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과 선수의 이적갈등, 그들만의 문제인가
구단과 선수의 이적갈등, 그들만의 문제인가
  • 박병준 기자
  • 승인 2013.08.26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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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 되어가는 선수들을 우리는 방관할 뿐이었다
[이슈메이커=박병준 기자]

[Transfer Market] 이적 시장의 현실





전 세계 스포츠팬들을 열광케 하는 유럽축구를 비롯해 배구 등 추춘제(가을에 리그를 시작해 이듬해 봄에 종료)를 시행하는 스포츠계는 지난여름 이적 시장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가레스 베일은 1억 파운드(약 1,7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몸값을 자랑하며 모두를 놀라게 하는 등 다사다난한 여름을 보낸 구단들이다. 스타플레이어들의 화려한 이적 시장 소식에 반해 구단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도 있었다. ‘써드 파티(TPO : Third-party Ownership)문제’나 ‘선수의 상품화’ 같은 문제는 이적 시장의 어두운 면으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이적 시장의 선수들과 소유권 다툼

봄에 리그가 시작되어 가을에 챔피언이 결정되고 리그가 종료되는 K리그 클래식의 춘추제와 달리 동아시아와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추춘제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 축구판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유럽과 남미는 이미 오래전부터 추춘제를 시행해 왔으며,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북중미,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역시 추춘제를 채택 하고 있다. K리그 클래식처럼 춘추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중국과 일본, 미국, 동유럽 일부 국가뿐이다. 춘추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아직 리그가 진행되고 있지만 추춘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이번 여름은 뜨거운 이적 시장이 열렸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뿌리는 구단들, 이적 시장은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가는 한 편의 무역시장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010-11시즌 기준 유럽 상위 20개 리그 이적 시장 규모는 약 50억 파운드로 한화로는 7조 원이 넘는 금액이 선수들의 몸값으로만 움직였다. 여기에 연봉과 인센티브 등을 포함한다면 그 액수는 배 이상 뛰며 이적시장의 엄청난 규모를 가늠케 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이 움직이는 시장이라 그런지 선수들의 소유권에 대한 갈등과 분쟁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일례로 비즈니스 사업 용어인 ‘써드파티(Third-party Ownership)’는 스포츠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 써드파티는 유망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이 부족해 축구를 하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도록 기업이 소유권을 갖는 대신 선수와 클럽에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브라질 등 경제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남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구단의 입장에서는 써드파티 덕분에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게 되고, 선수 입장에서는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양쪽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는 하나, 문제점을 야기 시키기도 한다.

기업의 지원으로 선수를 영입할 때의 부담은 줄었지만 선수가 성장해 유럽으로 진출할 때는 이적료의 일부를 다시

▲스포츠계의 Third party
기업에게 떼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겨, 클럽이 실제로 얻는 이득은 미비하고, 이는 결국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 악순환의 시작이 된다. 게다가 선수의 몸값이라고 부르는 이적료 역시 책정하는 과정에 기업이 끼어들게 되고 실제 책정되는 금액보다 크게 거품이 낀 이적료를 책정하게 된다. 구단과 구단 사이의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서형욱 MBC축구해설위원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테베즈’의 소유권으로 인한 문제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테베즈가 잉글랜드의 웨스트햄으로 이적할 당시 선수의 소유권을 에이전시가 갖고 있는 바람에 셰필드, 위건 등 경쟁구단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고 결국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웨스트햄에게 550만 파운드(당시 약 100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이후 문제가 잘 해결되어 테베즈는 빅클럽으로 이적하며 큰 활약을 보였지만, 이적과정에서 발생한 문제가 한 선수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었던 일이다.


구단과의 갈등으로 상처받는 선수들 - 안정환

그렇다면 소유권 분쟁으로 상처받은 선수들로는 누가 있을까? 국내선수로는 2002년 월드컵 영웅 안정환과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배구선수 김연경이 있다.

안정환은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월드컵 역사상 마지막 골든골을 성공시키며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바 있다. 당시에 이탈리아 1부 리그 세리에A의 페루자에 임대되어 있던 안정환은 이탈리아를 월드컵 탈락시켰다는 이유로 페루자 구단주인 루치아노 가우치에게 앙갚음을 당했다. 가우치는 “그 녀석은 다시는 페루자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이라며 “나는 이탈리아 축구를 침몰시킨 녀석에게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는 안정환을 팀에서 방출시켰다. 이후 가우치 구단주의 극단적인 발언과 관련해서 실질적인 구단주인 가우치의 아들과 페루자 감독이 안정환에 대해 사과와 해명 발언을 잇달아 내놓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월드컵을 계기로 안정환의 몸값은 100억 원대로 치솟아 있었고 유럽의 여러 클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페루자는 대변인을 통해 “안정환은 원소속팀인 부산과의 계약(임대 후 완전이적)대로 안정환을 이적시켰다”라고 보도했다. 이때만 해도 일이 잘 풀려 안정환의 이탈리아 생활은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정환의 원소속팀인 부산에서 ‘안정환의 페루자 이적 절대 불가’ 방침을 발표하며 소유권 분쟁이 시작됐다.

