화되고 산업기반 시설은 사라졌다.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는 듯 보였다. 미국뿐 아니라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국가로부터도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었다.

그러나 1961년 박정희 정부가 수출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산업화의 본궤도에 올랐다. 선성장・후분배 경제개발정책이 추진되며 1962~1982년 동안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이 8.2%에 이르는 고도성장을 기록하면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963년 농림수산업의 비중이 63.1%를 차지하고 광공업이 8.7%에 그치는 전형적인 농업국가에서 1979년 1차 산업의 비중이 35.8%이 하락한 반면, 2차 산업의 비중은 23.7%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60년대 경공업 지원을 시작, 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의 육성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80년대 이후 높은 경제성장과 산업구조 재편이 꾸준히 지속되었고, 90년대 이후 첨단정보산업과 지식산업,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재편되

▲급성장하는 대한민국 국내총생산(단위 10억 원)
는 후기산업화,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변모했다. 현재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과 경제대국으로 발전해 온 대한민국. 서구 선진국들이 통상 200~300년의 기간에 걸쳐 성취한 산업화를 불과 50년 만에 성공적으로 이룩했다. 이는 세계 근대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최악의 극빈국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외신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쓰레기통에서 피어난 장미’라고 빗대어 표현할 정도다.

그동안 북한은 주체사상이 심화되며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신격화하는데 주력해왔다. 그들이 모두 죽고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지금, 대한민국과 북한은 경제력에서 비교대상이 아닐 정도로 큰 격차가 벌어졌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경제사정이 급속히 악화됐고 국제적 고립까지 겪으며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탈을 막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 최악의 경제상황에 빠진 북한이 자본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김일성종합대 학생 11명은 무기명에 왼손으로 편지를 작성해 김정일에게 보냈으나 김정일은 이에 대해 크게 분노하며 이들 중 자살한 2명을 제외한 9명을 총살시키고, 그 가족 모두를 15호 정치범관리소로 보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 역시 경제발전이나 인민들의 안녕은 관심이 없는 듯한 행보를 보이며 선군주의를 강조하며 군사력에 목을 메고 있다. 하지만 군사력에서도 대한민국과 북한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격차가 벌어진 남북한 군사력의 차이

6.25 당시 남북의 군사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북한의 압도적 우위였다. 지금도 북한은 양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은 질적으로 북한을 훨씬 압도하고 있다. 병력은 북한이 대한민국의 약 2배로 많다. 전차, 야포, 방사포 등 재래식 무기에서도 그 수는 북한이 우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양이 아닌 질로 접근해보면 숫자의 차이를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격차가 존재한다. 북한의 자주포는 5분에 2발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5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력 자주포인 K-9은 세계 정상급 명중률과 67km/h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하며, 분당 6발이라는 엄청난 속도로 발사가 가능하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비해 가장 많은 차이로 우위를 차지하는 방사포 역시 35초 동안 22발을 발사하고 22분 동안 재장전 해야 하는 재래식 무기임에

비해 대한민국의 국산 다연장 로켓포인 K-138 구룡은 1초에 2발, 18초 동안 36발의 미사일을 적진에 명중한다. 게다가 미사일 한 발이 축구장 약 4배면적(250m×250m)을 초토화 시킨다.

공군력과 해군력 역시 격차가 크다. 북한의 주력 공중전력은 MIG-29와 MIG-19이지만 70년대 수준의 노후된 전력으로 대한민국의 주력인 F-16과 F-15K에 비해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또한 E-737피스아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한반도 전역을 감시할 수 있으며, 북한은 이 조기경보기를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다. 해군전력 역시 이지스함 등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최신 무기를 보유한 대한민국이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서해와 동해의 해군이 교류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비해 서해와 동해, 양쪽으로 병력이 나뉘어진 북한의 해군은 대한민국 해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전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하다보니 북한은 핵과 생화학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대칭전력인 핵을 완성하고 이를 사용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추정이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호령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군 정치를 내세우게 되고 강성대국을 표방하게 됩니다. 장거리 미사일 능력 개발에 더 집중하게 되고 플루토늄 핵 능력, 고농축 우라늄 핵 능력 개발에 더 집중을 하게 되죠”라며 북한이 핵 개발을 공식 노선으로 내걸고 끊임없이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대한민국군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유사시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를 먼저 타격한다는 방침 아래, 감시·정찰 장비와 초정밀 유도 무기를 꾸준히 증강하고 있다.


이제는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야 할 때

대한민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과거와 다르게 북한에 큰 차이를 보이며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군사력 증강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며, 북한의 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독일 통일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라이프치히 현대사박물관에서 열린 한독 한반도통일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헌법상 북한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2,500만 북한주민들은 단지 휴전선 이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김정은 3대 세습 독재체제에서 인권 탄압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와 밥을 위해 목숨 걸고 탈출하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통일은 정치·경제적 논리에 앞서 사람의 생명 문제”라고 말했다.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출연해 북한의 실상과 우리가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함을 말하고 있다. 인간으로써 영위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도 갖지 못한 채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대북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인권법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종북 세력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대한민국이 발언을 하는 것은 김정은 정권을 자극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막고 있다고 북한이탈주민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북한 역시 대한민국의 일부이며 갈등을 해소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회복해야 할 때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헌법’을 제정, 공포한 대한민국을 국제사회는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전쟁 후 황폐해진 국가를 바로 세우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 세계적인 대한민국으로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였고, 감사함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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