페루자는 “부산에 160만 달러를 송금해 2005년 6월까지 안정환의 소유권을 갖게 됐다”는 주장을 했지만 부산은 “페루자가 먼저 계약을 위반했기 때문에 안정환의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라며 일축했다. 안정환 본인 역시 “페루자로 돌아가지 않겠다”라며 복귀를 거부했다. 분쟁 초기에는 이적문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안정환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와 원소속구단인 부산의 적극적이지 못한 대응으로 인해 분쟁은 장기화에 들어서게 됐다.

프리미어리그의 웨스트햄, 볼튼, 첼시, 에버튼 등으로부터 안정환의 이적을 제안 받은 페루자는 프리미어리그로 이적을 추진하겠다며 안정환에게 복귀하라고 재촉했지만 안정환의 에이전트는 잉글랜드에서 프리미어리그팀인 블랙번을 만나 단독으로 협상에 나섰다. 이로 인해 페루자와 안정환 사이의 감정의 골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페루자는 안정환의 소유권을 활용해 볼튼을 만나 협상을 진행했고 영국에서 같은 날에 ‘안정환 이적 확정’ 뉴스가 동시에 블랙번 행과 볼튼 행, 두 개나 발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안정환의 소유권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영국노동청은 히딩크 감독의 추천서에도 불구하고 워크퍼밋을 발행해주지 않았고 이적 시장은 마감되었다. 안정환을 이적시키지 못한 페루자는 FIFA에 국제소송을 재소했고 FIFA는 페루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한축구협회와 부산은 사태를 방관하고만 있었다. 선수생명을 잃을 위기에 놓인 안정환의 손을 잡아준 것은 일본의 기업 프로페셔널 매니지먼트(PM)였다. PM사는 안정환의 소유권을 샀고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게 해줬지만 이도 역시 마케팅적인측면이 강했다. 결국 안정환은 PM사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마케팅도구가 되어 유럽진출에 실패했다.


구단과의 갈등으로 상처받는 선수들 - 김연경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에는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공격수라는 평을 얻고 있는 선수가 있다. 그는 바로 프로 데뷔 첫 해에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1위, 챔프전 우승, 통합우승을 일궈냈고 챔프전과 정규리그 MVP, 득점왕, 공격왕, 서브왕, 신인상을 수상하며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김연경이다. 2010런던올림픽 4강의 주역으로 대회 득점왕(185득점)과 MVP를 차지하며 주가를 올린 김연경은, 이후 터키리그로 임대되어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내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해내며 득점왕과 MVP를 차지했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여자배구선수로의 입지를 다진 김연경. 하지만 최근 원소속팀인 흥국생명와 소유권문제로 갈등문제를 앓고 있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흥국생명과 계약한 김연경은 당초 2010년 계약기간이 종료되기로 되어있었다. 그는 계약기간 6년 중 흥국생명에서 뛴 4년간 팀을 3번 우승시키며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MVP, 공격상을 각각 3회씩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2년간 일본으로 임대생활을 마치며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2012년 에이전시와 함께 독자적으로 터키 클럽팀인 페네르바체와 계약한 김연경은 입단 후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FA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흥국생명은 아직 계약기간은 남아있으니 김연경은 아직 흥국생명 소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V리그 복귀 불가 및 대표팀 은퇴까지 고려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김연경은 현재 대표팀 은퇴 의사는 철회하였지만 ‘국제이적동의서 발급을 위해 흥국생명과 원만하게 합의하라’는 결론을 내린 대한배구협회의 결정에 ‘이중계약의 우려가 있다’라며 불만을 표했고,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1년 반을 넘게 이어온 팽팽한 갈등 상황은 김연경과 흥국생명, 배구연맹, 배구협회의 단순한 계약 문제를 넘어 자존심 대결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김연경의 해외리그 진출 주장에 든든한 지원군이 됐던 팬들마저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으며, 흥국생명은 세계적인 선수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구단이라는 낙인이 찍혀 전 세계의 배구팬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또한 배구연맹과 배구협회 역시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능한 단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스포츠 선수의 상품화, 이제는 막아야 할 때

선수들과 구단의 갈등은 대부분 소유권 문제로 인해 발생된다. 이는 선수의 상품화현상이 점점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1995년 ‘유럽연합국가 소속으로 계약기간이 끝나면 팀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라는 ‘보스만 법’이 제정된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현상이다. 구단에서는 선수의 이적은 되도록 계약기간 중에 진행하고 이적료를 챙기는 것이 일반화되어갔다. 선수들의 자유보장을 위해 생긴 보스만 법은 구단들의 이적료 챙기기로 악용되며 선수들의 상품화 현상을 촉진시킨 것이다. 안정환 문제가 그러했고, 김연경 문제가 그러했다.

선수들의 몸값, 즉 이적료는 이제 시장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굳어졌다. 구단의 가장 큰 자산은 선수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는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여타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 구단운영방향이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면 회사 돈을 탕진했다는 이유로 주식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는 비싸지만 좋은 선수는 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증권사에 자산 가치를 의뢰해 봤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선수 30여명의 몸값을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흔히 말하는 ‘투혼’을 발휘하며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박수를 받기보다 비판을 받기까지 한다. 구단들은 선수를 되팔 때의 예상가격도 가치평가에 포함되지만 부상과 싸우는 선수는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의 대표로 경기에 나서며 국위선양에 앞장서는 선수들의 땀방울이 시장경제적인 이유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 또한 소유권문제로 선수와 구단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선수들의 이적료 제도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허나 선수들이 노력하며 흘린 땀방울의 가치가 이적시장의 몸값이라는 기준으로 인해 훼손당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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